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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속임 그림 - 트롱프뢰유, 실재를 흉내 내고 관객을 속이다
이연식 지음 / 아트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미술 이야기꾼 이주헌 씨에 따르면 트롱프뢰유라는 말은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생겨났다. 하지만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화가 제욱시스와 파라시우스에서 나왔다.
제욱시스가 포도를 얼마나 실물과 똑같이 그렸는지 새들이 날아와 이를 쪼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소문을 들은 파라시우스도 자신에게 그에 못지 않는 능력이 있다며 제욱시스를 자신의 아틀리에로 초대했다.
한편 제욱시스가 도착했을 때 파라시우스의 그림이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제욱시스는 아직 준비가 덜 된 모양이라고 생각되었지만, 호기심이 일었던 터라 다짜고짜 커튼을 잡아 젖히려 했다. 그런데 커튼 자체가 그림이었다. 제욱시스가 파라시우스의 솜씨에 그만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간 것이다.
트롱프뢰유(trompe-l’œil). 트롱프뢰유는 ‘눈속임’이라는 프랑스 말로 그림을 실제 사물로 혼동하게 만드는 매우 사실적인 표현 기법과 그림들을 일컫는다.
저자에 의하면 ‘트롱프뢰유’란 얼른 보고는 실제 사물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실제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을 흉내 내어 만든 그림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가 바로 트롱프뢰유다.
서장과 종장은 제목은 제욱시스와 파라시우스의 일화에서 각각 따왔다. 서장이 ‘제욱시스의 포도’이고, 종장이 ‘파라시우스의 커튼’이다. 서장에서 비록 포도는 나오지 않지만. 얀 판 데르 파르트의 「바이올린」이 이를 대신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한편 종장에서는 커튼으로 눈속임을 한 그림들이 다수 소개되어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트롱프뢰유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그림들이 한가득 담겨 있다. 사냥감과 생물, 그려진 종이, 그림 위의 그림, 열린 그림, 뛰쳐나오는 그림 그리고 사물이 된 그림 등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인상적으로 본 그림은 찰스 윌슨 필의 「두 아들」과 마그리트가 그린 「인간의 조건」이었다. 필은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초상화를 60여 점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두 아들이」라는 그림을 자신의 아틀리에 벽면에 그려놓았다. 어느 날 워싱턴이 아틀리에를 방문했을 때 그림 속의 인물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는 일화가 회자되고 있다.

▲르네 마그리트「인간의 조건」, 1934, 내셔널갤러리 (워싱턴D.C.)
「인간의 조건」은 창문 앞에 자리 잡은 이젤에 유화가 한 점 걸려 있다. 유화에 그려진 풍경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딱 맞아떨어진다. 어떤 조건이 맞기만 하면 우리는 흔히 그려진 것을 실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양쪽의 커튼도 마찬가지다. 마그리트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멋지게 비틀어 보인 셈이다. 어쩌면 트롱프뢰유는 잘난 인간들을 향해 던지는 화두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