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 푸슈킨에서 체호프까지 ㅣ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이현우 지음, 조성민 그림 / 현암사 / 2014년 1월
평점 :
이 책은 저자가 1996년쯤 한 독서대학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시작한 러시아 문학 강의를 엮은 것이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푸슈킨, 레르몬토프,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그리고 체호프까지 모두 일곱 거장들과 그 아홉 작품에 대한 해설을 담았다. 저자 이현우 교수는 ‘로쟈’라는 필명으로 강의와 문필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자고로 문학은 시대의 자화상과 함께 하는 것이기에, 러시아 문학 역시 광할한 러시아의 영혼과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이해하기 쉽도록 먼저 19세기 러시아 역사에 대해 개관한다.
러시아 작가의 계보는 푸슈킨에서 시작합니다. 그 다음 고골이고, 한 사람 더 들면 레르몬트프가 있습니다. 이 3대 작가가 러시아 근대 문학의 토댈르 만듭니다. 이들이 활동했던 시기는 1820년에서 1840년 정도까지입니다. 이때가 러시아 낭만주의 시기입니다.
그 다음에 한 다리 건너뛰어서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 리얼리즘 문학의 3대 작가가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이들이 주로 활동했던 시기가 1856년에서 1880년까지입니다. 이 25년간이 좁게 말해서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 리얼리즘 문학 시대에 해당합니다.
마지막이 체호프입니다. 체호프는 19세기를 마감하는 작가입니다. 별명도 ‘황혼의 작가’입니다. ‘가을의 작가’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체호프의 몇 년 후배가 막심 고리키입니다. 20세기 러시아 문학을 시작하는 작가입니다. 28쪽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의 스타일과 비교하게 된다. 뭐랄까, 《책은 도끼다》는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성찰적 혜안을 펼쳐 보인다면, 《러시아 문학 강의》는 전문가의 입장에서 해설적 설명이 주를 이룬다. 그렇기에 로쟈의 글에서 인용된 텍스트는 내가 직접 읽어봐야 하는 것이고, 이 책은 다만 이를 위한 일종의 모범적 안내서지 싶다.
《롤리타》의 작가 나보코프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여러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강의했다. 국내에 소개된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를 보면, 로쟈의 것과 측면이 많다. 다만 나보코프는 고골에서 시작하여 고리키에서 끝을 맺고 있다.
로쟈는 왜 푸슈킨으로 시작하는 것일까? 그에 의하면 러시아 사람은 어릴 때부터 이유식같이 푸슈킨의 시를 읽으며 자란다. 그래서 각자가 생각하는 자기만의 푸슈킨의 경험이 있고, 이는 동질적인 러시아의 민족적 정체성과 국민적 정서를 공유하는 매개가 된다는 것. 이것이 문학이 지니는 큰 미덕 중의 하나가 아닐까? 로쟈는 바로 여기에 착안한 것인지 모른다.
이어 저자는 푸슈킨의 출생과 성장, 죽음 등 생애 전반을 소개하고, 연이어 다룰 작품 《예브게니 오네긴》을 이해하기 위한 그 배경 지식을 제공한다. 이 때 저자는 작품을 읽고 느낀 자신의 감정은 제대한 배제하면서 올곧이 객관적 입장에서 서술해 나간다. 그 다음은 《예브게니 오네긴》을 읽을 독자들의 몫이다. 이런 서술 방식은 체호프까지 계속 이어진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레르몬토프를 처음 접했다. 특히 레르몬토프가 처음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것이 아니라 노력파였다는데 관심이 쏠렸다. 나는 1840년에 출간된 《우리 시대의 영웅》을 얼른 읽은 중이다. 페초린은 어떤 인물일까?
또 그가 죽기 한 달 전에 썼다는 시 〈나 홀로 길을 나선다〉도 좋았다. 레르몬토프의 시를 노래 말로 부른 안나 게르만의 곡은 너무 애잔하고 감미롭다. 푸슈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말고도 좋은 시를 알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고골의 《페테르부르크 이야기》는 제정 러시아의 당시 수도였던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다섯 편의 단편이 실린 것이다. 특히 고골은 「광인일기」, 「코」, 「외투」의 작품에서 러시아 하급관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리의 욕망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그의 작품은 말년에 반미치광이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 작가의 불운했던 생과 오버랩되면서 내게 묘한 여운을 안겨 주었다.
진보적인 작가였던 투르게네프는 고골과 토스토예프스키 등과 대립하기도 했다지만, 그가 청년 시절 본 오페라 가수 비아르도에게 첫눈에 반한 연정도 자못 애틋하다. 그래서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읽다 보면 그가 비아르도에게 품었던 사랑의 형체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로쟈가 러시아 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일컫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에 대한 그의 해설 은 너무나 흥미진진하다. 내 학창 시절 두 작가의 작품들을 자주 접해 보았지만,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탓도 크다. 특히 저자가 자신의 필명으로 삼기도 한 로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죄와 벌》에 대한 평은 어떨까? 《죄와 벌》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처녀작이다. 전체 6부와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지만, 1부만 직접 살인을 다룬 것이고, 나머지는 전부 벌에 해당된다. 이 작품은 줄거리 전개보다는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의 심오한 심리 묘사와 장황한 독백 혹은 대화가 이어진다. 과연 도스토예프스키가 생각한 벌은 어떤 것이었을까?
지난 2007년 영국 더 타임즈에서 영어권의 현역작가 125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최고의 작품을 10편식 골라달라는 설문조사를 벌인 적이 있었다. 이때 1위가 《안나 카레니나》였다. 이어 《마담 보바리》, 《전쟁과 평화》, 《롤리타》,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이었다. 현역 작가들이 최고의 작품으로 꼽은 것이 바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다.
톨스토이는 비록 아내 소피야와는 불화가 끊이지 않았지만, 여성 심리의 대가로 통한다. 내 생각에 소피야는 톨스토이가 중요시 했던 가치와 세계관을 포용하기에는 그릇이 작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안나 카레니나》가 오늘까지 널리 사랑을 받고 이유는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주제와도 관련이 깊을 것이다. 로쟈도 지적했듯이 “도덕적이지만 죽어 있는 삶(결혼)과 부도덕하지만 살아 있는 삶(불륜) 사이의 양자택일”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어디 있을까? 로쟈는 ‘안나의 죽음을 통해 육체적 열정과 제도적 결혼은 양립 불가능하다’는 톨스토이의 지론을 보여준다고 평한다.
한편 저자는 몇 년 전 《출판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힌 적이 있다.
“동시대 러시아 문학이 국내에 잘 소개되어 있지 않아요. 일단, 러시아 문학 수요층이 적다 보니 출판사에서 좀처럼 엄두를 내기 쉽지 않죠. 작금에 러시아문학이 드물게 번역되는 경향은 러시아문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독자, 시장의 문제가 모조리 섞여 있습니다. 게다가, 러시아문학의 경우 번역자들이 다른 주요 언어들에 비해 부족한 점도 이러한 현상에 일조합니다. 비단 러시아문학뿐만 아니라 러시아 영화도 아주 가끔 국내에 개봉 됩니다. 현실적인 제반문제로 인해 러시아문학 전공자로 살아가는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늘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자의 ‘책임감’은 제법 튼실한 결실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렇듯 고전(古典)은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되고 읽혀져야 한다. 저자의 ‘러시아 문학 새롭게 읽기’는 오늘날 우리게 어떤 함의로 다가올까? 아마도 이는 독자 각자의 몫으로 남지 싶다. 막심 고리키로 시작될 20세기 러시아 문학 강의도 벌써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