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애덤 호크실드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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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전쟁사학자 앤터니 비버가 쓴 《스페인 내전》은 내전의 발발과 전개 그리고 종식까지 사적 관점에서 서술한 것이다. 2005년 스페인에서 먼저 출간된 뒤, 내전 70돌을 맞은 이듬해 주요 나라에서 간행됐다.

이에 비해 미국의 저널리스트 애덤 호크실드가 쓴 《스페인 내전》은 주로 내전에 참전한 외국인, 격동의 시대에 고향을 떠나 바다를 건너 삶의 진로를 택한 일군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당시 내전에 참가한 미국인은 대략 2,800명이었다. 이 중 750여 명이 전사했다. 75명 정도되는 여자 의용군들은 주로 간호병으로 지원했다.

저자는 그들의 삶을 알기 위해 그들의 후손을 만나고, 도서관과 기록 보관소를 찾아다니며, 벽장이나 서랍 속에 오랫동안 쑤셔 박혀있던 문서들을 끄집어냈다. 마지막으로 내전의 격전지 에브론 강(스페인 최장의 강)으로 달려갔다. 내전 당시 에브론 강은 공화파가 거점 바르셀로나를 사수하기 위해 프랑코 반군과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던 전선이었다. 마치 육이오 동란 때 낙동강 대치와 유사한 형국이었다.

그가 스페인 내전을 처음 접한 때는 1960년대 중엽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서 수습기자로 일하던 때였다. 당시 선배 기자에게서 내전에 참전했던 의용병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속한 부대는 에이브러햄 링컨 연대(제15 국제여단)로 불리고 있었다.

 

저자 애덤 호크실드(Adam Hochschild)


스페인 내전은 사회주의 혁명을 사수하려는 공화파와 이를 분쇄하려던 세계 체제가 프랑코를 앞세워 벌인 이념 전쟁이었다. 1936년 2월 치러진 스페인 총선에서 자유주의파, 사회주의당과 공산당이 연합한 인민전선이 승리를 거뒀다. 서유럽에서 가장 봉건적인 국가로 평가받던 나라에서 '선거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5개월 뒤 1936년 7월 17일 스페인령 모로코의 도시 멜리야에 주둔하고 있던 부대가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카나리아 제도에 있던 프랑코는 비밀리에 모로코로 날아와 쿠테타를 이끌었다.

당시 미국과 유럽은 철저히 외면했고, 혁명의 기운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에 급급했다. 그들은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거대한 파시즘의 검은 날개를 유럽 전역에 펼치고 있는 것"에 제때 대응하지도 못했다. 2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함께 스페인 내전은 곧 잊혀졌다.

 

공화파의 이념을 지지하고 혁명을 수호하기 위해 기꺼이 뛰어든 의용병들은 출신, 직업과 이념이 다양했다. 하지만 사회정의에 관심을 갖고 세계를 더욱 정의롭고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내걸었던 점에선 일치했다. 당시 세계 각지 26개국에서 모여든 의용병으로 구성된 국제여단은 약 3만 명 규모였다. 이 중 만여 명은 살아남지 못했다.

 

공화파군이 점령한 도시 테루엘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중앙), 제15국제여단(링컨대대)의 작전 사령관 맬컴 던바(왼쪽), 허버트 매슈스(헤밍웨이 뒤 베레모를 쓴 인물), 공화파군 장군 엔리크 리스테르(오른쪽)가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당대 작가나 지식인들도 내전에 기꺼이 뛰어들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생텍쥐베리는 종군기자로 참여했고, 헤밍웨이는 프랑코 반군이 최종 승리를 거둔 이듬해 내전을 주제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발표했다. 당시 무명이었던 조지 오웰도 참전해서 《카탈로니아 찬가》를 남겼고, 공군 대대를 조직해 참전했던 앙드레 말로는 《희망》에서 내전의 모습을 그렸다. 피카소는 1937년 4월 스페인 북부 소도시 게르니카에 벌어진 독일 공군의 무차별 폭격에 항의해 동명의 작품을 남겼다.

당시 공화파에 무기를 팔거나 병사를 지원했던 곳은 소련이 유일했다(멕시코는 소총 2만 정을 무상으로 지원). 스탈린은 공화파 지지자들의 믿음과는 달리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소련은 내전 기간에 어린이를 포함한 공화파 난민 수천 명을 자국으로 피신시켰지만, 내전이 끝난 뒤 이들을 석탄 채굴 같은 강제 노동에 처하거나 사상 투쟁의 제물로 삼았다. 스탈린의 배신은 내전에 참여하거나 영향을 받았던 미국인들이 공산당과 소련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는 미국의 자생적 공산주의 운동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었다.

 

1938년 10월 28일 바르셀로나 디아고날 거리에서 고별 행진을 벌이는 국제여단 병사들. 이날 30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이들을 환송했다.

 

1939년 3월 28일 프랑코 반군이 마드리드에 입성함으로써 내전은 막을 내렸다. 프랑코는 승리한 뒤 2만여 명의 공화파 사람들을 처형했다. 잡힌 사람들은 자백할 때까지 고문, 구타 혹은 굶주림의 고통을 당한 뒤 총살대로 보내졌다. 그는 36년 넘게 통치하는 동안 고문이 일상화된 경찰국가 체제를 유지했다.  말년에 치매기를 보이다 1975년 82세로 세상을 떴다.

 

프랑스로 향하는 난민들. 내전이 끝난 뒤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넘어간 공화파 난민들은 50만 명에 달했다.

한편 고국에 돌아온 의용병들은 냉전 체제의 잠재적 '빨갱이'로 낙인 찍혀 지속적으로 사찰 당하는가 하면,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직장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했다. 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또다른 대의를 위해 함께 싸웠다. 빈민을 위한 의료봉사, 흑인들의 투표권이나 인권을 위한 민권활동과 다양한 정치 투쟁이 그러했다. 유럽에 남은 의용병 역시 파시즘과 맞서 싸웠다. 그들은 2차 대전 동안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며 전투에서, 또는 강제수용소에서 죽어갔다.

 

2016년 2월 타계한 미국인 의용병 마지막 생존자 델머 버그 옹

 

이 책은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치밀한 고증과 능준한 필력 덕분에 치열했던 이념 전쟁의 최전선에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 기꺼이 총을 들었던 사람들을 생생하게 살려냈다. 아울러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과연 어떤 가치를 위해 사는 것이 참다운 삶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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