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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어요 ㅣ 최측의농간 시집선 1
박서원 지음 / 최측의농간 / 2017년 5월
평점 :
“남들이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세상의 사소한 것들이 내 자궁 속에서 익어간다.
그것들이
바로 내 시가 된다.”
- 《천년의
겨울을 건너온 여자》
머리글
박서원 시인(1960~2012).
시인은
여덟 살 때 아버지를 폐결핵으로 여의었다.
해병대
장교 출신이었던 아버지는 군대 시절 등단한 시인이었다.
아버지는
제대 후 부동액 연구에 전념해 당시 전량 수입해 쓰던 부동액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큰 아버지의 농간으로 회사가 넘어가
버렸고,
시인의
가족은 결국 길거리에 나앉았다.
시인은
고등학교를 다닐 여력도 못 돼 자퇴했다.
한창
꽃다운 나이 열여덟, 시인은 대학 졸업반 남자와의 데이트에서 강제로 유린당했다.
시인의 신경은 보통 사람보다 7배나
예민했다 한다.
스무
살을 넘겼을 무렵 예민한 신경은 기면증(수시로
잠드는 질환)이라는
병이 돼버렸다.
두통과
발작이 수시로 찾아왔다.
약으로
버텼지만 어찌할 수 없는 졸음과 싸워야만 했다.
“나는
병에 익숙해져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병에
익숙해지는 것이 병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병과
친구가 되기로 했다.
발작과
고통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나를 타일렀다.”
- 《천년의
겨울을 건너온 여자》
110쪽
그리고 스물 넷에 첫 사랑을 만났다.
알바하던
꽃집에서였다.
그이는
꽃집 사장님의 동창이었다.
스물
둘 연상이었던 법대 교수.
알고
보니 아버지의 고향 후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아내가 있는 남자였다.
9년
만에 헤어졌다.
당시 시인은 살고 싶은 강한 욕망을 느꼈다고 했다.
병든
육체 때문에 죽고 싶다가도 그를 생각하면 살고 싶어지는 것이었단다.
그래서
열심히 시도 썼다.
좋은
글을 쓰는 것이 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의 전부였다.
마침내 1989년
〈문학정신〉
5월호에
시인의 시가 실렸다.
이어
1990년
첫 시집 《아무도
없어요》
이래,
《난간
위의 고양이》(1995),
《이
완벽한 세계》(1997),
《내
기억 속의 빈 마음으로 사랑하는 당신》(1998),
《모두
깨어 있는 밤》(2002)
등
다섯 권이 나왔다.
특히 시인은 1995년
「난간
위의 고양이」로
한국일보 선정 「올해의
우수시인」에
뽑히기도 했다.
그는 난간이 두렵지 않다
벚꽃처럼 난간을 뛰어넘는 법을
아는 고양이
그가 두려워하는 건 바로 그 묘기의
명수인 발과 발톱
냄새를 잘 맡는 예민한 코
어리석은 생선은 고양이를 피해 달아나고
고양이는 난간에 섰을 때
가장 위대한 힘이 솟구침을 안다
그가 두려워하는 건
늘
새 잎을 떨구어내는 귀뚜라미 푸른 방울꽃
하느님의 눈동자 새벽별
거듭나야 하는 괴로움
야옹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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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간
위의 고양이」
전편
이후 시인은 서른 넷에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했으나 19개월
만에 이혼했다.
그리고
2012년
5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시인은
아이를 얻지 못했다.
대신
치민이(큰
남동생 아이)와
시원이(작은
남동생 아이)라는
조카가 있었다.
치민이는
“시인의
아들이자 시의 출발”이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1990년
펴낸 《아무도
없어요》를
최측의농간에서 복간한 것이다.
최측의농간은
지난 봄 시인의 어머니와 인연이 닿았다 한다.
이번
시집을 시작으로 시인의 시집을 모두 출간할 예정이라고 하니 반갑기 그지없다.
무릇 한 시인의 시를 온전히 읽기 위해서는 그 시인의 인생을 둘러볼 필요가
있겠다.
앞서
박서원 시인의 삶을 시인이 쓴 에세이 《천년의 겨울을 건너온 여자》(1998)를 통해 살펴본 연유도 여기에 있다.
사지는 마비되려 했어
신경은 끊어진 필라멘트
땅
위에서 걷지 못하는 나와
모여드는 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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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1」
일부
문득 날이 가는 소리에 놀라 깨면
온몸이 아파서 불에 구운 오징어처럼 오그라들고
4월의
밤하늘에 휘날리던 목련꽃의 병원,
스트레쵸카에 실려 각혈하던 아버지가
마침내 붉은 목련을 피워내고 있구나,
기억이
떠올랐죠
나는 그때 많은 사람들과 분리되어 가고
내가 다스릴 수 없는 내 생애는 시작되어
나도 아버지처럼 자주 입원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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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2」
일부
시 「발작」의
연작은 시인의 고통이 얼마나 지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기면증은
사지 마비를 동반한다.
쏟아지는
잠은 점차 나아졌으나 “오징어처럼
오그라”드는
마비 증세는 “30년
동안의 고독이 눈을 뜨고 /
서른
개의 육체가 일어나”
(「병·1」)도록
시인을 괴롭혔다.
시인은 법대 교수와의 만남을 천지개벽이었다고 표현한다.
“24년
동안의 고립이 무너지고 /
자존심은
걸레였고 /
찬란하게
불안이 나부꼈어 /
불안이
나부끼는 지상,
/ 그러나
뒤돌아보면 어느 틈엔가 /
현란한
꽃들이 터지고 있었어 /
그러니까
그건 천지개벽이었단 /
말이지”
((「단
한 번 마주친 눈 길」)
그리고 진한 그리움도 노래한다.
“가만,
// 드디어
계단에 /
발소리가
들리는군요.
/ 누군가
나를 채워주려 오나 봐요.
// 그러나
역시 아무도 /
안
와요.
/ 나는
물만 마셔요.
/ 차라리
/
그리움이
그리움을 /
삭발하고
/
거울
앞에 설래요.”
(「아무도
없어요」)
시인은
서른이라는 생을 살면서 체험한 삶의 기쁨과 죽음의 공포,
그리고
질병의 고통이라는 극단의 시상을 《아무도
없어요》(51편)에
고스란히 담았다.
시인의
다음 작품도 함께 읽을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