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메이드 라이프 - 행복한 삶은 맛있는 한 그릇에서 시작된다
몰리 와이젠버그 지음, 박찬원 옮김 / 앨리스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그녀의 조부모는 폴란드 이민자 출신이었다. 그녀 아버지는 1930년대 토론토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오클라호마에 이주하고 나서 성공적인 개업, 교외의 커다란 집, 쉰 살이 되기 직전 아버지의 네 번째 자식으로 태아났다.

그녀는 자신이 요리를 배우게 된 것은 모든 일이 부엌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아무도 내게 부엌에 있으라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나는 부엌에 있었고, 부엌이 편했다. 나는 칼을 어떻게 다루는지 배웠고, 깍지콩을 요리할 때는, 콩이 밝은 초록색이 될 때까지 익혀야 한다는 것을 눈으로 배웠다. 그건 대단한 게 아니었다. 의식적인 생각을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었다. 일종의 삼투압처럼 나는 서서히 부엌의 안락함에, 그리고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도 오래 지속되는 시장함에 물들어갔다.(11~12쪽)

 

그녀는 인간생물학과 프랑스어, 인류학을 복수전공했다.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무언가가 계속 나를 식탁 앞으로 불렀다. 내가 입을 열 때마다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2004년 7월 마침내 그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오랑제트(Orangette)'라는 이름의 블르그였다. 오랑제트는 설탕에 졸인 오렌지 껍집을 다크 초콜릿에 담근 것으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 과자라고 한다. 그녀는 블로그에 자신의 모든 레시피와 그 레시피에 얽힌 길고 긴 이야기를 쓰고 저장해 나갔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 장소, 음식 들로 그 공간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홈메이드 라이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왜 홈메이드 라이프일까?

 

왜냐면,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우리-당신과 나, 섞고 젓고 하기를 좋아하는 우리 모두-가 부엌에서, 식탁에서, 만들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리를 먹고 음식을 먹고 하는 그 단순한 행위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인 이야기를 만들고 게속 이어나간다.(14쪽)

 

은 제법 두툼하다. 글도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런데 글쓰기가 보통이 아니다. 읽는 맛이 너무 감칠맛난다. 술술 읽어 간다. 요리와 관련된 그녀 가족, 친구들과 이웃간에 얽힌 이야기가 너무 솔찬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항상 부엌과 함께 했고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집에서 쉴 때 조차 부엌, 냉장고와 스토브 사이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해 준 감자 샐러드, 프렌치 토스트가 맛있게 묘사되어 있다. 물론 레시피도 함께.

 

그녀 어머니는 제빵사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연례행사처럼 많은 빵과 과자를 구웠고, 그 이벤트는 오랫동안 오클라호마시티의 크리스마스 하이라이트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직전 토요일이면 어머니와 그녀는 차 뒷좌석에 쿠키 깡통들을 가득 싣고 이 동네 저 동네 돌며 지인들의 집으로 그 쿠키들을 배달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멋진 추억인가!

그녀가 '여름의 맛'으로 추천한 블루베리 라스베리 파운드케이크. 7월이면 어김없이 그녀 가족은 피크닉을 갈 때나 바비큐를 할때 그 케이크와 함께 했다고 한다.

이런, 나는 잠시 생각해 본다. 우리 가족은 여름의 맛으로 무엇을 떠올릴까? 백숙이나 삼계탕이 아닐까 싶다. 알맞게 자란 닭에 속에 찹쌀과 대추, 인삼을 넣고 푹푹 끓여  온 가족이 둘어 앉아 한여름의 무더위를 이겨내던 그 맛. 혹은 고향에 갈 적이면 어머니가 으레 해 주시던 장어국. 짱아 넣고 산초 넣어 땀방울 송송 맺히며 한그릇 뚝딱 비웠던 그 얼큰한 맛!

그녀가 왜 자신의 블로그를 '오랑제트'라고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도 나온다. 그녀는 어머니가 매일 저녁식사 때마다 우유를 하이볼글라스에 가득 담아 마시게 했다고 한다. 우유 맛을 참 싫어했던 그녀는 차가울 때 숨도 쉬지 않고 얼른 들이키기도 했단다. 그러던 차에 초콜릿을 넎으면 맛이 더 좋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나.

친구 케이트에게서 바나나 빵을 더 맛있게 만드는 법을 배웠다면 소개한다. 초콜릿칩 한 주먹 넣으면 훨씬 훌륭한 맛이 된다는 것이다. 가벼운 생크림과 함께 내면 더욱 좋단다. 방과 후 간식을 넘어서 최고의 디저트가 된다고 하니 나도 한번 배워볼 욕심이 난다. 그녀가 소개하는 레시피에 따라서 말이다. ^^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요리에 관해 이렇게 맛깔스럽게 쓸 수 있는 그녀의 재능이 참 부러웠다. 몇 년 전 영국에 있을 때, 헤이스팅스로 여행을 갔었다. 1066년 10월 정복왕 윌리엄이 상륙했던 바로 그곳. 거기 펍에서 우리 가족-아내와 아들-이 함께 했던 재킷 포테이토 맛이 떠오른다. 커다란 감자 속에 샐러드, 참치, 콩 등을 꽉 채운 다음, 한 입 한 입 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흔히 영국 요리는 맛이 없고 별다른 특징이 없다고들 하지만, 내게는 피쉬앤칩스와 함께 재킷 포테이토 맛이 이국적인 향취와 함께 언제나 은은하게 되살아 난다.

 

아, 잠시 슈팅스타 알갱이가 팍팍 씹히는 알싸한 느낌같은 그녀의 감각을 하나 소개하고 마치겠다.

 

옛날 옛적 아주 오래전에 (마치 몇 세기 전처럼 느껴진다) 나는 파리의 한 원룸에서 혼자 살았다. 문은 쾅 하고 세게 밀어야만 닫혔고, 손바닥만 한 테라스엔 도자기 땅속 요정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복도에는 마치 벽을 파고 부엌 대용 장소를 꾸며놓은 것처럼 화구 두 개짜리 전기 스토브와 꼬마 냉장고, 까치발을 해야 닿을 수 있는 전자레인지가 놓여 있었다. 초라했지만 달콤한 집이었다. 게다가 프랑스에 있는 집 아닌가. 그곳은 신발상자나 다름없는 곳일 수도 있있지만 나는 마술에 걸린 듯 매력을 느꼈다. 그곳은 낙원의 아주 작은 (44사이즈, 혹은 파리 여성들의 사이즈라 불러도 좋을) 한 조각이었다. 나는 스물두 살이었고, 갓 대학을 졸업했고, 그것은 나의 첫 집이었다.(157쪽)

 

작고 초라한(?) 자신의 집을 이렇게 위트하게 묘사하다니, 난 그녀에게서 요리 말고도 '감각'이라는 악동을 함께 만났다. 넘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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