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때 잠자리
마르탱 파주 지음, 한정주 옮김 / 열림원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마르탱 파주의 서술은 거침없다. 그의 입체적이고 독특한 문장은 독자들은 때로는 관객으로, 때로는 방관자로 이끈다. 책 제목이기도 한, 피오가 여덟 살 때 본 잠자리는 그녀의 인생을 관통하는 하나의 모티브다.

피오는 여덟 살이 되었다. 숲의 나무 아래로 폭풍우가 요란하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새들이 피난처가 될 만한 하늘 모퉁이를 날개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그날의 오후는 이제껏 피오가 알아왔던 오후와는 전혀 달랐다. 마치 청동기 시대 때 사라져버린 오후인 듯 했다. 하늘은 적갈색이었고, 구름은 황갈색이었으며, 부드러운 공기는 반짝거려 마치 어린 소녀의 머리카락과 섞이기도 하는 것 같았다. 피오는 마메 할머니의 캠핑카 앞에 있는 공터에 몇 해 전부터 버려져 있던 재규어 소버린 자동차에서 뜯어낸 시트 위에 앉아 있었다. 비바람에 의해 너덜너덜해진 붉은색 가죽에서는 썩는 냄새가 풍겼다.

또다시 폭풍우가 몰아쳤다. 피오는 자신이 하늘이나 나무와 같은 종류에 속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폭풍우가 마치 자신에게서도 생겨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섬광으로 전기를 띠게 되었고, 아무런 의심 없이 폭풍우에 동참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진회색의 거대한 구름처럼 말이다. 그녀가 부드럽지만 빠른 비를 이 세상에 내리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기분 좋은 격정을 가득 차, 그녀는 자동차 시트에서 일어났고, 어린 소녀의 감정을 쏟아내려고 팔을 뒤로 쭉 젖혔다.

이 때 잠자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잠자리는 놀란 다른 동물들처럼 움직이지 않고 피오의 손에 내려앉았다. 추위로 떨리던 그녀의 자그마한 손에 빗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잠자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곧이어 그 곤충의 머리 위로 더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고, 곤충의 가느다란 발은 더 쇠약해져갔다. 떨어진 빗방울은 날개까지 휘게 했다. 바로 그 순간 마메 할머니가 캠핑카의 문을 열고 피오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날은 아주 어두워졌고, 번개가 하늘을 수놓고 있었으며, 몇 초 후에는 천둥소리도 뒤따라 울려 퍼졌다. 이때 소녀는 자신의 초록색 스웨터와 빨간 머리카락이 물 때문에 빛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런 폭우에도 잠자리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몸은 반짝거렸고, 빗방울의 작은 알갱이는 잠자리의 초록색과 파란색을 뒤덮었다. 피오는 일어나서 이 곤충을 살리기 위해 캠핑카를 향해 달려갔다. 자신의 잠자리가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죄어왔다.

그런데 캠핑카에 거의 도착한 그 순간, 무언가 손을 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잠자리가 발을 구부렸다가 하늘을 향해 자신을 내던졌던 것이다. 피오는 진창에 서서, 머리카락이 얼굴에 뒤엉킨 채로 잠자리가 빗방울 사이를 넘어 날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잠자리는 날아오르고, 또 날아올랐다. 번개가 쳤다. 물론 이 어린 소녀에게서 나온 번개가 아니라 하늘에서 친 번개였다. 피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잠자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190~192쪽)


피오는 여섯 살 때 부모를 여의었고, 아홉 살 때 마메 할머니도 떠나보냈다. 그녀는 아마도 외롭고 적막한 마음을 그 잠자리에 어린 추억을 통해 달래 왔을 것이다. 사실 할머니에게도 비슷한 추억이 있었다. "높이 자란 풀밭에서 나란히 달리는 하얀 강아지와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같은.

내가 보기에 절망적일 것만 같은 피오의 인생인데도 그녀는 그리 낙관적이지도 그리 비관적이지도 않다. 그녀는 부모님이 피웠던 것과 같은 담배를 인공호흡기를 통해 태운다. 그것은 그녀가 부모님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추억 중 하나였다.

바로 그녀가 아홉 살 때 캠핑카가 불타면서 부모님의 사진과 모든 추억이 몽땅 사라졌고 할머니도 잃었다. 피오는 그 담배 연기 속에서 자신의 과거 단편들과 잔해들을 떠올린다. 포퓰러 담배 향이 어린 시절의 세계로 그녀를 빠져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결국 마지막도 이 담배 연기와 함께 한다.

