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 - 기쁘게 살아낸 나의 일 년
수전 스펜서-웬델 & 브렛 위터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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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수전에게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지난 4일, 당신이 플로리다의 어느 병원에서 눈을 감을 때 남편 존, 언니 스테퍼니, 세 아이(머리나, 오브리, 웨슬리) 그리고 절친 낸시가 지켜봤겠지요?

 

아니, 어쩌면 당신이 법원 출입기자로서 20여 년간 몸 담았던〈팜비치 포스트지〉의 사람들도 함께 했겠지요? 미처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함께 말이에요.

 

2009년 여름 어느 날 왼손에 힘이 없어지면서 앙상하고 파리해지는 것을 발견하면서, 2년 뒤 6월 ALS(루게릭병)으로 확진 받았더군요. 얼마나 마음이 애잔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아요. 그래요, 당신은 그렇게 진단받은 지 3년이 흐른 이번 6월 천국으로 떠났지요.

 

수전, 당신이 눈을 감던 그 날 난 당신이 쓴 책을 읽으면서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을 글썽거렸답니다. 당신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예감한 듯 그 불편한 몸으로 겨우 3개월 만에 책을 완성했다지요. 그것도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 엄지로 톡, 톡 치면서 말이에요. 당신의 그 뜨거운 열정과 강인한 의지에 다시 감복합니다.

 

마침 책을 읽으면서 당신과 당신 가족의 사진을 구글에서 찾아봤어요. 단란했던 가족의 모습이 많이 올려져 있더군요. 책을 통해 느꼈던 정감을 사진으로 다시 확인할 수 있어서 더 좋았지요.

 

당신은 책을 읽는 내게, 아니 수많은 독자들에게 이렇게 물었지요? “당신이 곧 죽게 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무엇을 보겠는가? 마지막 한 해를 누구와 함께 보내겠는가?”

 

▲가족과 함께 (왼쪽부터 웨슬리, 스테퍼니, 머리나, 오브리, 존 그리고 수전)

 

그래요, 3년의 시간 동안 당신은 하고 싶은 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어요. 진단받고 3주 뒤 플로리다 케이프커내버럴에서 우주왕복선이 발사되는 장면을 목격했다지요? 아마도 당신의 첫 번째 버킷 리스트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정식으로는 유콘으로 가서 오로라를 본 것일 테지만요.

 

자연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장관 중 하나. 지국의 극지방에서만 보이는 현상, 녹색과 흰색, 때로는 붉은색, 분홍색, 자주색, 푸른색으로 펼쳐지는 천광(天光)의 쇼. - 75쪽

 

오로라를 이렇게 멋있게 묘사한 표현을 여태껏 보지 못했어요. 그래요, 당신의 문장력은 팜비치 포스트의 메인 기자로서의 경력이 말해 주는 것 이상으로 탁월해요. 당신은 아마 작가로서 등단했어도 큰 성공을 거두지 않았을까 싶어요.

 

또한 당신은 야스퍼거 증후군에 걸린 막내 웨슬리를 위해 27킬로그램짜리 유순하고 순종적인 그레이시를 입양하기도 했지요. 아무나 껴안지 않고 낯을 가리던 웨슬리가 그레이시와 함께 뒹굴고 잠도 같이 자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흐뭇했을지 상상이 갑니다.

 

 

 “죽음과 맞닥뜨리면 뭔가 남기고 싶은 마음이 절절해진다.” 사실 이 말은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해요. 당신이 남긴 긴 글을 읽으면서 절절한 그 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당신은 세 아이와 개별적인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지요. 아이들이 엄마의 생전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평생 동안 간직할 추억거리를 안겨주기 위해서 말이에요 그 절절한 엄마의 마음을 전해 주기 위해서 말이에요.

 

하지만 아무래도 자폐 증세를 보이는 웨슬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지 않았나 해요. 책에서 맨 먼저 웨슬리와 돌고래와 함께 수영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낸시 마스 키널리(당신은 풀 네임을 적었더군요!)와의 이야기도 참 감동적이었어요. 낸시와는 열한 살 때부터 팜비치 공립 중학교에서 처음 만나 줄곧 친구사이로 지냈지요? 이어 노스캐롤라이나대와 플로리다대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하고 당신의 인생에서 더없이 소중한 몇 안 되는 인간관계 중 하나라고 극찬했지요? 저도 그런 절친 있었으면 하고 무척 부러웠답니다!

 

당신의 생일은 1966년 12월 28일. 나이 마흔이 된 어느 날 플로리다 아동가정단체에서 전화를 받았지요? 생모 엘런이 찾는다구요. 의사였던 생부 파노스 켈라리스는 같은 병원에 있을 무렵 생모와 잠시 사랑을 나눴지만 이내 헤어지고 말았다지요. 엘런은 혼자서 수전을 낳고 입양을 결심했구요. 그렇게 해서 당신은 양모 티 스펜서의 손에 길러졌지요.

 

당신은 플로리다에서 3천 마일이나 떨어진 캘리포니아로 날아가 생모와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지요? 항상 함께 했던 절친 낸시와 함께 말이에요. 생모 앞에서 마리화나도 피우구요. 아마도 대학 시절 잠시 반했던 수영선수가 떠올랐는지도 모르죠, 훗. 하지만 양모와도 떠나는 시간을 위해 친밀한 시간을 보내는 당신을 보면서 섬세한 배려를 배우게 됩니다. 생부 파노스가 일찍 세상을 떠난 탓에 비록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그이의 고향 키프로스를 찾았지요?

 

한편 생모를 통해 ALS가 유전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하던 당신의 모습이 눈에 선해요. 세 아이들에게 당신의 운명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의 기쁨,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겠어요?

 

 

책을 읽다가 공감하는 부분도 참 많았답니다. ALS로 진단받고 자살을 생각해서 자살에 관한 책을 주문했다거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묘사된 오르가슴이 유치했다거나, 이뻐 보이고 싶은 마음에 문신으로 영구화장을 하는 모습 등 남자인 나로서도 크게 고개를 끄덕였지요.

 

무엇보다 절절했던 것은 존에게 재혼하라며 생애 마지막 소원과 희망을 전할 때였어요. 홀로 남을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 더없이 소중한 선물을 안겨주려는 그 마음, 잘 알 것 같아요.

 

수전, 당신은 남편 존 웬델과 이 년간 신혼을 보낸 도시 부다페스트도 다시 찾았지요. 두 사람이 함께 했던 삶의 초석이 놓인 곳, 얼마나 의미 깊은 곳일까 생각해 봅니다. 거기서 존이 토끼 스튜를 만들려고 토끼를 잡아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꺼낸 뒤 토막을 치는 모습을 보았지요. 하지만 당신은 끔찍한 장면에 몸서리치기 보다 “언젠가는 나 없이 새로운 모험이 가득한 또 다른 삶을 살아야”하는 존의 모습에 안도하였다지요?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이전 직장 동료 스티브 사리코와 작별 인사 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흐르던 눈물. 당신이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았던 곳 그리고 알았던 사람들을 차례로 찾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작별의 광경이기도 했겠지요. 내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고입니다.

 

수전, 당신을 통해 비로소 오늘의 삶에 감사할 수 있는 겸손을 배웁니다. 그리도 당신과 같은 불치병으로 고통받을 모든 이들에게 평안을 기도할 수 있는 미덕을 깨닫습니다.

 

고마워요, 수전. Eye-heart-u. 부디 편히 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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