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바로 세상을 배웠다 -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인생 사용 설명서
황해수 지음 / 미래타임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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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황해수 씨는 27세의 청년이다. 철도공무원 아버지, 행정공무원 작은아버지, 소방공무원 삼촌을 두고 어려서부터 공무원의 안정된 삶을 지켜보며 자랐다.

그는 부모의 기대에 못 이겨 취업을 목표로 무작정 입학했던 대학교는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4개월 만에 나왔다. 스티브 잡스도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대학교를 중도에서 그만두지 않았던가.

저자는 ‘진짜 나’를 알기 위해 ‘획일화된 정답’에 길들여진 현실을 박차고 나왔다. 그가 택한 방법은 두 가지다. ‘새로운 일’과 ‘여행’이다. 두 가지 공통점은 매뉴얼이 없는 낯선 곳에서 익숙하지 않은 경험을 하는 것이다.

 

삶에는 수많은 매뉴얼이 있다. 하지만 매뉴얼에 나오지 않는 상황에 더 많이 맞닥뜨리게 된다. 매뉴얼에 나오지 않는 것에서 진정으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24쪽)

 

그는 스펙을 쌓아 대학을 나오고 취직을 하는 대신 오직 ‘알바’라는 한 우물만 파며 10년 가까이 비정규직으로 살았다.

첫 알바는 17세 때 친구의 권유로 알게된 고깃집에서 서빙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탓에 손님대하는 일이 서툴러 2주일 만에 잘렸다. 그 다음은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만드는 그릴 일을 맡았다. 다행히 고객을 직접 상대하지 않아 훨씬 수월했다. 이렇게 해서 저자는 약 10년간 27가지의 알바를 해왔다.

이 책은 저자가 알바를 하면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나는 누구이고, 앞으로 뭘 해야 하지?’에 대한 저자의 깨달음을 전해준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저자는 공장 건설현장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리며 이성복 시인의 시 「그날」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한다. 당시 다른 업체의 창고에서 사다리를 훔쳐와 우리 업체의 물건으로 만든 일이 있었다. 이렇듯 불법과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죄책감은커녕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난 그가 인용한 이성복 시인의 「그날」 전문(全文)을 찾아 읽었다. 시를 읽고 나서야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체득할 수 있었다.

 

그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未收金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愛人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 占 치는 노인과 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市內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 「그날」 이성복 시인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아파트단지에서 단열시공 알바를 할 때였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공정에서 작업을 생략하거나 대충 마무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기본과 원칙을 지키자고 말한다. "일의 성과와 완성도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정성에 따라 달라진다. 업체의 인지도, 가격, 장비보다 그게 더 중요하다."

 

혹자는 20대 후반까지 알바를 전전하는 그에게 실패한 인생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입장은 당당하다.

 

“난 땀 흘리며 당당하게 일해 왔고, 남의 시선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 남들 보기엔 초라한 인생일지 몰라도, 누구보다 나에게 떳떳하기 때문에 자랑스럽다.

정답만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에 맞지 않는 ‘무모한 도전’을 한 끝에, 이제 어렴풋이나마 감을 잡아가는 중이다. 대체 나는 누구인지, 이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조금이라고 쓸모 있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지금은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부지런히 꿈을 꾸면서 실행하는 중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가 알바를 통해 배운 세상은 어떠했을까? “세상은 교과서로 배운 것처럼 원리 원칙대로 돌아가지 않았으며, 아직까지도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는 법보다 주먹이 앞섰다.”  그가 세상을 향해 외치는 한수도 있다. “청년들에게 왜 땀을 흘리는 노동을 싫어하냐고 비판하기 전에, 우리가 어떻게 노동자들을 대했는지를 생각해봐라.”

 

알바라는 비정규직은 한국 자본주의에서 최하위 층위에 위치한 노동 형태다. 새 정부가 최저임금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이유도 알바 비정규직을 비롯해 노동자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겠다.

‘진짜 나’를 알기 위해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하이킥 하는 저자의 모습은 내게 깊은 울림을 던져주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체험한 세상살이에 대한 깊은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일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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