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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의 울음 ㅣ 버티고 시리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에서 지난 60~70년대 전국적으로 쥐잡기 운동이 펼쳐졌다. 집집마다 쥐약을 놓아 곳간의 쌀을 훔치는 쥐를 잡는 것이 목적이었다. 당장 성과는 나타났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쥐약을 먹고 돌아다니는 쥐를 잡아먹은 고양이, 부엉이나 올빼미가 죽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최종 포식자의 죽음은 결국 쥐의 숫자만 더 늘려놓고 말았다.
이 책의 제목, ‘올빼미의 울음’은 쥐와 같이 언제 잡혀 먹힐지 모르는 불안 그리고 곧 닥칠지도 모를 죽음을 상징한다. 고양이 앞에 놓인 쥐를 보았는가? 그 잽싸던 쥐도 고양이 앞에서는 꼼짝 못하거나, 겨우 어기적거릴 뿐이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올빼미의 울음은 어째 불안하기만 하다.
하이스미스는 1950년 『열차 안의 낯선 자들』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어 1955년에 『재능있는 리플리』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1962년 작가가 마흔 때 발표한 것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두 커플이 이끌어간다. 로버트와 니키 그리고 그렉과 제니. 로버트와 니키는 이혼을 앞둔 사이고, 그렉과 제니는 돌아오는 봄에 결혼할 사이다. 근데 등장 인물의 설정이 참 흥미롭다.
“겉으로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우연히 낯선 여자의 모습을 훔쳐보게 되면 갈등에 사로잡히는 로버트, 그러한 로버트를 경계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제니, 제니의 지극히 현실적인 남자친구이면서 로버트와 대립각을 세우는 그렉, 로버트와 이혼한 후에도 그의 일에 간섭하다 결국 그렉의 편에 서서 로버트를 궁지에 빠뜨리려는 기묘한 심리를 지닌 2류 화가 니키.” (옮긴이의 말 중)
로버트는 개인 비행기와 헬리곱터 부품을 만드는 ‘랭글리 항공산업’에 다니고 있었다. 그가 랭글리에 오기 전 뉴욕에서 온갖 가전제품을 새로 디자인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조용한 곳에 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우울했다. 정신과 치료를 몇 번 받은 적이 있었다.
9월 하순의 토요일 그는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집 현관 밖에서 작은 카펫을 털고 있는 제니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는 제니에게 반한 모양이다. 10초 남짓 스치고 지나가면서 본 모습이 전부인데? 맘에 들었던 것은 침착해 보이는 그녀의 성정, 쓰러질 것처럼 초라한 집에 대한 각별한 애정, 자기 삶에 만족하는 모습 따위였다.
하여튼 사건은 정말 단순하게 시작되었다. 로버트는 이삼주 간격으로 저녁 시간에 제니의 집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들키고 만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제니의 반응이 살갑다. 커피 한잔 하고 가라고 집으로 들이고 이내 저녁 식사 약속을 잡는다. 그녀 역시 3년 전 우울증에 걸린 적이 있었다.
이후 상황은 꼬일 때로 꼬인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던가? 질투심에 사로잡힌 그렉은 제니를 만나러 가는 로버트를 붙잡고 대판 싸움을 벌인다. 이 와중에 미끄러져 강물에 빠진 그렉. 로버트는 그렉을 건져 주고 서둘러 현장을 떠났다. 한편 그렉은 이후 며칠 째 통 소식이 없다. 경찰이 그렉의 실종을 수사하기 시작하면서 로버트는 하루아침에 그렉을 죽인 살인자로 몰리게 된다.
자, 제니는 어떤 운명에 놓였을까? 그녀는 자살한다. 수면제 과다 복용. 그녀가 써 놓은 유언장이 소설의 테마를 암시한다.
“로버트에게, 당신을 무척 사랑해요. 이젠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훨씬 더 깊이 사랑해요. 이젠 당신과 모든 걸 이해해요. 최근에야 당신이 죽음을 상징한다는 걸,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미리 정해진 운명이었어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분명히 알아요....” (206쪽)
제니의 죽음은 이 작품의 전반부를 장식하는 메인이다. 후반부는 니키의 죽음이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허망하디 허망하다.
이렇듯 “소설 속의 인물들은 범죄와 폭력에 휘말리면서 결국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마치 블랙홀에 빠져들 듯이 서서히 죽음 속으로 빠져든다”
그 중심에는 로버트가 있었다. 과연 무엇이 ‘올빼미의 울음’까? 로버트, 그인가? 아니면 그를 둘러싼 상황인가? 이 작품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