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라 - 황광우와 함께 읽는 동서양 인문고전 40
황광우 지음 / 생각정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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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점점 존재 자체가 가벼워지고 있다. 지식도, 정보도, 문화도 인터넷과 스마트폰 하나로 가볍게 해결한다. 고전 중의 고전으로 불리는 성경도 점점 더 스마트하게 읽힌다. 세상에 비난을 받을지언정 제 욕망에 따라 철새처럼 가볍게 날라 다닌다. 시대변화에 잘 대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얄팍함만 난무한다면 결국은 그 존재 자체를 가볍게 하고 만다.

세월이 흘러도 묵직한 고전이 빛나는 이유도 그것이다. 고전은 스스로 남다른 혜안을 제시하지만 모두가 보편적인 가치를 제공한다. 비록 동양과 서양고전이 다른 견해차를 보일지라도 그 근본은 인류의 역사와 자유와 평등과 정의와 도덕을 떠받치는 주춧돌과 같다. 그것이 버티고 서 있는 한 그 어떤 외투를 갈아입어도 결코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요즘처럼 경제가 암울한 때에도 고전은 귀한 버팀목이 된다. 작금의 경제는 단순한 경제논리가 아니라 정치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그에 춤추듯 소인배들은 정권의 시녀역할을 자처하며 불나방 춤을 춘다. 하지만 진정으로 존경받는 인물은 어떤 상황에서도 가볍게 움직이지 않는 군자의 모습이다. 난세에 난 영웅들과 혁명가들은 모두 그 속에서 배태된 인물들이다. 그들에게 고난은 또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한 디딤돌이었다.

황광우의 〈철학하라〉는 고전의 깊이를 통해 존재의 무거움을 다시금 생각토록 하는 책이다. 불확실성이 판을 치는 시대에 진정으로 흔들리지 않고 깊은 안목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혜안은 고전을 통해 스스로 사유하는 길 밖에 없다는 뜻이다. 돈과 명예와 권력의 노리개 감으로 전락하는 소인배들이 들끓는 시대에 진정한 군자의 길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일깨워 준다.

"사람들은 권위를 숭배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위대한 사상가들이 뱉어 놓은 말을 쉽게 믿어 버린다. 그런데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푸르른 것은 저 영원한 생명의 나무'라는 말처럼 현실은 끊임없이 이론의 변화를 요구한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길 싫어하는 사람은 훌륭한 신앙인은 될 수 있어도 세계를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주체적인 인간은 될 수 없다."(서문)

바로 이것이 그가 동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스스로 철학하고 사유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아무리 위대한 소크라테스와 공자와 석가모니가 한 말이라도 각 개인 스스로가 그 말을 되짚어보고 곱씹어 보지 않는 한 그들의 삶을 몸소 체득하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말이 힘이 있는 이유는 단순한 공기의 진동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삶을 변화시키는데 있는 까닭이다. 그걸 위해 독자들 스스로가 동서양 고전으로 철학하고 사유하길 원하는 것이다.

황광우는 이 책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을까? 그는 우선 이 책을 통해 동서양 고전 40선을 선정하여, 동양편에서는 자아와 정체성에 관한 심연을 드러내고, 서양편에서는 정치·경제·철학·심리·법·과학 등 외부세계에 대한 지평을 넓혀준다. 물론 초보자들도 각각의 고전에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각 장마다 개괄적인 안내를 빠트리지 않고 있다. 나 같은 고전에 대한 초짜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부분이 그것이다.

"어떤 나라도 영원히 강할 수 없고, 또 영원히 약할 수도 없다. 강함과 약함은 그 나라의 법을 받드는 자에게 달려 있다. 그가 강하고 곧으면 그 나라는 강해지지만 그 사람이 그렇지 못하여 법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못하면 그 나라는 약해진다. 《한비자》〈유도(有度〉"(168쪽)

이는 강력한 지도자가 강대한 나라를 만들기를 원했던 한비자(韓非子)의 원문을 직접 인용한 글귀다. 한비자는 왕의 권력이 하늘에서 부여한 것도 아니고, 그가 군자라서 주어진 것도 아니라, 단지 '왕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왕권을 쥔 이라고 내다본 이였다고 한다. 그는 왕에게 필요한 것은 포괄적인 법치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 다시 말해 누가 봐도 명확하고 분명한 법 적용을 행사하는 지도자란 뜻이다. 그런데 그걸 요구한 한비자에게 진시황은 죄를 묻고 사약을 보내 자살케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흐름이 대명천지 21세기에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 책을 쓴 황광우도 실은 1980년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하다 옥살이한 인물이었으니, 그 어찌 한비자의 원문을 읽으며 땅을 치고 하늘을 향해 분노하지 않았으랴? 하지만 옥중에서 고전과 씨름하고 성경으로 사색한 고뇌의 편린(片鱗)들은 그의 존재감을 더 무겁게 드러내게 한 주춧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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