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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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실패하면 바로 주눅 들거나 우울해지곤 해요. 하지만 한 번 실패했다고 제 모든 걸 부정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해요. 만화 속 주인공들도 나 같은 게 뭐라는 식의 자기비하의 말은 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어요."

작가 마스다 미리가 올해 1월 동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녀는 얼굴을 내보이지 않는 신비주의를 고수한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만화 캐릭터로 자신의 이미지를 대신했다.

"작품마다 테마를 정하고 제 나름의 대답을 찾기 위해 고민합니다. 신작의 경우 한 번뿐인 인생의 무게가 테마예요." 나는 미리의 말을 읽고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에서는 어떤 테마를 추구했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서점직원 경력 10년차 신지 쓰치다. 올해 나이 서른 둘, 싱글 경력 6년차 노총각. 월급 25만 엔, 정년까지 28. 그리고 7년 동안 방 한 칸짜리 원룸에서 살고 있다.

그는 퇴근 후 혼자서 저녁을 때우고, 가끔 밤하늘을 바라보며 되뇐다. “도대체 몇 명의 우주비행사가 우주로 갔을까?” 그의 고민은 바로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

특이하게도 미리는 실제로 이 만화에 등장해서 쓰치다와 대화를 나눈다.

"저, 서점에 가는 거 좋아해요. 책을 인터넷으로 구입하면 조금 무미건조한 느낌."
서점을 어슬렁거리며 이런 책이 있네! 읽어보고 싶어하는 거. 저 좋아 해요."

 

 

작가가 괜히 등장했겠는가? 미리와 헤어진 쓰치다는 몹시 책을 읽고 싶어져서 가까운 서점에 들른다. 거기서 발견한 책이 바로 개같은 내 인생. 레이다르 옌손와 니클라스 다르께가 함께 쓴 이 작품은 열두 살 소년 잉게마르의 성장을 다룬 소설이다.

잉게마르는 고독할 때면 1957년 실험을 위해 우주에 쏘아 올려진 개 라이카를 생각한다. 홀로 인간 대신 쓸쓸히 죽어간 라이카. 잉게마르는 읊조린다. “난 그 개보다 낫다.”

내가 보기에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의 모티프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우리는 한 발짝 떼도 사람에 치일 정도로 과밀한 도시에 살고 있지만, 막상 우주에 홀로 남겨진 라이카 마냥 고독한 존재. 때로는 무인도에 있는 것처럼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는 그런 존재. 싱글남 쓰치다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 후배 주선으로 미팅에 나간 쓰치다는 같이 공감할 수 있은 상대를 만난다. 호시 신이치의 초 단편 이야기. 우주에 나간 비행사가 사고로 지구로 귀환하지 못한 슬픈 이야기. 하지만 상대는 이미 짝이 있었고, 친구 야요이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나온 입장이었던 것.

다음 날 쓰치다와 점장이 나눈 대화,
미팅, 차였다며
?”
점장님, 제 우주는 아직 멀고 멉니다.”

 

어쨌든 야오이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인다는 말에 관심을 갖게된 쓰치다는 야오이와 데이트를 하게 된다. 그런 어느 날,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 물었다가 거절당한다. 야오이는 다음 날 일정이 있었던 것.

방에 돌아와 하염없이 자책하던 쓰치다에게 온 야오이의 메시지. “오늘은 즐거웠어요. 다음에는 꼭 쓰치다 씨 집에도 가보고 싶어요.” 쓰치다는 콧노래를 부르며 때 아닌 야밤에 조깅까지. ‘지금, 우주에 가까워진 기분이야.’ 남자란 바로 이런 거! ^^

자 여기서 끝나면 좀 섭섭하다. ‘개 같은 내 인생에 한 줄기 빛은 없을까? 바로 심금을 울리는 따뜻한 책이 곁에 있다. 작가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우리 인생을 그래도 살맛나게 하는 것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가령 쓰치다가 100쇄가 넘은 그림 책 100만 번 산 고양이를 보면서 갑자기 맛본 아주 어린아이였을 때의 기분이 시공간을 넘어, 지금, 내 속으로 들어와 있는 신비함같은 거.

11살 손녀의 사십구재를 위해 평소 손녀가 즐겨보던 만화책을 사러 온 다케우치 할아버지. 마음 착하게도 쓰치다는 할아버지 집에 들러 위로해 준다. 며칠 후 할머니는 쓰치다가 마련한 따뜻한 책 전시전에 들러 창가의 토토를 고른다.

서점을 다시 찾은 할아버지, 오랜만에 아내가 웃었다면서 다시 책을 찾는다. 우리 인생은 그렇게 책을 통해, 이야기를 통해 위로받으며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듯 이 책에는 작가가 권하고 싶은 책, 마음 따뜻한 책 열여섯 권이 등장한다.

한편 끝머리에 쓰치다가 수짱의 연애에서 수짱과 잠시 조우하는 장면이 나온다. 즉 이전 작품에서 나왔던 쓰치다가 이번에는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 사실 이런 방식을 처음 고안한 이는 프랑스의 발자크였다. 그는 동일 인물들을 다른 작품에 재등장시킴으로써 여러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했다.

 

발자크의 새로운 시도는 다른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전한다. 이런 방식은 재등장 인물들의 연대기적 삶을 따라가 보거나, 다른 환경에 처했을 때 어떻게 변하는지 혹은 대처하는 지 엿보는 묘미를 안겨준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도 다음 작품을 기약하는 주인공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유모차를 끌고 서점을 찾은 여성이 눈에 띈다. 그녀의 독백, "무인도에 있는 것 처럼 느껴지는 답답함"이란 표현은 작가가 혹할 만큼 눈에 띄는 테마 같지 않는가?

미리의 책들은 참 따뜻하다. 썩 잘 그린 느낌은 들지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친숙하다. 주인공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 일상과 닮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문득 대화나 인물의 독백을 통해 불쑥 던져지는 질문들이 마치 나도 뭔가 답을 내놓아야 할 것처럼 움찔거리게 만든다.

동병상련이라 했던가. 언젠가 쓰치다랑 술 한 잔 기울여 보고 싶다. 뭐 하려고? 우주 이야기. , 야오이도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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