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하우스
캐슬린 그리섬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이 책을 너무나 가슴 아리게 읽었다. 책 말미에 덧붙여진 '작가의 말'을 보면 캐슬린 그리섬이 어떤 심정으로 이 책을 써게 되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나는 어느날) 버지니아에 있는 옛 농장의 선술집을 개조하면서 오래된 지도 하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 지도에는 집 근처에 흑인 언덕(Negro Hill)이라는 지명이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땅을 지나 개울까지 가서 생각에 잠기곤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흑인 언덕 쪽을 보면서 저기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혼잣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산책에서 돌아와 여느 때처럼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영화만큼이나 선명한 장면이 내 마음의 눈 앞에 펼쳐졌다. 나는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정신이 반쯤 나간 엄마를 따라 언덕을 뛰어 올라가는 겁먹은 백인 여자아이의 발자국을 쫓았'던 것처럼 백인 여자아이, 라비니아 이야기에 흠뻑 빠져 버렸다.

 

1791년 봄. 라비니아는 제임스의 손에 이끌려 언덕 높은 곳에 세워진 빅하우스에 도착한다. 제임스는 빅하우스의 주인으로 대농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바다를 동경해 자기 배로 사업을 하며 빅하우스에는 몇 달만에 들르곤 했다. 그는 나이 마흔에 스무 살 어린 사라와 결혼했었다. 제임스와 사라 부부에게는 아들 마셜(11살)과 딸 샐리(4살)가 있었다.

 

라비니아는 부모가 모두 죽고 난 뒤 노예로 보내질 운명에서 제임스의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라비니아에게는 마지막 기억으로 그녀가 떠나지 않으려고 소리 지를 때 그저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던 오빠 카디건이 있었다.

 

라비니아는 키친하우스에 있던 벨(18살)에게 맡겨진다. 벤은 제임스와 흑인 엄마 사이에 태어난 딸이다.

 

밝고 쾌활한 성격의 라비니아는 벨과 마마의 따뜻한 보살핌 아래 이내 키친하우스의 식구들과 잘 적응해 나간다. 파파와 마마, 이 부부의 맏딸 도리(지미와 커플), 아들 벤(벨과 동갑내기), 쌍둥이 딸 파니와 비티(6살)가 있었다. 제이콥 아저씨,

 

하지만 제임스가 두 아이의 홈 스쿨링을 위해 영국인 가정교사 워터스를 빅하우스에 보내면서 비극이 시작되는데‥.

 

이야기는 라비니아와 벨의 관점이 교차하면서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여기서도 선한 사람과 악인 그리고 중립적인 인물이 적절히 묘사되어 있다. 특히 악인에 대한 묘사는 워터스와 농장 감독관 랭킨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에 반해 랭킨 후임 윌 스티븐스는 선한 인물로 그려진다.

 

한편 주인 부부 제임스와 사라는 중립적인 인물로 나온다. 그렇다면 마셜은 어떨까? 마셜은 라비니아와 함께  이야기 후반부를 끌어가는 중심 축이다. 독자들의 흥미를 살려두기 위해 여기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 이야기의 주제라면 가족간의 사랑이 아닐까?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겨내고 헤쳐나갈 수 있는 믿음과 사랑‥. 마마가 라비니아에게 다음과 같이 들려주는 대목이 나온다.

 

"아비니아, 분명히 말하마. 피부색이 어떻고, 아버지가 누구고, 엄마가 누구고는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는 가족이고, 그래서 서로를 걱정하는 거야. 가족은 힘든 일이 있을 때 더 강해지는 법이지. 우리 모두 똘똘 뭉쳐 서로 도와야 한다. 그게 가족의 진짜 의미란다. 어른이 되면 너도 가족의 의미를 알게 될 거야."

 * 책에는 '라비니아'와 '아비니아'가 다 사용되고 있다. 역자 이순영은 일러두기에서 흑인들은 '라비니아'를 '아비니아'로 부른다고 밝히고 있다.

 

〈키친 하우스〉의 묘미는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감수성에 의해 18세기말과 19세기초 백인주인과 흑인노예의 삶, 그리고 이들 사이 중간층(감독관, 가정교사 등)의 삶이 시대적 배경과 함께 생생하게 살려져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해리엇 비처 스토의〈톰아저씨의 오두막〉과 알렉스 헤일리의〈뿌리〉와 같은 맥락을 지닌다. 나는 노예제 시절, 가슴아프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던 인간이 인간을 마소처럼 부리던 그 시절에 대한 간접 경험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이 무엇인지 인종 차별을 왜 반대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아울러 이 책에서 살려낸 18세기말 19세기초 미국 풍습과 역사에 관한 멋진 묘사는 덤이다.

 

가령 크리스마스 만찬을 준비하는 모습(51~52쪽)이나 노예숙소의 크리스마스 파티(59~60쪽)는 마치 내가 그 옆에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실감이 났다. 사라의 언니 세라가 차를 보관하던 모습(246~247쪽)은 안토니오 데 페레다의 '흑단 상자가 있는 정물'을 연상시킨다. 쟝 리오타르의 그림에서도 18세기 당시 차와 초콜릿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Still life with Ebony Chest (Antonio de Pereda, 1652)

 

Madame Liotard and her daughter (Jean-Etienne Liotard, 연대 미상)

 

게다가 필라델피아 전역에 퍼진 황열병 이야기(170쪽, 177쪽)는 오늘날 검역 감염병으로 지정되게 된 결정적인 계기이기도 했다. '아일랜드의 녹색'(138쪽)은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처음 전도한 세인트 패트릭스를 상징하는 색.

 

한편 마셜이 공부하러 간 월리엄스버그(이곳은 신대륙에 상륙한 이주민들에 의해 맨먼저 개척된 곳으로 초기 수도)소재 월리엄 메리 대학(213쪽)은 하버드 대학 다음으로 설립된 유서깊은 대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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