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애니멀 -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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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호모 픽투스(Homo fictus, 이야기하는 인간)에 관한 것이다. 우리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이야기는 인간의 삶과 단단히 밀착해 있다. 이야기에 빠져든다는 것은 꿈과 공상, 노래와 소설과 영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픽션은 인간의 삶에 속속들이 스며 있다.

 

이인화 교수에게 갓셜이 말하는 ‘픽션’은 ‘서사’다. 이 교수에 따르면 “서사는 흔히 스토리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소설, 영화, 게임, 드라마, 애니메이션, 만화 등 다양한 매체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또한 “서사 창작은 인생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생득적이고 기본적인 활동”이기에 “서사 창작은 공생적이며 서사는 공생의 도구”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픽션’이든 ‘서사’이든 언표는 비록 다를지언정 언설은 대동소이하다.

우리가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이 공통의 가치로 한데 묶이고 오래 전부터 구전되어 오는 문화적 원형을 공유하기 때문이 아닐까?

 

노엄 촘스키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언어는 기본적인 구조의 유사성, 즉 보편 문법을 공유한다. 저자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문학의 역사를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세계 민담의 밀림과 황무지를 아무리 깊이 파 내려가도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와 똑같다는 놀라운 사실을 어김없이 발견한다. 전 세계 픽션에는 보편 문법, 즉 주인공이 말썽과 맞서 이를 극복하려고 분투하는 심층 패턴이 있다.

 

저자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말하는 온갖 이야기의 표면 아래에는 공통된 구조가 숨어 있다고 지적한다. 즉 전 세계의 이야기는 거의 예외 없이 문제가 있는 사람(또는 의인화된 동물)에 대한 것이다.

 

가령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거나 살아남기를 바라거나, 이성을 차지하기를 바라거나, 잃어버린 아이를 찾기를 바라는 것 등이다. 하지만 주인공과 그의 소원 사이에는 커다란 장애물이 가로놓여 있다. 거의 모든 이야기의 주제는 주인공이 소원을 이루려고 애쓰며 대개는 그 과정에서 온갖 역경을 마주하며 싸워서 이겨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의 기본 공식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이야기 = 인물 + 어려움(역경) + 탈출 시도

 

픽션은 삶의 거대한 난제를 시뮬레이션 하는 강력하고도 오래된 가상 현실 기술이다. - 93쪽

 

저자는 이야기의 원류를 찾아 꿈, 뇌 그리고 종교 영역을 넘나든다. 그래서 그는 결론적으로 이야기는 인간 사회를 결속하는 원동력이요, 공통의 가치를 강화하고 공통의 문화라는 매듭을 단단히 매어 사회를 결속시키는 접착제라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하인리히 하이네 역시 “(이야기가 담긴) 책이 소각되는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소각되고 말 것이다.”고 경고했다.

 

갓셜은 대표적인 이야기로 제임스 배리의 《피터 팬》을 든다. 피터 팬은 달링 부인의 세 아이와 함께 네버랜드로 날아가 위험에 빠진 공주를 구하고, 해적 후크 일당을 무찌른다. 이처럼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동서고금에서 공통적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이는 아이들에게 도덕적 가르침을 일깨우는 중요한 역할도 담당해 왔다.

 

저자에 따르면 피터 팬의 네버랜드는 우리의 본성이요, 이에 탐닉하는 우리는 스토리텔링 애니멀이다.

 

가장 흥미로운 예시는 아마도 셜록 홈스일 것이다. 갓셜은 모든 사람의 뇌에는 작은 셜록 홈스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추리 이야기에 탐닉하는 이유는 우리의 오감으로 관찰되는 것을 ‘역추리’해서 특정한 결과로 귀결된 원인의 질서 정연한 연쇄를 밝히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즉 인류의 조상에서 현대인들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우리 속에 홈스를 넣어 둔 까닭은 세상이 실제로 음모, 책략, 제휴, 인과 관계 등 온갖 흥미로운 말썽으로 가득하며 이를 탐지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이야기하는 마음은 중대한 진화적 적응이다. 그 덕에 우리는 삶을 일관되고 질서 정연하고 의미 있게 경험한다. 삶이 지독하고 소란스러운 혼란에 머물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무척 기발한 지론이 아닐 수 없겠다.

 

끝으로 저자가 추천하는 이야기를 언급하고 마치자. 그에 의하면 이언 매큐언의 ‘속죄’, 얀마텔의 ‘파이 이야기’, 줌파 라히리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 조너선 프랜즌의 ‘자유’ 그리고 코맥 매카시의 ‘로드’ 등이다.

 

아직 못 읽어본 작품도 두엇 있다. 나는 이런 식의 추천작을 보면 얼른 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스토리텔링 애니멀인 거겠지,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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