피오는 여덟 살 때 본 그 잠자리를 지켜 나간다.
피오가 조라와 함께 숲으로 산책을 나간 어느 날이었다. 조라는 곤충 잡는 에어로졸을 들고 나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모든 곤충을 죽여버린다. 이어 조라가 주변을 맴돌고 있던 청실잠자리를 죽이려 하자, 피오가 손으로 에어로졸 입구를 막았다.

"그건 잠자리잖아."
"너 미쳤니. 도대체 뭐야? 넌 이 괴물의 공격을 받도록 내가 나를 방치할 거라고 생각해?"
"제발 부탁인데 죽이지 마."

피오와 조라는 서로 잘 맞는다. 조라는 냉소적이며 반사회적이고 신랄했지만, 피오와 함께 할 때만큼은 들판에 핀 연약한 꽃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일본 유전자연구소에 침투하다가 죽음을 맞는다. 피오는 그녀의 시신을 수습해 들여온다. 피오는 유일한 친구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이제 혼자? 아참, 고양이 펠랑이 있었지.

사실 피오는 범죄자다. 열여덟 살 그녀는 생계를 유지하는 독특한 방법을 찾아냈다. 그녀는 인간의 부도덕성에 주목하여 신문에서 오려낸 단어를 사용하여 익명의 편지를 만들어 전혀 모르는 사람들, 특히 고위층을 겨냥하며 마구잡이로 보냈다. 인사에게 무작위로 익명의 협박 편지를 보내 돈을 뜯어낸다. "우리는 당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돈을 지불할 시간을 일주일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피오는 잡히지 않는다. 이는 또다른 부조리다.

피오는 협박 편지를 보내고 난 뒤, 돈봉투를 가져오는지 지켜보기 위해 숲속에서 숨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협박 편지를 보냈던 앙브로즈 아베르콩브리에게 들킨다. 예술계의 전설이자 거장이었던 그는 피오 그림을 단박에 알아본다. 그녀는 앙브로즈의 제안에 따라 그림을 그에게 팔게 되면서 그를 통해 화단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이 때 파주의 날선 예술관이 요소요소에서 드러난다.

예술가는 휴머니스트가 아니다. 예술가는 그런 고상한 비탄에 관해서는 무능하다. 왜냐하면 선량한 양심, 다리가 마비된 어린 돼지를 죽이는 호랑이보다 확실하게 예술을 죽여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은 매일매일 조금씩 죽어가니까, 예술가란 자기 자신의 상중에 있다는 것일까? (159쪽)


게리네 에스크리방의 입을 빌어 "사회란 예술을 질투하기에, 예술은 사회 내부의 적이기에, 사회는 최상의 요소를 빼앗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전위 예술이란 "이단이 기준이 되어버리는 희극"이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너무 독창적인 관점이지 않은가! 하지만 톡톡 튀는 파주식의 묘사는 지천으로 널렸다. 마치 개울가에서 이쁜 조약돌을 줍는 것 같은 감칠맛 나는 문장들.

존재하라고 강요하면 오히려 죽이는 셈이 되는 사람이 있다. 때로 어떤 사람에게 살아 있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조류도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연 과학자들이 발표하지 않는 한, 새는 자기가 날고 있는 줄 모른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튼 그림이 비싸게 팔리면서 피오의 생활은 달라진다. 그런데 이 묘사가 또 실감나게 그려진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그녀가 하는 말은 다른 사람의 관심이라는 수액의 영양분을 받게 되었다. (중략) 놀라운 일이었지만 피오는 자신의 운명이 새롭게 바뀜으로써 초래되는 변화에 있어, 육체적인 면이 심리적인 면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예전보다 더 행복하지도 더 불행하지도 않았다. 반면에 이젠 지구의 인력이 줄어들었다는 인상을 받았다.(254쪽)

내가 보기에 피오의 삶은 부조리 그 자체다. 그런 그녀가 "몇 년 동안 살아남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만의 진리를 선택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여덟 살 때 잠자리"라는 그 특별한 비밀을 통해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의 기준을 삼은. 이해하기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작가의 예리한 눈으로 들여다보는 우리 세상은 어쩌면 그 사소한 어릴 적 감성 만으로 힘든 우리 인생을 버텨내는, 삶의 본보기로 삼을 수도 있겠다싶다. 근데 난 여덟 살 때 무엇을 보았나?

 

어쨌든, 나도 즐렘즐렘(gelem gelem)을 찾아 듣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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