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이미지 알마 인코그니타
에르베 기베르 지음, 안보옥 옮김, 김현호 해설 / 알마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랑스의 에르베 기베르는 에이즈에 관한 많은 글을 남겼다. 그는 에이즈 환자였다. 에이즈로 사망한 미셸 푸코의 연인으로 알려져 있다.

 

기베르는 에이즈를 진단받았을 때 죽음을 예감하고 미친 듯이 글을 써 나갔다고 전한다. 그에게 문학은 장 피에르 불레의 말대로 마귀 쫓기같은 의식이었다.

 

그는 1990년에 발표한 소설 내 삶을 구하지 못한 친구에게에서 자신이 에이즈 환자임을 밝혔다. 이 작품은 연민의 기록붉은 모자를 쓴 남자와 함께 3부작을 이룬다. 3부작은 자신이 에이즈를 앓으면서 병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가 느끼는 일상의 소회와 몸의 변화를 표현했다. 미셸 푸코가 1984년 에이즈로 사망하자 자신도 곧 죽을 것임을 예감했을까. 기베르는 1991년 세상을 떴다.

 

기베르는 1985시각장애인들을 발표하여 미셸 푸코에게 헌정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고자 했다. 물론 본래 의도는 에이즈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것이었다. 기베르는 에이즈 환자로서 겪는 고통, 그리고 삶에 대한 끈질긴 욕망과 집착을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수전 손택 처럼 질병에 맞선 삶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기베르의 작품 중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천국(Le Paradis)이다. 원서는 그가 사망한 지 1년 뒤인 1992년 출간됐다. 평론가들은 천국이 기베르 자신의 인생과 자신이 살지 못했던 모든 삶을 애도하는 문학적 유언이라고 보았다. 기베르에게 죽음이란 삶의 암울한 끝이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통과의례였는지도 모른다. 기베르는 아케론의 뱃사공 카론은 천국으로 건네주는 안내인이었다.

 

기베르는 소설 천국에서 제인이라는 여자와 격정적인 섹스를 나눈다. 권총부리로 그곳을 마사지해주면 그녀의 질은 권총을 삼키려는 듯 크게 벌어졌다. 깊숙이 방아쇠 부분까지 쑤셔넣으면 그녀는 더욱 심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럴 때면 그는 자신의 정액을 더 빨리 그녀 몸 속에 채워 넣을 수 있었다. 기베르에게 몸은 죽어가는 생명을 각인시켜 주는 매개다. 하루하루 스러져가는 자신의 생명을 되살리기라도 하듯 제인의 몸 속에 생명의 씨앗을 뿌린다. 하지만 제인은 아이를 잉태하지 못했다.

 

그녀는 어느 날 바다에서 수영하다가 산호초에 몸이 갈기갈기 찢긴 채 죽었다. 기베르는 자신이 자살했던 1991년 그해 여름, 말리, 마르티니크와 보라보라를 여행했다. 그리고 뜨거웠던 여름의 어느 날 제인이 맞은 죽음에서 기베르는 자신의 죽음과 마주한다. 기베르는 19911213일 자신의 서른여섯 번째 생일 전날 강심제를 과량 복용하고 자살을 기도했다. 보름 뒤 회복하지 못하고 끝내 숨을 거두었다.

 

올해 3월 기베르의 단편 모음집 유령의 이미지가 나왔다. 눈에 보이지 않거나 현상되지 못한 사진의 이미지를 소재로 쓴 에세이다.

 

기베르 역시 아프리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몸에 반점이 돋아나 있었다. 이마에 매독 3기의 종기가 솟아올랐던 니체처럼. 기베르는 산문 유령의 이미지에서 자신이 열여덟 살(1973) 때 찍은 어머니(당시 마흔다섯)의 모습을 묘사한다.

 

나는 어머니를 사진에 담았다. 그 순간에 어머니는 최고로 아름다웠고 얼굴은 완전히 온화한 표정이었다. 어머니는 말을 하지 않았고, 나는 어머니 주위를 맴돌았다, 어머니는 마치 빛이 그녀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거리를 두고 그녀 주위에서 맴도는 이 느린 선회가 가장 감미로운 애무인 것처럼, 감지하기 어렵고, 무엇이라고 표현하기 힘든, 평화롭고 행복한 미소를 입가에 띄었다.” - 16~17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필름 없이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당시의 기억을 반추하며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던 어머니의 이미지를 텍스트로 남겼다. 그리고 탄식한다. “이미지가 찍혔다면 이 텍스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텍스트는 이미지의 절망이다. 그리고 흐릿하거나 모호한 이미지보다 더 나쁜 것, 즉 유령 이미지다.”

한편 유령 이미지》를 펴낸 알마는 작가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어필하기 위해 4가지 표지를 선택했다. 알마 측은 “작가 특성과 출판사의 실험 정신을 알리기 위해 일곱 가지 무지개 박이 들어간 표지를 제작하다 무지개색깔 중 빨강, 파랑, 노랑 박을 추가로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2쇄를 찍으면 6개 표지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