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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의 백년손님 - 벼슬하지 못한 부마와 그 가문의 이야기
신채용 지음 / 역사비평사 / 2017년 10월
평점 :
저자는 신채용 간송미술관 연구원이다. 그는 국민대에서 국사학과를 전공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수료했다. 저자는 박사학위논문 주제로 ‘부마’를 쓸 예정이라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의 목적은은 저자의 논문 주제를 통해 대중에게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는 한편, 조선 왕실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현실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함이다.
왕의 사위, 부마(駙馬)라는 용어는 원래 관직명에서 유래됐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부마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부(駙)는 가깝고 빠르다는 뜻으로 원래 임금의 수레를 모는 말을 관리하는 벼슬인데, 중국 위·진 시대 이후 공주에게 장가간 자에게 이 벼슬을 준 것에서 부마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
조선 초까지 ‘부마’라는 용어를 썼지만 이 말은 세종 때 ‘의빈(儀賓)’으로 바뀌었다. 의빈이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일정한 예의를 갖추어(儀) 맞이하는 손님(賓)’의 뜻이다. 우리가 흔히 사위를 ‘백년손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 ‘백년손님’은 한 번 왔다 가는 흔한 손님이 아닌, 백 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에도 귀하게 대우해야 할, 성(姓이) 다른 가족이기도 했다.
하지만 부마는 대부분 명문가 출신으로 권력의 중심부에 있었지만, 행동에 많은 제약이 따랐다. 특히 성종 때 『경국대전』이 반포된 뒤 부마는 법에 따라 주어진 관직만 받아야 했고, 과거에 응시할 수 없어 벼슬을 하지 못했다. 그 까닭은 성리학에서 중요시하는 명분과 의리의 기준으로 볼 때, 왕의 가까운 인척인 사위가 정치 일선에 나서는 것은 용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조선 중기 이후부터 사대부 가문의 자제는 부마로 간택되는 것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았다. 대신 왕은 부마의 장모인 왕비(또는 대비)는 부마로 간택된 이에게 큰 저택을 지어주고 수많은 재산을 하사하면서 벼슬하지 못하게 된 처지를 위로하기도 했다.
저자는 조선왕조 92명의 부마 가운데 태조 이성계의 맏사위 흥안군 이제부터 영조의 부마 창성위 황인점까지 12명의 일대기를 개인별 열전의 형식으로 정리했다.
부마들은 왕의 사위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을 간택해준 왕(또는 왕비)에게 협조하면서 수구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왕의 악행을 부추기는 등 역사의 흐름을 가로막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를 이끌어 나가는 군주의 훌륭한 조력자로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가령 성종의 부마이자 연산군의 매부였던 임숭재는 전국을 돌며 미녀를 데려다 왕에게 바치는 일을 했다. 임숭재의 행차 모습은 왕의 위세를 연상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한편 정조는 자신의 고모부, 즉 영조의 부마를 개혁정치에 활용했다. 박명원과 황인점은 청나라를 오가며 선진 문물을 가져왔고, 이는 실학 발전의 토대가 됐다.
▲17세기에 그려진 작자 미상의 신익성 초상화
특히 흥미로운 인물은 선조의 사위 신익성(1588∼1644)이다.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초상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나이 12세 때 한 살 연상인 정숙옹주의 부마로 간택됐다. 광해군 때 인목대비 폐모론에 가담하지 않아 인조반정 후 봉헌대부에 올랐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김상헌 등과 함께 척화를 주장했다. 부마로서는 유일하게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보좌했다. 인조는 그에게 궁성의 호위를 전담시킨 뒤 고마움을 표했다. 이렇듯 부마는 유사시에는 오늘날 대통령경호실장과 같은 역할을 맡기도 했다.
저자는 부마의 위치와 활약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마의 생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계까지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마는 왕위를 물려받을 세자에게는 자형이나 매부이고, 세손에게는 고모부가 되는 존재다. 이 말인즉 부마 자신, 그리고 그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왕실의 인척으로서 국왕의 근위 세력이 되었다. 따라서 부마와 그 가계는 당대 정치 세력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될 수밖에 없었다.
그간 부마에 대한 연구는 당대 부마에 대한 정치적 제약 탓에 사료가 많지 않아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이 책은 부마를 통해 조선사의 또 다른 사실(史實)을 일궈냈다. 조선 정국 운영의 숨은 실세인 부마 가문의 동향을 보면 정치사에 새롭게 접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