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누추하고 불행은 찬란하다 - 장석주의 시 읽기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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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5년 2월 16일에서 10월 12일까지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에 소개된 것들, 그리고 2015년 한 해 동안 문화예술위원회의 '시배달'을 통해 배달한 시 일부를 모아 펴냈다.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있다 (31편), 2부 산다 (43편), 3부 죽는다 (34편) 그리고 4부 그럼에도, 사랑한다 (21편) 등 총 129편의 시가 실렸다. 시 전문은 해당 시인의 시집으로 읽거나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좋을 것이다.

 

어느 비 내리는 아침, 오태환 시인의 '안다미로 듣는 비는'를 찾아 읽는다. 인용은 시 전문에서 아래와 같이 일부만 나와 있다.


"한 치 두 치 나비 재며 한 냥쭝 두 냥쭝 저울에 달며 는실난실 날리는 비는"

저자는 시인의 시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소개하며 이에 대한 감상을 덧붙인다. 가령 이런 식이다.

"
비는 는실난실 날리고, 달빛은 개밥그릇이나 살강살강 부시고, 별빛은 새금새금 아삭한 맛으로 익어간다. 의태어와 의성어들을 반짝반짝하게 닦아내어 찰랑거리는 빛 속에 가지런히 내놓은 시인의 솜씨가 일품이다. 그것들을 소리 내어 읽으며 말과 말이 부딪치며 내는 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모국어의 황홀경에 가 닿는다. 때는 동지(冬至), 비는 두 손을 놓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게 아니다. 제 잣대로 한 치 두 치 나비를 재고, 제 저울로 한 냥쭝 두 냥쭝 무게를 단다. 어디 그뿐인가? 여기저기 발품을 팔고 다니느라 분주하다. “간조롱히 뿌리”고 “새들새들 저무는” 동지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날들은 꽤 괜찮은 시절이었을 테다. 안다미로 내리던 비 그친 저녁 노모가 달그락거리며 저녁상을 차리고, 김 오르는 이밥에 호박전과 호박젓국, 구운 김과 가자미 구운 것을 올린 저녁상 받을 생각에 군침을 삼키던 그 시절이 호시절이 아니면 무엇일까." - 198~199쪽

시 전문은 어떨까 싶어 찾아보았다.

*안다미로 듣는 비는 (全文)

처마맡에 널어 말린 동지冬至께 무청처럼 간조롱히 뿌리는 비는
한 치 두 치 나비 재며 한 냥쭝 두 냥쭝 저울에 달며 는실난실 날리는 비는

일껏 발품이나 팔며 그늘마다 구름기슭 볕뉘처럼 움트는 비는
전당포典當鋪도 못 가본 백통[白銅] 비녀 때깔로 새들새들 저무는 비는

꺼병아 꺼병아 애꾸눈서껀 엿장수서껀 칠삭둥이서껀
안다미로 눈칫밥 멕이다가 나무거울로 낯짝 가리고 내리는 비는

촌철살인과도 같은 시 한 구절이 던지는 감흥은 남다르다. 일본의 하이쿠 처럼 함축된 맛도 있다.

 

이런 행태의 시평은 시 전체의 감동을 대표할 수 있는 한 구절을 뽑아내는 저자의 안목이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저자만의 남다른 감각이겠다.

저자 장석주는 스무살 때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뒤,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에 입선했다. 이렇듯 저자가 시인과 평론가를 겸업하니 책에는 저자의 수완이 온새미로 담겨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에 핀 편도나무 꽃을 보자. 저자는 스물다섯 살 때 출판사에 들어가 교정을 본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을 읽고 크레타 섬에 가고자 희망했다. 마침내 시인은 2013년 여름, 크레타 섬에 갔다! 그리고는 이렇게 읊조렸을지 싶다. "편도나무야, 나에게 카잔차키스에 대해 이야기해다오. 그러자 편도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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