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더다의 고전 읽기의 즐거움
마이클 더다 지음, 이종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몇 해 전에 신영복 교수의 〈강의-나의 동양 고전 독법〉을 통해 고전 읽기의 즐거움에 빠진 적이 있다. 신영복 교수는 서양식 근대기획의 틀에 매몰돼 있는 우리들의 존재론적인 사고방식의 틀을 관계론적인 사고방식으로 재구성하려고 애썼다. 그 때문에 한자에 문외한이었지만 동양 고전의 독특한 맛에 빠져드는 나 자신을 멈출 수가 없었던 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왜 고전에 목말라 하는 것일까? 고전은 현재 살아가는 인생의 문제에 대해 어떠한 지혜나 통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대가 아무리 발전된다 하더라도 더 많은 깊이와 더 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아온 한 시대의 가치와 고뇌가 고전의 인물들 속에 겹겹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성서에도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듯 이 시대와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산물들은 과거의 연장물이다. 그것의 틀과 빛깔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변형되고 채색될 뿐이다. 그 때문에 고전은 현재와 미래의 인생을 더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프리즘이다.

 

마이클 더다의 〈고전 읽기의 즐거움〉도 서양고전으로 손색이 없는 90여 작품을 골라 해설한 책이다. 다른 사람들의 서양 고전 읽기가 당대의 사회현상이나 이슈 등에 집중하거나, 작가의 일상과 일탈을 해석하는 데 그치고 있지만 더다는 그 양자를 조리있고 간결하게 버무리고 있다. 더욱이 문학 평론 부분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그이지만 과학이나 공포, 괴기나 로망스, 아동 등의 분야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역사와 신화, 기독교 신앙과 이교도의 운명 등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초기의 서사시〈베어울프〉를 비롯해서 중세의 문학 중 가장 재미있는 〈거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 10대 때부터 인간답게 사는 것을 고민하며 사실적인 작품에 매달렸다는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안톤 체호프의 〈황량한 이야기〉와〈세 자매〉에 관한 평이라든지, 소설 속 인물보다 더욱더 실제적인 인물이 되었다는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의 모험〉등이 그렇다.

 

물론 그의 고전읽기 속에도 남들처럼 뜻 깊은 교훈이 없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런 교훈과 잠언 속에는 길고 복잡한 설교조의 톤이 들어 있지 않다. 단 한 두 문장의 요약으로 끝맺는 게 특징이다. 아마도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일이지 않겠나 싶다. 더욱이 워싱턴 포스트의 문화부 기자답게 작가나 작품의 인상적인 에피소드나 격언들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

 

“이야기하기의 재주, 인물의 창조, 따뜻한 인간미 등에 있어서 체호프는 초서, 발자크, 디킨스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역시 높은 평가를 받는 그의 희곡들 〈갈매기〉, 〈세 자매〉,〈바냐 아저씨〉에 대해서는 직접 가서 연극을 보기 바란다.”(371쪽)

 

“무슨 장르가 되었든 도일은 나쁜 스토리를 써 내지 못한다. 제러드 준장의 나폴레옹적 모험을 한 번 생각해 보라. 샤키 선장의 해적 같은 모험은 또 어떤가. 〈경매 품목 249호〉,〈높은 곳의 공포〉, 〈폴스타 호의 선장〉같은 초자연적 스토리들도 음산하지만 여전히 감동적이다. 역사상 문학에서 이야기가 활짝 개화한 시대는 대략 1865년에서 1935년까지 70년 동안이다. 아서 코넌 도일 경우 알맞은 시대에 태어난 알맞은 사람이다.”(406쪽)


 

사실 이 책 속에 들어 있는 서양 고전 가운데 내가 알고 있는 작가와 책은 스무 권도 채 되지 않는다. 더욱이 어떤 책이 유희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고전인지, 어떤 고전이 그 시대의 영웅들에 대한 괴담을 밝혀 놓은 고전인지, 사랑과 현자들의 말씀을 담고 있는 고전은 또 어떤 것들인지, 마법과 동화 속 상상의 인물들을 그려 놓은 고전은 또 어떤 책인지 좀체 감을 잡기가 어려울 뿐이다.

 

그렇지만 더다의 이 책은 그런 어려움들을 단번에 풀어준다. 이 책을 따라 읽어나가면 그런 분류쯤은 자연스럽게 해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더다의 관점이긴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서양 고전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그의 해설이 더없이 반갑고 그의 고전 해설이 지루하지 않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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