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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
이솝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6월
평점 :
이솝 우화! 이번에는 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것을 읽는다. 그렇지 않아도 제대로 된〈이솝 우화〉를 간절히 바라던 차에,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어찌나 반가왔는지 모른다. 이미 천병희 선생은 그리스 원전의 대가가 아니던가.
역자는 "수천 년 동안 묻혀 있다시피 했던 보물에 붙은 흙이며 군더더기를 털어내고 회대한 본래 모습으로 생동감 있게 복원해야겠다는 심정으로 번역"했다고 한다.

역자가 소개하는 이솝 우화의 기원은 아래와 같다.
최초의 이솝 우화는 기원전 350년경~283년경 아테아니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팔레론(Phaleron)의 데메트리오스(Demetrios)가 내놓았다고 한다. 이른바 '교훈'이 포함된 중세의 필사본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가장 오래된 것(Collectio Augustana)은 기원후 3세기까지 거슬로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번역서는 이솝 우화 358편과 '교훈'을 빠짐없이 그리스어 원전에서 옮기고, 필요한 주석을 달고 있다. '교훈'은 훗날 헬레니즘 시대에 덧붙여진 것으로, 우화의 요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교훈'은 각 우화 하단에 갈색으로 주석이 달린 것을 말한다.
천병희 선생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Horatius)는 그의 『시학』(Ars poetica)에서 요구하는 명작의 필수 조건인 '재미와 교훈'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고 평한다. 그래서 이 책의 서문도 "재미와 교훈을 갖춘 명작"으로 설정하고 있다.

책은 좋은 지질에 양장으로 되어 있어 고급스런 느낌을 준다. 각 우화는 수록된 358편 중 6편 정도만 제외하고 전부 1쪽에 담겨질 정도로 압축되어 있다. 우화는 번뜩이는 재치로 촌척살인(寸尺殺人)과 같이 우리 가슴에 다가오지 않던가. 하지만 겉표지에 실린 것같은 삽화가 본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점이 약간 아쉬움으로 남는다. 만일 귀스타브 도레풍의 삽화가 있었다면 읽는 재미가 훨씬 더했을 것이다.

우화가 모두 끝나면 8쪽에 걸친 찾아보기가 나온다. 동물이나 신화 등 유형별로 훑어보기 좋은데, 아무래도 사람이나 신화를 제외하면 개, 늑대, 사자, 당나귀, 그리고 여우가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한다. 조금 욕심을 부려본다면, 말미에 역자나 전문가의 해제가 추가되었더라면 이 책의 의미가 더 커졌을 것이다.
이솝 우화의 기본 정신은 풍자다. 당시 약육강식의 냉혹한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해서 기독교 윤리가 지배하던 무렵, 첨삭되어 원본이 일그러졌고, 그 기본 정신도 왜곡되었다. 17세기 프랑스 장 드 라 퐁텐은 이솝 우화와 당시 민간에 전승되던 우화들을 수집, 선별하여 240편으로 된 <라 퐁텐 우화>를 만들었다. 아마도 라 퐁텐은 이솝 우화가 지향했던 풍자 정신이 당시 프랑스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았을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어떤가? 이솝 우화가 풍자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약육강식의 근간이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이 시대에 이솝 우화가 의도했던 풍자와 비판 정신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또한 천병희 선생이 옮긴 이 책은 단연 다른 이솝 우화를 압도하고 남는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천병희의〈이솝 우화〉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