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 - 화려한 빅토리아 시대, 더욱 숨어드는 여자 이야기
이주은 지음 / 이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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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영화감독 장 마크 발레는 2009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성장기와 왕위 초기 과정을 닮은 《영 빅토리아》를 만들었다. 영화에서 빅토리아 여왕은 왕위에 오른 후 섭정을 염두에 두었던 어머니를 배제시키면서, 적극적으로 빈민 구제 정책 등 자신의 소신을 펴나갔다. 한편 외삼촌 벨기에 레오폴드 왕은 여왕을 견제하기 위해 앨버트 공을 소개한다.

 

여왕은 앨버트 공과 결혼한 후 외삼촌의 의도를 눈치 채고 권력을 나눠주지 않았다. 어느 날 여왕 외부 행차 때 앨버트 공은 몸을 던져 테러범의 총알을 몸으로 막았다. 드디어 공을 신임하게 된 여왕은 권력을 그에게 나누어주게 되었으니.

 

이후 여왕이 앨버트 공을 얼마나 극진히 사랑했는가는 널리 알려져 있다. 여왕은 왕으로서의 권위보다는 한 남자의 사랑받는 아내로서 일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을 선호했다. 에드윈 랜시어 경이 그린 〈모던한 시대의 윈저 성〉을 보자. 여왕은 남편을 반기면서 수줍은 듯 자그마한 들꽃 다발을 내밀고 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눈길에 사랑을 가득 담아서. 

 

▲〈모던한 시대의 윈저 성〉(Windsor Castle in Modern Times, 1840~5, 왕실 컬렉션)

 

이주은 교수의 새 책이 나왔다. 이번 책은 2005년에 펴낸 『빅토리아의 비밀』을 토대로 다시 작업하여 ‘빅토리아 시대 여성’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책은 빅토리아 시대의 여자, 결혼, 매춘·스캔들 같은 정상과 비정상, 노동 그리고 레이디와 젠틀맨의 탄생 등 5개의 장으로 나누었다.

 

빅토리아 시대는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던 19세기 무렵(1837~1901)을 말한다. 이 시기 영국 사회는 결혼과 가족이라는 것이 인간을 바라보는 틀로 굳어졌다.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일하지 않는 남자는 낙오자 취급을 받는가 하면, 가정 외의 것에 관심을 두는 여자는 단번에 타락한 영혼으로 낙인 찍혔다.

 

당시 화가들은 풍습이나 종교적 색채가 짙은 상징을 널리 애용했다. 가령 정숙을 의미하는 사과도 자주 등장했다. 오거스터스 레오폴드 에그가 그린 〈과거와 현재 1〉은 아내가 남편 몰래 다른 남자와 정분을 통하다가 들통 난 모습이다. 두 쪽으로 쪼개진 사과가 테이블과 바닥에 흩어져 있다. 카드로 집을 짓고 있는 두 딸의 모습은 이 집안이 그 만큼 위태롭다는 것을 상징한다. 사실 그림 〈과거와 현재〉는 세 편의 연작이다.

 

그 다음은 장성한 두 딸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모습이고, 마지막은 집에서 쫓겨난 어머니가 집을 그리워하는 장면이다. 어머니는 혼외 정사로 낳았을 아이를 품고 있다. 두 딸과 어머니는 같은 달을 보고 있다.

 

▲〈과거와 현재 1〉(Past and Present, No.1, 1858, 테이트 갤러리)

 

▲〈과거와 현재 2〉(Past and Present, No.2, 1858, 테이트 갤러리)

 

▲〈과거와 현재 3〉(Past and Present, No.3, 1858, 테이트 갤러리)

 

존 에버렛 밀레이의 〈사과꽃〉(1856~1859 레이디 레버 아트갤러리)을 보자. 아직 꽃이 사과를 맺지 못했다. 소녀들은 한껏 풋풋한 젊음을 누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오른쪽 한 켠에 죽음의 사신이 들고 다니는 낫이 아닌가. 밀레이는 거칠 것 없는 젊음이라도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르니 너무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러준다.

 

▲〈사과꽃〉(Apple Blossoms, 1856~1859, 레이디 레버 아트갤러리)

 

한편 빅토리아 시대에 유명했던 모델이 둘 있었다. 바로 엘리자베스 시달과 제인 모리스다. 엘리자베스는 화가들 사이에서 ‘리지’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엘리자베스는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아내였고, 제인은 미술공예운동으로 유명한 월리엄 모리스의 아내였다. 로세티는 제인과는 평생 연인같은 친구로 지냈다. 로세티의 그림을 보면 신비한 얼굴을 한 제인을 모델로 한 작품들이 많았다. 엘리자베스는 존 에버렛 밀레이가 그린 〈오필리아〉의 모델이 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오필리아〉(Ophelia, 1850, 테이트 갤러리)


빅토리아 시대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룩한 대영 제국의 후광과 19세기 산업혁명의 여파로 영국이 태평성대를 누리던 시기였다. 사람들은 달콤한 시절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열광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사람들의 꿈은 샬럿의 거울 처럼 무참히 깨져버렸다.

 

저자는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고 채근한다. 조지 프레드릭 와츠의 〈희망〉을 보면 두 눈을 천으로 가린 여자가 오직 한 가닥의 줄만 남은 리라를 안고 지구 위에 앉아있다. 리라는 속계에서 천상으로 연결되는 통로요, 영혼의 세계와의 소통을 돕는 악기다. 리라의 줄이 끊어졌다는 것은 육체가 영혼의 세계와 단절되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아직 한 가닥 줄이 남아 있으니 이 얼마나 희망적인가.

 

▲〈희망〉(Hope, 1885~6, 개인 소장)

 

세상이 온갖 마몬의 탐욕과 한편으로 굶주림이 판치고, 불화와 갈등으로 전쟁이 그칠 날이 없을지라도 빅토리아 시대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잊지 말자. 이것이 바로 아름다운 명화에 깃든 비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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