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갈치를 보내주었다. 한 상자를...
택배 아저씨가 현관에 부려놓고 간 스티로폼 상자를 씽크대로 갖고 오는데도 낑낑대었다. 왜 이케 무거운고야~
스티로폼 상자를 열고는 기절할 뻔 했다. 스티로폼 안의 나무 상자, 그 안에 있는 얼음 조각들....그리고 은색을 빛내며 차곡차곡 누워있는 기다란 갈치들...
살림 못하는 나...서너살만 더 어렸어도 이렇게 갈치 한 상자가 오면 손도 못 대고 끙끙 알았을 것이다. 대충 하고 살았다 해도 주부 경력이 있는데...토막 쳐서 냉장고에 집어넣겠다고 나섰다.
스티로폼을 둘러싸고 있던 비닐을 가위로 대강 잘라 도마 위에 펼쳐 놓고 왼손에는 비닐 장갑 끼고 칼을 들었다. 허허...갈치가 굉장히 실하다. 한 손으로는 토막 안 쳐진다. 오른손으로 자르고 왼손으로 칼날 앞 부분에 힘을 주어 잘랐다. 근데 이 갈치 대가리를 어쩐다. 마트에서 토막친 갈치만 사보았기에, 대가리는 어쩌지 못하겠다. 근데 그냥 버리긴엔 아까울 정도로 위, 아래에 살이 붙어 있다. 친정 엄마에게 긴급 콜. 아니나 다를까...대가리 버리지 말란다. 지져 먹으면 좋단다.
생갈치냐?
몰라...생물 같은데...
몇 마리냐?
몰라...잘라 봐야 알것어.
일단은 소금 뿌려서 냉장고에 넣었다가 낼 아침 물에 한 번 슬쩍 씻고 소금 뿌려도 되고 안 뿌려도 되고 개별 포장해서 냉동실에 넣어. 대가리고 꼬리고 먹을 수 있는 부분은 버리지 말어. 아까우니깐!
@@ 흑흑, 일이 점점 더 커진다.
갈치는 전부 31마리였다. 이 1마리는 서비스로 넣어준 것이겠지...꼬리 부분은 생선 가게 아줌니들처럼 칼로 탁 내리쳐서 자르고 나머지 토막들은 두 손으로 잘랐다. 손은 더디고 기다란 갈치는 도마의 사정 범위를 벗어나니 씽크대 주변이 난리 부르스다. 저녁 밥 하다 말고 갈치 토막 치겠다고 덤벼서 결국 밥은 그 자리에서 토막친 갈치 구워 그 반찬 하나로 먹었다. 근데 잘 안 구워지고 구워지면서 살만 푸욱 가라앉아 맛이 좋은건지 나쁜건지도 모르겠다...엄마 말대로 좀 절였다가 구워 먹어야 하나보다. 그래서 냉장고에 넣어두라고 하셨나...
지금 냉장고에 갈치 있다. 우리집 냉장고는 대형 냉장고가 아니다. 저거 손질해서 이제 냉동실에 넣어야 하는데 들어갈 데가 없다. 이런 거를 주면 어째 하고 궁시렁거렸더니...남편이 대형 냉장고 사러 가잔다. 누가 B형 남자 아니라고 할까 봐 이렇게 잊지 않고 상기시켜준다. 그래서 이렇게 선선한 바람 부는 낭만적인 아침에 대대적인 냉장고 청소, 정리 작업을 해야 한다.
옆에 사는 동생은 지금 휴가 갔으니 당장 줄 수도 없고, 친정이나 시댁에 들고 가려 해도 일단 얼려는 두어야 한다. 지금은 윗층 엄마만 주면 되겠다. 흐...진짜 사람 안 사귀고 산다. 사실은 교회 식구들에게 갖다 주고 싶은데, 과일도 아닌 생선은 전해주기가 애매하다. 이거 제주도에서 올라온건데.... 내가 손질 잘 못 해서 맛없게 되어버린 것 같다. 소금 팍팍 뿌려서 넣어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