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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생물과 산다 - 인류 기원부터 시작된 인간과 미생물의 아슬아슬 기막힌 동거
김응빈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4월
평점 :

연세대 김응빈 교수(사진)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에서 미생물이 우리 몸 속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상리공생(相利共生) 관계라고 말한다. 이는 영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에드 용이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에서 말한 ‘미생물적 맥락(microbial context)’과 일맥상통한다. 인간과 미생물은 상호 조화를 이루며 공생한다는 것이다.
그간 미생물에 관한 외국 책은 많았으나, 우리 학자가 쓴 미생물에 관한 이야기는 적었다. 이에 이 책은 과학 도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미생물을 중심으로 알기 쉬운 설명과 함께 시각 자료를 풍부히 담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책은 4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대장균, 레지오넬라균 등 인간으로부터 오해를 받고 있는 대표적인 미생물들을 의인화시켜 이야기한다. 2부에서는 여러 미생물의 사례를 들어 미생물의 종류와 역사, 인간과 미생물의 관계를 살펴본다. 3부에서는 300년 남짓 동안 인류가 미생물에 대해 알게 된 지식과 그에 얽힌 미생물학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4부에서는 미생물의 놀라운 다양성과 능력 덕분에 인간이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려 왔는지 설명한다.
대다수 미생물의 크기는 1~10㎛ 정도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몸으로 느낄 수도 없다. 하지만 미생물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늘 우리와 함께 한다.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 수는 세포수보다 10배 정도 많다. 보통 성인이 약 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면, 우리는 최소한 1000조에 달하는 미생물 세포를 함께 가지고 있다. 무게로 따지면 우리 몸무게의 최소 2퍼센트를 차지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종류는 수백만 종에서 수천만 종을 헤아린다. 지금까지 명명된 것은 1만 6천여 종에 불과하다. 매년 새롭게 명명되는 수도 고작 약 8백 종 정도다. 미생물 세계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전체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김 교수가 특히 아끼는(?) 세균은 무엇일까? 바로 테르무스 아쿠아티쿠스(Thermus aquaticus)다. 세균명은 ‘열’을 뜻하는 그리스어 ‘thermos’와 ‘물’을 뜻하는 라틴어 ‘aqua’에서 유래했다. 섭씨 70℃에서 가장 잘 자란다. 이 세균은 생명공학이나 법의학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가령 DNA를 증폭할 때 열을 가해 이중나선을 떨어뜨리 과정에서 기존의 효소들은 열에 약해 사용하기가 어렵다. 이때 열에 강한 테르무스 아쿠아티쿠스가 그 역할을 대신해 준다.

1966년 옐로우스톤 공원의 뜨거운 온천수에서 분리된 테르무스 아쿠아티쿠스는 산업분야에서 활용 1순위 중 하나다.
이와 반대로 영하 80℃에서도 거뜬하게 살아가는 남세균 크루코키디옵시스(Chroococcidiopsis)는 화성 개척의 선봉장이다. 이 세균은 화성의 기후와 상당히 비슷한 오지 남극 드라이 밸리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화성으로 옮겼을 때 화성의 대기와 토양도 바꿔 놓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남극 오지 바위 틈새에 사는 남세균 크루코키디옵시스는 화성 개척의 선봉장이다.
이외에도 병원내 감염이나 조류독감 등 미생물과 관련된 시의성 있는 주제부터 지구에 산소를 처음 선물한 시아노박테리아, 아기의 면역계를 형성하는 모유 속 비피도박테리아, 방사능을 잡아먹는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생물 이야기를 가득 실었다. 미생물을 전공하는 과학도는 물론이요, 과학 지식이 많지 않아도 누구나 편히 읽을 수 있을 만큼 친절한 미생물학 입문서다.
김 교수는 다음 책으로 세균 입장에서 결핵균이나 녹농균, 포도상구균 등 병원균을 진화생태학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살펴보고 싶다고 말한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싸워온 질병의 주인공들과 대면하는 이야기다. 앞으로 저자의 저술로 그만큼 넓어질 인문과학의 지평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