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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도쿄의 거리에서 - 1923년 간토대지진 대량학살의 잔향 ㅣ 카이로스총서 37
가토 나오키 지음, 서울리다리티 옮김 / 갈무리 / 2015년 9월
평점 :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도쿄 일원을 강타한 대지진이 발생했다. 일명 관동(간토) 대지진. 수십 만의 사람들이 죽거나 행방불명이 되고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로 재산상 피해가 컸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극심한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혔다. 금방이라도 폭동이 일어날 기세였다. 당시 정부와 경찰은 시민들의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으면 자신들이 화를 입으리라고 직감했다. 희생양을 찾았다. 분노를 표출할 통로가 필요했다!
당일 조선인들이 방화를 하고 우물에 독을 탔으며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다. 1일 오후 3시경 경시청이 공식적으로 유언비어를 확인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일본 내무성이 경찰에 내려 보낸 문서가 발단이 되었다. 문서에 조선인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내용이 포함되었던 것이다.
일본인들은 죽창, 칼과 몽둥이 따위를 들고 조선인을 보는 족족 무차별 학살했다. 조선인 학살은 장장 7일 이상 지속되었다. 이 기간에 희생된 조선인 숫자는 6천 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이때 일본 행정당국, 군대와 경찰 그리고 일본인으로 구성된 자경단 등이 관여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저자 가토 나오키는 일본 프리랜서 작가다. 그는 수많은 증언과 발굴 문서를 섭렵하면서 간토대지진의 진실을 파고들었다. 저자는 그렇게 조사한 자료들을 블로그에 공개했다. 이 책은 저자가 블로그에 쓴 글들을 묶은 것이다. 그간 간토 대학살에 관한 책은 다수 있었으나, 이 책 만큼 디테일하게 접근하지는 못했다.
▲9월 1일 도쿄에서 강연 후 대담하는 저자 가토 나오키
그가 내린 결론은 무엇일까? "민족차별 또는 인종주의에서 비롯한 유언버이에 선동돼 평범한 사람이 학살에 손을 담근" 탓이다.
나치는 아리아인의 우생학적 우월성을 내세워 유대인을 수백 만 명 학살했다. 2001년 9 11 테러 이후 미국에서는 백인들이 유색 인종에 깊은 반감을 표시하거나 노골적으로 보복을 가했다. 어디 이 뿐일까? 2005년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일대를 강타한 이후 백인 자경단이 흑인들을 공격했다. 나는 '민족차별 또는 인종주의'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언제든 재현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간토 대학살 같은 사건을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무엇보다 다른 민족과 인종을 비인간적으로 보는 인종주의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인종주의자와의 싸움은 일상에서 꾸준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일본 정부는 조선인 위안부, 난징 대학살 같은 만행을 놓고 사과나 반성은 커녕 부정하거나 왜곡하기에 여념이 없다. 과거사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철저한 진실 규명, 처절한 반성과 각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래야 진정한 인권
회복과 민족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저자는 당시 희생된 조선인(중국인도 포함해서)들의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며 야만과 광기의 시간을 재현했다. 또한 조선인을 구하기 위해 결연히 맞섰던 일본인, 대학살에 대한 반성과 고인의 추모에 나선 일본인과 단체에 대한 언급도 빠트리지 않았다.
나는 가토 나오키 같은 양심적인 지식인의 열정과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살아 있는 양심은 짐승의 역사가 재발될 때 단호히 "노!"라고 외칠 수 있는 행동으로 나설 수 있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