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베는 59세 남자다. 그는 사브를 몬다. 그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의 사람이 있으면, 마치 그 사람은 강도고 자기 집게손가락은 경찰용 권총이라도 되는 양 겨누는 남자다."

30대 중반의 유명 블로거이자 칼럼니스트 프레드릭 배크만의 첫 장편 소설,《오베라는 남자》는 이렇게 시작된다.

 

내게 '오베'는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였다. 물기 조차 스며들지 없을 정도로 엄격한 일상을 살아가는 무뚝뚝한, 59살 먹은 스웨덴 남자.

 

가령 6시 15분 전에 눈을 떴고, 매일 아침마다 커피 여과기를 사용했고, 늘 정확히 똑같은 양의 커피를 내렸으며, 그런 다음 아내와 커피를 마셨다. 컵 두 개에 한 잔씩 따르고 나면 주전자에 한 컵 분량이 남았다. 그런 다음 아침 시찰을 하러 거리로 나갔다.

 

한편 오베가 사랑했던 아내 소냐는 6개월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소냐가 없는 세상은 살아갈 가치가 없는 곳이었다. 오베는 아내 곁으로 가기 위해 자살을 준비하고, 시간나는 대로 시도한다. 아내가 묻힌 곳 옆에 묏자리도 마련해 놓았다. 미리 써둔 유서를 봉투에 넣은 뒤 재킷 안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이야기는 현재의 오베와 과거의 오베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작가는 현재의 오베 이야기에는 '오베라는 남자'를 붙이고, 과거의 이야기에는 '오베였던 남자'를 붙였다. 그래서 나는 혼란을 덜 느끼면서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다.

 

오베가 어떻게 소냐를 만났는지 어떻게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음을 맞았는지 현재의 오베와 오버랩된다.

 

오베의 일상과 회상을 따라 가다보면 소냐와 여러 이웃들의 삶이 어떻게 얽혀져 있는지 흥미롭게 펼쳐진다.무뚝뚝한 줄만 알았던 오베에게 의외의 눈물과 따뜻한 인간미를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맨 처음 오베가 아이패드를 사러 매장에 들른 일화가 나온다. 이는 단지 하나의 에피소드에 그치지 않고 나중에 파르바네의 일곱 살 짜리 딸과 절묘하게 얽힌다.

 

비단 이것 뿐이 아니다. 철로에 떨어진 한 남자를 구해 준 일화는 치매에 걸린 절친 루네가 시설에 이송되지 않도록 하는데 천군만마를 얻게 해준다.

작가는 다양한 복선과 치밀한 구성을 통해 현대인을 속박하는 각박한 일상 속에서도 우리가 결코 놓칠 수 없는 인간미를 잘 살려냈다. 그리고 외국 이주자와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해서도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오베의 마음을 열게 해준 파르바네(페르시아어로 '나비'라는 뜻)는 이란 여성이다. 파르바네는 마치 나비의 날개짓 마냥 오베의 마음을 열게 하는 메신저다.

오베는 스웨덴의 국가적 자존심에 가까운 브랜드 '사브'에 목숨을 건다. 하지만 작가에게 애국적 혈통주의는 닫힌 사회를 의미할 뿐이다. 오베의 마음을 열게 한 것처럼
타인 또는 이방인과의 공존은 생존의 문제에 가깝다.

 

 

오베는 결국 죽음에 이른다. 자살이 아닌, 오래 전부터 앓고 있던 선천성 심질환 때문이다. 친구 하나 없어 외로이 눈물을 흘리던 오베의 장례식에 삼백 명이 가깝게 참석한다. 오베의 통장을 물려받은 파르바네는 '소냐 기금'을 창설했다. 고아들을 위한 자선기금, 오베와 소냐가 가장 좋아할 만한 방식으로 기부한 것이다.

 

참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고양이. 소냐가 죽기 전 키우던 어니스트는 소냐의 아버지가 낚시를 다닐 때면 항상 같이 했었다. 소냐는 어니스트가 죽자 큰 상실감을 느꼈다. 바로 아버지의 유품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오베는 어느 날 맞닥뜨린 길고양이를 식구로 받아들인다. 소냐가 사랑했던 어니스트를 떠올리며, 길고양이를 통해 소냐를 떠올린다.

 

어쩌면 작가에게 세상이란 미우나 고우나 이렇게 모두가 어울려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웨덴의 노땅(?) 오베가 살아가는 방식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거기나 여기나 사람사는 세상은 매한가지. 위트있는 문체, 코믹한 에피소드 그리고 웃음을 자아내는 상황은 단연 압권이다! 나는 원칙을 지키는 오베의 우직함에 매료되었고, 파르바네의 따사로움에 한없이 고무되었다. 강추!

 

"자기 원칙을 걸고 싸울 준비가 된 사람들이 더 이상 세상에 없는 걸까?"

루네가 물었다.

 

"하나도 없지."

오베가 대답했다. - 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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