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 서기실의 암호 - 태영호 증언
태영호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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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사진)는 1988년 북한 외무성에 입사해 덴마크, 스웨덴, 영국 등지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다 2016년 여름 한국으로 망명했다. 2017년 1월부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으로 일하다 5월 23일자로 그만뒀다. 지난 5월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졌던 출판기념 강연에서 한 발언이 북한을 자극하기도 했었다.

 

책을 보면 소련 붕괴와 중소 한국 수교에 따른 북한의 외교 전략, 1993년부터 비롯된 북핵 위기의 실상, 남북 정상/고위급 회담 등 굵직한 현대사 일화들이 잘 정리돼 있다. 특히 강점은 최근 30여 년 간의 남북 관계와 북한의 외교 동향을 내부자의 시각에서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잘 가려서 읽는다는 전제하에 책에는 참고할만한 팩트가 의외로 많다. 개중 하나를 소개해 보자.

 

“(2001년에 발표된) 「조러 모스크바 선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내용은 한반도, 러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한다는 부분이다. 남북 경제협력에 이어 한반도 종단철도가 건설된다면 북한에 엄청난 경제적 혜택이 들어올 것이 확실했다. 김정일도 이 계획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런데 ‘떠먹여 줘도 못 먹는’ 북한 체제의 한계 때문에 한반도 종단철도 건설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러시아는 건설 의지가 확실했고 한국은 언제라도 지원할 의사가 있었다...

 

 

문제는 북한의 동해안 방어부대 대부분이 철도를 따라 배치돼 있었다. 한반도 종단철도가 건설되어 철도 현대화가 진행되면 대대적인 부대 이전이 불가피했다. 북한 군부는 6·25전쟁에서 전세가 역전된 원인을 인천상륙작전 때문이라고 보고 수십 년 동안에 걸쳐 동해안 철도를 따라 방대한 해안방어선을 구축했다. 철도 현대화 사업이 벌어지면 해안방어선을 다시 구축해야 한다.

 

부대 이전만 해결해 주면 되는 문제였지만 북한은 그렇게 할 만한 경제력이 없었다. 김정일이 군부의 반대를 물리치지 못한 이유다. 동해안 철도 현대화 계획은 자연히 힘을 잃었다. 이후 북한은 러시아의 하산부터 함경북도 나진항까지의 철도만 현대화하기로 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한국과 러시아는 아직도 한반도 종단철도 수송로 창설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140~141쪽)

 

 

이 대목은 원산에서 풍계리로 기자단을 실어 나른 기차가 왜 야밤에 그것도 블라인드를 내리고 운행할 수밖에 없었는지 잘 설명해준다. 또한 남북 종단 철도가 러시아와 중국과 연결된다하더라도 서울이나 강릉에서 출발하는 기차 여행은 물론 남쪽 기관사가 북한 지역을 운행하려면 여러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책 제목 ‘3층 서기실’은 3층 규모의 건물 전체를 쓰고 있는 위원장의 집무실을 가장 근접해서 보좌하는 부서를 뜻한다. 우리 식의 대통령 비서실이다. 현재 3층 서기실장은 김창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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