한국통사 - 국망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는 거울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총서 2
박은식 지음, 김태웅 옮김 / 아카넷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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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구성하는 요소가 있다. 때와 땅과 사람이다. 사람 중에서도 내가 활동하는 영역은 국사(國史)가 된다. 만국사(萬國史)는 다른 사람이 활동하는 공간을 일컫는다. 비록 공간은 다를지라도 한 때와 한 땅을 위해 일한다면 그 역시 국사가 된다. 1910년 일본에게 강제병합 당해 만주벌판을 누비며 독립운동을 펼쳤던 동시대의 사람들처럼 말이다.
경술년 국망(國亡)하던 그 시절에 많은 유학자들이 자결했다. 박은식도 그때 자결해야 했지만 부득이하게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망명했다. 윤세복 형제가 세운 동창학교(東昌學校)에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함이었다. 다만 길거리의 아이들조차 그를 향해 망국노(亡國奴)라 놀려대던 욕지꺼리는 기꺼이 짊어져야 했다.
그가 쓴 〈한국통사(韓國痛史)〉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슬픈 역사'만을 뜻한 게 아니다. 1915년 중국 상해에서 그걸 출판할 때 그는 빼앗긴 나라의 슬픔을 품으면서도 민족혼만큼은 지켜내고자 했다. 그것이 역사를 잃지 않으면 언젠가는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고 그 스스로 밝힌 이유였다.
"터키가 이집트를 멸망시켜도 왕을 존속시켜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허락하였던 데 반해 한국의 황제는 모든 지위를 잃고 일본 화족(華族) 체제에 편입되고 말았던 것이다. 또한 캐나다를 예로 들면서 영국이 캐나다와 다른 나라 사이에 맺은 조약을 보존토록 한데 반해 한국인은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34쪽)
이는 김태웅 교수가 역해(譯解)한 〈한국통사(韓國痛史)〉에 나오는 서언 부분이다. 이른바 일제의 극심한 차별정책을 다른 제국주의 정책과 비교하여 설명하는 부분이다. 물론 무턱대고 박은식의 견해만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이 해설집 속에는 박은식이 참조했을 만한 〈고려사(高麗史)〉를 비롯해 정교의 〈대한계년사〉와 황현의 〈매천야록〉등 다양한 책들을 함께 비교분석하여 설명한다.
"서원을 바로 철거하지 아니하는 자가 있으면 지체 없이 관직을 빼앗고 죄를 물었다. 여러 도에서는 이러한 소리를 듣고 벌벌 떨며 일시에 헐어버리고 그 땅에서 생산되는 양곡은 거두어 군량으로 삼았다. 이에 사족들은 그 근거지를 상실하여 마음속으로 앙앙대고 대원군을 헐뜯으며 동방의 진시황이라 욕하였지만, 백성들은 한결같이 그의 현명한 결단을 칭송하였다."(72쪽)
이는 박은식의 〈한국통사(韓國痛史)〉'第三章 書院撤廢'에 나오는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내용이다. 김태웅 교수는 당시의 박은식이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서원 철폐만큼은 대단히 높게 평가하였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그 다음 장에 이어지는 대원군의 조세개혁에서도 마찬가지였음을 밝힌다.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의 심복으로 지목되었던 자도 모두 배척되었고 갑신지변(甲申之變)으로 개혁당과 가까이 한 흔적이 있는 자도 모두 제거되었다. 중요한 자리에서 세력을 잡고 정권을 장악하여 나라의 명령을 맡은 자는 오직 외척인 민씨 일가뿐이었다. 설사 척신(戚臣)으로서 어질더라도 한 나라의 업무는 큰 것이어서, 한 집안이 홀로 짊어질 수 없다. 하물며 모두 재주가 뛰어나지도 않은데, 총애를 믿고 세력에 의지하여 교만하고 사치하며 탐욕스럽고 방종한 무리들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나라의 앞길이 더욱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123쪽)
이는 박은식의 〈한국통사(韓國痛史)〉'第十章 甲申革黨之亂'에 나오는 글귀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김태웅 교수는 일제의 부당한 제국주의 정책을 알린 한국통사의 '서언'과 함께 이 부분이야말로 한국통사의 '별미'라고 손꼽는다. 그것은 박은식이 갑신정변의 동시대를 살았다는 점 때문이다. 다만 김태웅 교수는 정변세력이 공포한 국정개혁안에 대한 소개가 없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꼬집는다. 그건 박은식이 갑신정변을 주도한 인물을 직접 만나지 못한 이유라고 풀어낸다.
그 밖에도 이 책은 일제의 기만적인 침략을 한국의 주요 사건과 연결시켜 비판한 점들을 많이 수록하고 있다. 이른바 동학란, 러일전쟁, 을사늑약, 일진회 공작 등이 그것이다. 아울러 고종의 강제퇴위, 화폐정리사업, 자원수탈, 군대해산, 교육탄압 등을 들어 일제의 침략상도 크게 부각시킨다. 그만큼 김태웅 교수는, 박은식의〈한국통사(韓國痛史)〉에는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그 망국노(亡國奴)의 얼과 혼이 깊이 베어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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