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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연대기
조지 존슨 지음, 김성훈 옮김 / 어마마마 / 2016년 3월
평점 :

조지 존슨은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과학 저널리스트이다. 그는 미국 왕립학회 도서상 결승에 세 번이나 진출한 기록을 갖고 있을 정도로 실력 있는 작가. 뉴욕 타임즈를
비롯해서 여러 매체에 정기적으로 글도 쓰고, 과학 책도 이 책을 비롯해서 아홉 권 냈다.
어느 날 그의 아내 낸시가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는다. 그는 자신이 과학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정작 암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결심한다. “암의 과학에 대해 내가 알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파헤쳐봐야겠다.”
그렇게 해서 2013년에 나온 것이 바로 이 책이다. 1952년생이니 그의 나이 61세 때. 저자는
성실하고 꼼꼼한 자세로 암에 관한 중요한 연구 성과와 일반 상식을 폭넓게 담아냈다.
저자에 따르면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의사들은 암을 비정상적인 세포가 관여해서 생기는 질병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히포크라테스는 몸을 통해 이동하는 ‘전이성 질환’에 대해 언급했다. 히포크라테스는 암과 그 밖의 장애들이 신체의 네 가지 체액, 즉
피, 점액, 황담즙, 흑담즙(우울질 melan cholo라고도 한다) 사이의 불균형으로 인해 생긴다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이 17세기 들어 르네 데카르트에 의해 뒤집어졌다. 데카르트는 당시 근래에 발견된 림프계와
암 사이에 관련성이 있음을 이해하면서 발전을 가로막고 있던 개념적 족쇄를 풀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갑자기 엉뚱한 길로 방향을 틀어 암이 부식된
림프로 이루어져 있다는 가설을 세우기 시작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잠들어 있는 병을 괜히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암은 함부로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단어였다. 암으로 사망한 경우에는 ‘악액질(cachexia)’이라는 용어로 에둘러 표현했다. 수전 손택에 따르면 이런 경향은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오늘날 그 역할은 AIDS가 넘겨받았다.
저자는 매들렌 렝글의 《바람의 문》에 나오는 ‘에크트로스’를 인용한다. 《바람의 문》은 퇴행성
질환으로 고통 받는 찰스 월러스라는 어리면서도 조숙한 소년이 주인공이다. 이 소년의 미토콘드리아는 심하게 손상되었고, 미생물학자인 월러스의
엄마가 그 원인을 알아낸다. 에크트로스라는 기운이 우주를 휩쓸고 다니며 그들이 ‘씽(Xing)’이라고 부르는 것을 이용해 질서를 파괴하고
있었다.
현실세계에서는 에크트로스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이 에크트로스는 세포를 따라다니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세포들을 탈분화시키며, 자유롭게 해방시켜 암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한편 물리학에는 ‘맥스웰의 도깨비(Maxwell’s demon)’이라는 오래된 사고실험이 있다.
맥스웰의 도깨비는 가상의 작은 생명체다. 우주는 필연적으로 무질서를 향해 흘러가게 되어 있는데, 이 도깨비는 떠도는 분자들을 낚아채서 재빨리
제자리로 돌려보내 이것을 극복하려 한다.
하지만 결국 승리를 거두는 쪽은 강물이다. 제아무리 애를 써도 맥스웰의 도깨비는 결국 패배하고 만다.
마지막에 가면 승리는 언제나 에크트로스의 몫이다. 마치 토마스 쿡이 말한 ‘사투르누스의 기습’과 같은
맥락이다.
다행히 아내 낸시는 암을 이겨냈다. 하지만 그 후 낸시와 헤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고 나면 사람은 자신의 남은 삶을 진정 어떻게 보내기를 원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낸시에게는 여생을 나와 함께하지 않겠다고 결정할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323~324쪽)
그는 책에 그 이유를 밝히고 있지 않다. 짐작해 보면, 저자는 과학 저술을 위해 자료를 찾고 현장을
누비느라 집안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실망하지 않았을까. 자신만의 여생을 보내고 싶었던 것일 게다. 암은 이렇듯
우리의 일상과 가치관까지 바꾸어버리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