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열 갈래의 길
유예진 지음 / 현암사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책에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관계된 소설가, 시인, 극작가 그리고 문학평론가 등 열 명의 작가가 등장한다. 이들 대부분은 프루스트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프루스트는 자신의 작품에 이들을 실명 또는 가명, 익명으로 등장시킨다. 다만 그들은 17세기 고전주의에서 20세기 구조주의까지 넘나든다.

저자 유예진은 불문학을 전공하고 프루스트 미학과 회화론으로 박사학위를 획득한 프루스트 전문가다. 그녀는 책에서 당시 프랑스 문단을 사로잡았던 작가들이 어떻게 프루스트에 의해 인용되는지 살펴봄으로써 프루스트의 문학관과 작가론을 살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열 명의 작가에는 17세기의 세비녜 부인과 라신, 19세기의 발자크, 상드, 플로베르, 공쿠르 형제, 말라르메가 있다. 그리고 20세기 지드와 바르트. 나머지 한 사람은 가상의 인물 베르고트가 등장하는데, 이는 프루스트의 멘토이기도 한 아나톨 프랑스를 모델로 삼아 창조했기에 추가했다. 또한 바르트는 프루스트 사후의 평론가이지만 프루스트 작품의 문학적 가치를 부각시켜 주었기에 역시  포함시켰다.

나는 1997년 국일미디어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완역본(원작은 7권이나 번역본은 11권이다)이 나왔을 때 이를 읽고자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차일피일 미루다 지금까지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사실 완독하려면 끊임없이 심오한(?) 인내심을 치켜 올려야 한다. 게다가 내용도 큰 사건의 흐름 없이 "답답할 정도로 미묘하고 섬세한 심리 분석으로 일관"하는 데다, "문장이 숨이 넘어가게 길고 한 문장에서 여러 시제를 사용"하는 등 무난하게 읽기에는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우선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줄거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 마르셀은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삶의 다양한 측면, 가령 사랑, 우정, 그리고 사교계 등을 두루 경험한다. 그런 그가 나이 마흔이 넘어 무료함과 나태함에 스스로를 맡기려는 찰나 어떤 기억의 연속 작용으로 예술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는다. 그럼으로써 소년 시절 꿈꾸던 작가로서의 소명을 재발견하게 되고 '잃어버린 시간', 즉 과거를 찾아가는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는 영웅이나 악당이 등장하지 않는 평범한 이야기지만, 그것이 바로 자신의 삶이기에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쓰는 데 남은 생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음으로써 현재가 의미를 갖고 동시에 미래로 연결되는 것이다. -8


한편 '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 열 명의 연대는 다음과 같다.

1. 세비녜 부인 (1626~1696)

2. 장 라신 (1639~1699)

3. 오노레 드 발자크 (1799~1850)

4. 조르주 상드 (1804~1876)

5. 구스타프 플로베르 (1821~1880)

6. 공쿠르 형제

  - 에드몽 드 공쿠르 (1822~1896)

  - 쥘 드 공쿠르 (1830~1870)

7. 스테판 말라르메 1842~1898

8. 베르고트 : '아나톨 프랑스'를 모델로 함

9. 앙드레 지드 (1869~1951)

10. 롤랑 바르트 (1915~1980)

여기서 저자는 가상의 인물 베르고트를 말라르메와 지드 사이에 넣어 서술한다. 사실 베르고트는 주인공 마르셀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작가다. 마르셀은 베르고트의 책을 통해서 자신만의 작가 이미지를 그렸으나, 실제 대면시에는 "와르르 무너지는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된다.

프루스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예술가의 진정한 가치는 오로지 그가 창조하는 작품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개인이나 가족, 사회적 잣대를 적용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주인공 '마르셀'과 자신 '마르셀'을 엄격히 구분 짓는다. 이렇듯 그는 베르고트를 통해 이런 자신의 예술론이나 작품론을 말하고 싶어 했다. 프루스트는 작가의 고유성을 증명하는 '문체'를 중시하였고, 이런 맥락에서 특히 플로베르의 '문체'를 찬미했다.

프루스트의 생몰연대가 1871~1922년이니 지드와는 거의 같은 연배(2살 아래). 사실 프루스트는 당시 지드가 편집장으로 있던누벨 르뷔 프랑세즈에도 1<스완네 집 쪽으로> 원고를 보냈었지만, 지드는 원고도 보지 않고 거절한다. 결국 프루스트는 자비로 출판하게 된다. 지드는 뒤늦게 작품의 문학성을 알아보고 그에게 정중한 사과편지를 보내면서, 2<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를 맡게 된다(이상 제명은 국일미디어본을 인용).

두 사람은 동성애자로 알려져 있지만, 지드는 프루스트가 4<소돔과 고모라>에서 묘사한 샤를뤼스 남작의 저속한 동성애에 찬성할 수 없었다. 저자는 "(두 사람은) 끝내 거리를 유지한 채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문학 세계를 성립했다"고 평한다.

한편 프루스트가 공쿠르 문학상을 받기까지의 우여곡절이라든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삶의 지침서'라고 여겨 프루스트를 숭배한 롤랑 바르트의 이야기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책 말미에는 세비녜 부인의 편지, 공쿠르 형제의 일기, 상드와 플로베르, 프루스트와 지드가 주고받은 편지를 실어 놓았다. 특히 세비네 부인이 출가한 딸에게 30여 년간 보냈다는 편지는 마르셀과 할머니-어머니 사이의 미묘한 심리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모티브가 된다.

나는 이번 기회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읽기를 다시 도전해 보려한다. 이는 순전히 저자의 책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간 읽기 힘들었던 프루스트를 이제는 읽어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이 책은 좋은 레퍼런스가 아닌가 한다.

여담이지만 2007년 출판사 W. W. 노튼이 영미권 유명 작가 125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최고의 문학작품 10권을 물은 결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8위를 차지했다.

영미권 10대 명작에 들었다는 이유도 있고 하니 '프루스트 읽기'는 내 평생에 한번 해봄직한 가치 있는 도전이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저자의 프루스트에 관한 또 다른 책 프루스트의 화가들도 벌써 솔깃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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