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 창조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16가지 이유
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김명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는 성서에 쓰인 창조론을 신봉하는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가 주장하는 이론이다. 그들은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이러한 지적 설계 운동이 세계를 선도하는 미국 과학을 위기에 몰아넣고, 그럼으로써 과학발전과 이에 따른 기술발전에 의해 추동되는 미국 경제에 엄청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것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전부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지적 설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미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정교분리주의'를 걷어차 버리려는 것이다.

"국회는 한 종교를 국교로 정하거나 혹은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제약하는 어떤 법률도 만들지 못한다." - 미 헌법수정조항 제1조

엮은이 존 브록만은 각 분야의 진화론관련 최고 과학자 16인이 쓴 지적 설계 운동의 주장을 반박하는 열여섯 편의 에세이를 모았다.

그는 굳이 이들이 나서지 않아도 과학과 이성이 진화론 편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전제한다. 이어 '창조론-진화론' 논쟁에서 특정 질문들이 계속 고개를 들고 있어 자연선택이 어떻게 답을 줄 수 있는지 공개 발언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토로한다.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창조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 생물의 주요 집단들은 조상 없이 갑자기 생겨났다.
이 주장은 약 5억 4천만 년 전에 수많은 다세포 생명 형태가 비교적 갑자기 출현한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말한다. 화석기록에 의하면 이전에 더 단순한 형태가 있었고, 다른 주요 집단들은 훨씬 나중에 점진적으로 출현했다.

또한 토끼나 박쥐 같은 일부 집단이 조상 화석 없이 완전히 새로운 유형으로 화석기록에 출현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다윈 조차 곤혹스러워했던 문제였다. 다윈 시대 당시 중간 화석이 거의 발견되지 않아 창조론자의 이런 류의 반박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어려웠다.

2.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일어나지만, 오직 '같은 종류'내에서만 일어난다. '종류들' 사이의 진화적 이행은 일어나지 않는다.
진화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공통조상을 보여주는 수많은 증거를 갖고 있다. 그 증거로는 중간 형태의 화석들뿐 아니라, 발생학, 유전체 비교 그리고 흔적 기관의 존재 등이 있다.

3. 우리는 지구가 젊은지 늙었는지 모른다.
창조론에서 지구 역사 6000년이다. 하지만 오래된 지구설을 뒷받침ㅂ하는 과학적 증거는 상당하고, 이 증거들은 여러 연대추정 방법들로 부터 나온다. 지구 역사가 6천 년에 불과하다는 것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탄소연대추정법 등을 사용하면 오래된 역사도 밝혀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4. 자연선택은 복잡한 생물을 만들 만큼 충분히 강력하지 않다.
종의 분화와 자연선택은 다르다. 단순 생물에서 고등 생물로 진화하는 것은 일방향성 측면에서 그렇지, 다양한 고등 생물로 분화하듯이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단 단일 종의 생물에서 눈과 같은 복잡한 기관이 생기거나 심해에서 퇴화하는 것에 관해 창조론은 설명하지 못한다.

 


스탠퍼드대 이론물리학 레너드 서스킨드 교수는 "근본적인 창조주의자들은 설득해봐야 소용없다"면서, "상충하는 논쟁 앞에서 쩔쩔매며 어쩔 줄 모르는 대다수 지각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라"고 조언한다.

캘리포니아대 고생물학자 팀 D. 화이트 교수는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15만 5천 년 전 헤로토 남성을 통해서 진화론에 대한 지론을 피력한다.

성서의 창조 이야기는 수백 년 동안 전해 내려왔다.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인간은 창조된 이래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우리와 비슷했던 두발보행 영장류들이 지난 6백만 년 동안 반복적으로 멸종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과거는 일부가 비어 있는 현재가 아니다. 증거를 바탕으로 하는 진화적 관점은 과거 세계들이 매우 다르고 복잡하고 매혹적이었음을 알려준다. 증거에 대한 연구는 진화를 우리를 위한 세상을 창조하기 위한 과정으로 보기보다는, 그 결과에 우연히 우리가 포함된 현재 진행 중인 거대한 실험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 109쪽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지구가 1000억 개의 은하로 이루어진 우주에서 생명이 살고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생각은 무모하고 자만심에 찬 것이라는 경각심이 들지 않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다른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하지만 도킨스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정작 다른 곳에 있다. 그는 우리가 지구 생명의 어떤 측면이 너무나 복잡해서 그것이 설계된 것이 분명하다는 증거를 발견한다면, 외계의 지적 존재에 의해 설계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이때 초자연적 설명은 설명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지적 설계를 주장하는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 대표적인 논증은 다음과 같다.

1. 눈은 환원 불가능하게 복잡하다.
2. 그러므로 눈은 점진적으로 진화할 수 없었다.
3. 그러므로 눈은 설계된 것이 틀림없다.

이와 관련하여 부록에 첨부된 존 E. 존스 판사가 내린〈펜실베이나 중부 미국 연방 지방법원 판결문〉(2005. 12)을 보면 명쾌한 판결이 내려져 있다.

"환원 불가능하게 복잡한" 체계들은 다원주의, 혹은 어떤 자연적 메커니즘을 통해서도 생산될 수 없다는논증이 예증하듯이, 지적 설계 옹호자들은 주로 진화론을 부정하는 논증을 통해 설계론을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진화론에 대한 반론이 설계를 지지하는 논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문가 증언이 밝혔듯이, 생물학적 체계들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지금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앞으로도 설명할 수 없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 304쪽

종교(믿음)와 과학(이성) 사이의 논쟁 핵심은 창조론-진화론을 둘러싼 것이다. 믿음은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또한 왜 그러한 지 그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그냥 온-오프의 문제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하버드대 물리학 리사 랜들 교수의 지적은 과학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깊이 성찰하게 해 준다.

한 이론의 발전 과정을 보면, 그것은 처음에는 불확실하다가 이후 해결되거나 더 포괄적인 이론으로 흡수된다. 과학적 곤경과 모순은 어떤 이론이 불완전하다는 표시이지 꼭 그것이 틀렸다는 표시가 아닌 경우가 많다. 우리의 이해에 뚫린 구멍들은 과학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질문과 과학 진보를 이끌어내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 250~251쪽

스티븐 J. 굴드 역시 창조론이 창조과학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는 《힘내라 브론토사우르스》에서 창조론에 맞선 60년 동안의 논쟁이 1987년 대법원 판결에서 최종 승리를 거두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굴드는 한 때 대선에 세 번이나 출마했던 윌리엄 재닝스 브라이언의 진화론 반대 투장에 대해서도 상세히 고찰한다. 사실 백여 년 전인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진화론과 창조론, 두 진영은 사활을 건 논쟁을 벌이곤 했었다. 굴드나 도킨스 같은 진화생물학자들은 지적 설계를 도저히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다윈의 자연 선택 등 진화론도 완벽하지 않다. 아직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빈틈도 많다. 한편 창조론을 내세우는 지적 설계는 단순지 진화론에 반대를 위한 반론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창조론과 진화론을 지지하는 각각의 핵심 쟁점들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서로의 입장에 대해 논리적 사고와 과학적 증거를 통해 논쟁을 진행해 간다면 진화론을 둘러싼 과학계도 이로운 측면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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