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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오브 비어 - 전 세계 맥주와 함께 하는 세계 여행
낸시 홀스트-풀렌.마크 W. 패터슨 지음, 박성환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5월
평점 :
몇 년 전 나는 가족과 함께 홋카이도 여행을 갔던 적이 있었다. 홋카이도 하면 명물이 서넛 가지 있는데 개중에 삿포로 맥주가 빠지지 않는다.
우리도 삿포로 맥주 브루어리를 찾았다. 삿포로는 기린, 아사히, 산토리와 함께 일본의 4대 양조장 중 하나다. 일본에서 맥주는 보리 맥아 함량에 따라 세금이 매겨진다. 그래서 맥아 함량이 67퍼센트 이상이면 ‘맥주’라 부르고, 그 미만이면 ‘발포주’라고 한다. 나는 삿포로 맥주 시음장에서 라거, 발포주, 크래프트 맥주 등 다양한 종류를 마셔보았다. 술에 약한 이를 위해 알코올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도 있었다.
중국 하면 맥주와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쉽게 떠오르지 않지만 중국은 맥주와 깊이 연결돼 있다. 중국은 맥주를 만들 때 사용하는 홉의 세 가지 모든 종이 발견되는 유일한 나라다. 또한 효모 사카로마이세스 3종이 모두 발견되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중국은 기원 전 3400년부터 2900년 사이에 운영되었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때 독일의 조차지였던 칭다오의 맥주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매년 8월에 열리는 칭다오 비어 페스티벌은 아시아의 옥토버페스트라 불린다.
이 책은 맥주의 수도 벨기에 브뤼셀부터 시작하여 유럽,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 호주&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지구촌 6대륙의 맥주 세상을 사진과 지도와 함께 들여다본다. 특히 지역의 역사, 문화와 지리 등을 기반으로 맥주 양조와 축제를 설명하고 나라별 대표 맥주를 시음해 볼 수 있는 비어 가이드를 덧붙였다.
공저자 낸시 홀스트-풀렌과 마크 W. 패터슨은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케네소 주립대에서 지리학과에 재직하며, ‘맥주, 와인, 주류의 지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두 사람은 이 책 집필을 위해 지구를 6바퀴 반 돌면서, 400명 이상의 양조사와 매니저 그리고 맥주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취재했다. 세계 최고의 맥주 권위자인 개릿 올리버가 추천사를 썼다.
옮긴이 박성환 씨는 미국 조지아대에서 식품과학을 전공하고 국내 크래프트 브루어리에서 양조사 겸 맥주 교육가로 일하고 있다. 국내 전문가 김만제 선생이 감수를 맡았다.
세계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의 유래는 무엇일까? 1810년 10월 바바리아주의 루트비히 1세와 테레제 왕비가 결혼식을 올렸다. 1818년 축제 때 맥주 가판대가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고, 1819년 뮌헨이 축제를 조직하기로 하면서 개막식 때 뮌헨 시장이 케그 탭핑을 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옥토버페스트는 독일인이 진출한 곳이면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어디서나 열린다. 가령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옥토버페스트 역시 세계적인 맥주 축제 중 하나다.
독일 맥주와 관련해서 특히 흥미로운 이야기는 라거의 발명에 얽힌 일화다. 남아메리카에 토착 맥주에 치차(Chicha)가 있다. 잉카 사람들은 유카나 옥수수 같은 전분을 씹고 뱉은 후 발효시켜 맥주를 만들었다. 15세기 후반 유럽 탐험가들은 보리나 밀 같은 곡물로 만든 맥주를 남아메리카에 들여왔다. 이때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남아메리카를 동서로 양분했지만, 맥주 시장은 영국과 독일이 거머쥐었다.
1500년대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산 효모가 유럽으로 유입됐다. 이 효모는 나무 배럴에 붙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유럽 균주와 교배해 새로운 효모(사카로마이세스 유바야누스)로 탈바꿈했다. 새로운 효모는 전 세계 맥주 시장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라거를 만들어냈다.
이를 계기로 한때 독일 맥주는 북부의 에일(상면 발효)과 남부의 라거(하면 발효) 로 양분되었다가 현재 거의 라거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배우 김태리 씨가 찍은 클라우드 맥주 광고를 보면 “라인하이츠거보트(Reinheitsgebot)”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이 말은 독일 맥주의 순수령을 뜻하는 용어다. 1516년 바바리아주(독일 맥주의 60퍼센트가 생산된다.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뮌헨도 이 주에 속해 있다)의 빌헬름 4세는 맥주는 오직 보리, 홉, 물로만 만들 수 있다고 명시한 맥주 순수령을 제정했다. 이후 다른 부가물을 섞어 만들거나 그런 맥주를 수입하는 경우 독일에서 ‘맥주’라고 부르지 못하게 했다. 1987년 유럽사법재판소에서 독일에서 ‘맥주’의 의미를 확대해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현재 다양한 맥주 제품이 ‘맥주’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영국 인디아 페일 에일(IPA, India Pale Ale)의 유래는 제국주의 패권과 깊이 관련돼 있다. 본래 IPA는 17세기 동인도회사에서 영국에서 제조해 인도에 체재하는 군인과 거주민들을 위해 실어 나르던 맥주였다. 당시 영국에서 인도로 가기 위해서는 수에즈 운하가 아직 개통 전이어서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가로질러 가야 했다. 6개월여 기간이 소요돼 맥주가 곧잘 상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신선한 홉을 추가했다. 이런 여파로 IPA는 풀 바디감, 홉의 쓴맛, 상대적으로 높은 도수가 특징이다.
1990년대 미국 애리조나 주 일렉트릭 브루잉 컴퍼니에서 더블 IPA를 만들었다. 플라스틱 발효조를 사용해 맥주를 만들었기에 원하지 않는 풍미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 홉 양을 두 밸로 늘리고 더 많은 몰트를 사용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맥주는 1세기 로마에서 홉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철학자 플라이니 디 엘더(Pliny the Elder)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현재 미국에서 홉의 대부분은 워싱턴 주에서 생산된다.
한편 1990년대 캐나다에서는 1980년대 독일에서 우연히 발명된 아이스 비어가 크게 유행했다. 아이스 비어는 맥주를 빙점 이하로 낮추면, 맥주에 함유된 물의 일부가 어는 반면 알코올은 액체 상태로 있게 된다. 이때 신선한 물을 다시 넣어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이스 비어는 알코올 도수가 낮아지면서 순하고 쓴맛은 적어진다. 현재 아이스 비어는 캐나다 맥주 시장의 1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자, 세계에서 1인당 가장 많은 맥주를 소비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가장 많이 나오는 답은 아마 벨기에나 독일일 것이다. 정답은 체코다. 체코는 1인당 연간 144리터를 소비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인당 49리터다. 체코에 비하면 삼분의 일 수준이다.
책은 우리나라에서 시음해볼 만한 비어팝으로 맥파이 브루잉(제주), 고릴라 브루잉·와일드 웨이브 브루잉(부산), 바네하임·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서울), 버드나무 브루어리(강릉) 등 여섯 군데를 소개한다. 특히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는 서울 성수동의 작은 공간에 소규모 양조장을 지어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언제 좋은 날에 어울리고 싶은 사람 몇몇 모여 찾아보면 어떨까? 가장 좋은 술 안주는 역시 사람이 아니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