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 - 뚜렷한 절망과 은밀한 위로
올리버 색스 지음, 강창래 옮김, 안승철 감수 / 알마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올리버 색스는 옥스퍼드대학교 퀸스칼리지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이 책 초판을 낸 것이 1970, 37세 때였다.

내가 보기에 색스는 자신이 지닌 전문성을 어떻게 확장하면 좋을지 잘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호손덴 상, 포크 상, 구겐하임 상 등 여러 문학상을 받을 정도 뛰어난 필력을 보여 주었다.

 

관심을 가지는 분야도 다양해서 뇌과학, 인지과학, 여행기, 음악 등 광범위하다. 특히 그는 한 가지 주제나 특정 사례를 몰입해서 파고드는 데 일가견이 있다.

 

또한 뇌신경과 인지 장애를 앓는 환자들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우리 삶의 대안적 존재방식,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는 생활 모습, 또는 전혀 다른 인간으로 변화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뿜어낸다. 재미있어 읽는 맛도 좋지만, 교양적 차원에서 배움의 무게도 적지 않다.

 

이 책 역시 그랬다. 아니, ‘편두통이라는 주제로 500여 쪽이 넘는 대작을 써내다니 절로 입이 벌어질 판국이다. 이 책은 초판을 낸 시점에서 22년이 지나 편두통에 관한 새로운 매커니즘을 추가하고 편두통을 다루는 데 도움이 되는 약과 요법도 두루 섭렵했다.

 

편두통으로 인한 고통에 대한 묘사는 지난 2천 년 동안 계속되었다 한다. 그간 숱하게 임상적 증세를 기술 교과서는 물론이겠거니와 문학, 그림과 음악 등 다양한 인문학적 영역에서 서술되고 묘사되어 왔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책은 크게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편두통 증상

2부 편두통의 발생

3부 편두통의 기반

4부 편두통 치료법

5부 편두통이라는 보편적인 경향

 

저자에 의하면 전체 인구 중 대략 10분의 1이 일반 편두통으로, 50분의 1이 고전 편두통으로, 그리고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이 희귀한 편두통 변종으로 고통받고 있다. 또한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편두통 유사증상과 독립된 아우라에 시달리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오진되는 경우가 많아 그 수를 정확히 짐작하기 어렵다.

 

색스는 우선 두통과 욕지기가 대표적인 증상인 일반 편두통 증례로 시작한다. 이어 편두통의 일반적인 모습을 모두 갖고 있는데도, 특별히 두통이라는 요소가 없는 복합적인 증상을 보이는 편두통 유사증상을 소개한다. 다양한 문헌을 검토하고 폭넓은 환자 사례를 소개하고 있어 임상 교과서를 대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밖에서 찾아 헤대던 경이로움을 우리는 스스로 지니고 다닌다. 아프리카의 모든 것, 그리고 아프리카의 경이로움이 우리 안에 있다. - 111

 

색스에 따르면 토머스 브라우니 경의 이 말이 편두통 아우라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묘사다. 편두통 아우라에서 일어나는 감정적인 상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a. 갑작스럽게 시작한다.

b.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의식의 전면에 나타나는 내용들과 부조화를 이룰 때가 많다.

c. 너무나 강렬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d. 수동적이며 강제로감정 변화가 일어난다.

e. 짧게 지속된다(몇 분 이상 지속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f. 정적이고 시간이 정지된 느낌을 준다. 이런 상태는 깊어지고 강렬해질 수도 있지만, 어떤 이 일어났다는 느낌이 없는데도 생길 수 있다.

g. 적절하게 묘사하기가 불가능하거나 아주 어렵다.

 

위의 증상이 보이면 간혹 간질이나 인체에 다른 병이 있음을 암시할 수도 있지만. 분명히 편두통 자체로 수많은 복합적인 뇌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높은 수준의 뇌 기능 변화는 대부분의 편두통 아우라에서 발생한다.

 

편두통으로 인한 중요한 장애의 범주는 다음과 같다.

a. 시각 인식의 복합적인 장애 : , 모자이크, 시네마토그래픽 비전 등

b. 몸을 사용할 때와 인지할 때의 복합적인 어려움

c. 모든 범위의 말하기나 언어 장애

d. 두 개나 여러 개의 의식이 있는 상태. 종종 기시감이나 미시감

 

이런 심각한 편두통 증상들은 서로 배타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여러 수준에서 겹친다. 여기서 모자이크 비전이라는 용어는 시각저인 이미지가 조각나서 만들어진 비규칙적인 면과 수정 같은 다각형 면들이 모자이크처럼 잘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다음 그림을 보면 편두통으로 인한 모자이크 비전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아래 그림들은 직업적인 화가 아닌 편두통 아우라를 경험한 사람들이 시각적인 현상을 그린 것이다 (영국편두통협회 제공).

 

 

 

 

 

 

 

이어 색스는 편두통성 신경통, 반신마비 편두통, 눈마비 편두통, 가성 편두통 등 다양한 편두통의 증상과 사례를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편두통은 정서적으로 강한 스트레스와 요구가 있을 때 나타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정기적으로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편두통은 정신-신체적 질병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편두통을 관리하는 일반적인 방법 중에 발작을 촉발하는 상황을 피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또한 편두통 환자나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관계를 시작하면서 의사소통을 제대로 해야 완화되거나 치유될 수 있다.

 

발작 초기에 진한 차와 커피를 연달아 마시는 것은 언제나 추천할 만하다고 하니 참고하자. 골치가 아픈 일이 있으면 커피 한 잔!’하고 외쳐볼 일이다.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할 경우에는 의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옮긴이 강창래 선생은 편두통원문이 색스의 다른 책과는 달리 명료하지 않아 번역하는 동안 어려움이 많았고,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 의학 전문 사이트를 끝없이 뒤져야 했다고 토로한다. 가히 전문 서적에 가까운 원서를 우리말로 옮기는 고충이 어떠했을지 어림하기 어렵겠다.

 

선생은 비록 비전공자이지만 뇌 과학에 공부할 기회도 있었고, 평소 관심도 많아 선뜻 번역을 맡았다고 하니, 그 직업 정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뇌 전문가 안승철 교수의 감수를 거치고, 편집부의 수개월에 걸친 노고 덕분에 수려한 미문으로 탄생했다. 올리버 색스의 열정과 필력의 진면목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올해 2판이 나온 지 꼭 22년이 되는 해이니 3판을 기대해도 좋을까? 하지만 벌써 그의 나이 80세를 넘겼으니 좀 어렵지 싶다. 내심 후학들이 색스의 노고를 이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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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 2014-05-31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싶은데, 분량상 현재로선 부담이 되었는데 좋은 서평 정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사랑지기 2014-06-18 23:02   좋아요 0 | URL
아! 답변이 늦었지만, 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