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라곤의 기적 - 행복한 고용을 위한 성장 몬드라곤 시리즈 2
김성오 지음 / 역사비평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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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가 무척 코믹스럽다. 그렇다고 리얼리티가 없는 게 아니다. 흡인력이 강한 이유는 실제상황을 보여주는 까닭이다. 천하그룹이 본부장을 내세워 적자에 허덕이는 천하메디 공장을 폐쇄하고, 해고 노동자들이 투쟁을 벌이고, 경찰의 비호를 받고 공장안으로 투입된 용역업체 직원들의 모습이 실제를 방불케 한다.

앞으로 그걸 풀어가는 과정은 어떻게 될까? 드라마 전개상 천하그룹이 언론의 포화를 맞고 사원 유방과 공장장은 신제품을 개발하여 기사회생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지 않을까. 그리하여 유방은 부사장직에 초고속 승진하고, 공장장은 다른 자리에 앉는 반전 말이다. 헌데 실제 기업경영에서는 드라마처럼 정리되지 않는다. 그룹대표와 이사회의 안건대로 밀어붙이는 게 기업의 생리인 까닭이다.
만약 적자 계열사에 대한 처리 해법을 노동자들에게 부여한다면 어떻게 될까? 드라마에서는 퇴직금과 세 달치 월급을 주겠다는 본부장 말에 몇 몇 노조원들이 투쟁을 포기했다. 그런데 노조원들이 퇴직금과 밀린 월급을 출자금으로 내서 회사를 인수하여 되살려낼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굳이 적자 계열사를 따지지 않더라도 잘 나가는 회사를 노동자들이 경영하면 안 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영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전문 경영인을 선임하여 경영진을 짜고 그들을 관리·감독하기만 하면 된다. 기술적으로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궁금한 게 있으면 외부의 경영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면 된다. 조언해 줄 사람은 많다. 하다 못해 몬드라곤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된다."(246쪽)
이는 김성오의 〈몬드라곤의 기적〉(2012·역사비평사)에 나오는 이야기로서, 노동자들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몬드라곤의 실례를 들어, 한국의 기업가운데 노사관계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타협과 대화를 가장 잘 시도하고 있다는 현대자동차를 비교 분석하면서 내 놓은 사안이다. 가상의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현대자동차 노조원들도 충분히 기업경영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성오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5년간 '노동자기업인수지원센터'의 대표로 일하며 부도 기업의 노동자 인수를 자문했던 이다. 그는 노동자들의 기업경영과 참여야말로 우리나라가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것만이 질 좋은 고용을 위한 참된 성장의 길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얻게 되는 효율성이 있을까? 그가 하는 말에 따르면, 상명하복의 조직문화에서 민주적 조직문화로 바뀔 수 있고, 재벌 2세들의 기업승계를 위한 비자금 불법상속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고, 노사간의 단체협상도 필요하지 않기에 노동생산성은 훨씬 향상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물론 약점도 있다고 한다. 가장 큰 약점은 의사결정과정이 길고 복잡해 질 수 있고, 노동자들이 일하랴 경영공부하랴 정신없이 바쁠 수 있다는 점이다. 혹시라도 노동자 내부에서 갈등이 벌어진다면 기업을 인수하기 이전보다 훨씬 더 큰 난제에 봉착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난제를 감수하고서라도 5만여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직접 경영에 참여한다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 그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고서도 기업의 성장 몫만큼 1만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세워나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만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고, 신규 고용창출에서도 대주주들보다 월등하게 앞설 수 있다고 내다보는 것이다.
"몬드라곤의 원칙과 가치는 200여 년 지속되어온 협동조합운동의 일반 원칙, 특히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몬드라곤은 단지 그 원칙을 고수하는 데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출범 이후 50여 년 넘는 기간 동안 몬드라곤은 자신만의 독특한 원칙과 가치를 발전시켜왔던 것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유럽 전역이,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양극화의 심화와 고용 악화라는 공동의 문제를 떠안게 되면서 몬드라곤은 이 문제의 해결에 집중했다. 몬드라곤 노동자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중심에 두지 않고 언제나 미래의 조합원들을 중시하는 희생과 헌신의 태도를 보여주었다."(109쪽)
바로 이것이 1940년대 초반 스페인의 작은 도시에서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에 의해 소규모 노동자생산협동조합으로 시작하여 현재는 해외에까지 생산 공장을 갖추고, 유통과 지식과 교육부문까지 포괄하는 기업집단으로 발전한 몬드라곤의 기업 이념인 것이다. 그만큼 몬드라곤은 여러 위기와 개혁의 여파 속에서도 그 원칙을 지켜냈다는 것이다.
이 책은 20년 전에 출간되었고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온 〈몬드라곤에서 배우자〉의 연속선상에서 출간한 것으로,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몬드라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도 여전히 협동조합의 원칙과 이념을 지켜내고 있는 비결을 담아내고 있고, 한국에서도 더 큰 경제발전과 공정한 부의 분배가 가능한지를 모색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도 나온 바 있듯이, 몬드라곤 신화의 중심에는 1940년대의 호세 신부가 자리하고 있다면 1960년대 한국의 원주에는 박정희 유신독재에 저항해 수감되었다가 출감한 지학순 신부와 장일순 생명사상가가 있다는 점이다. 그들 두 사람이 밑바탕 되어, 현재 원주는 협동과 연대의 원리에 의한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가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꿈꾸고 있다. 진정 그 방향을 원한다면 노동자들이 기업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길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건 좌파의 관점이기 이전에 행복한 고용과 참된 성장을 위한 선지자적인 관점일 것이다. 그것이 세계 모든 기업들이 방문하고 또 본받으려고 애쓰는 몬드라곤이 우리사회에 던지는 화두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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