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도 병인가 보다....어제는 뭐를 좀 찾으려다 대학 때 노트를 꺼냈다...물론 필기했던 노트들은 옛날에 다 버렸고, 좋은 시나 책에서 본 좋은 구절들을 옮겨 적은 그런 노트였다....
줄창 써오던 일기나 주고 받은 편지들은 잘 갖고 있다가 몇 년에 한번씩 버리곤 했다. 왜 그렇게 사는게 재미없었을까...그래서 내가 그렇게 남겨지는게 싫어 몇 년에 한 번씩 버리곤 했던 거 같다.
그 속에서도 살아남은게 이 노트들이다.
일반적으로 시집 한 권을 읽으면 그 곳에서 하나나 많아야 둘 정도 가슴을 울리는 시를 만난다. 그렇게 만나는 시들이기에 옮겨 적게 되는 것이고, 몇 년이 지나도 그 시들은 또다시 가슴을 울린다. 그래서 버릴 수가 없었다.
책을 읽고 옮긴 구절들은 왜 그리 많은지...가장 많은 것은 시몬느보봐르의 <제2의 성>이었다. 타이핑한 A4 용지가 몇 장씩 묶여져 있다. 감상은 안 적었던 노트였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 두 권은 예외였는지 감상까지 적혀있다.
한동안 책을 읽어도 아무 것도 안 남겼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다시 노트를 샀고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대학 때는 대학 노트를 사용했다면 애엄마가 되고나서는 좀더 작은 노트로도 충분했다. 일단 읽는 책들 중에 어려운게 없었고, 기록을 남길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은 더더욱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록은 남기면 확실히 책의 끄트머리라도 잡고 있는 기분을 갖게 해준다. 누구는 그런다. 기록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책의 선택과 읽는데 있어 바람직한 자세를 만들어 준다고...그런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이렇게 알라딘 리뷰를 쓰면서부터는 노트 기록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두 번씩이나 되풀이하기 싫으니 곧장 서재에 남기게 되는데...암만해도 공개되는 글이니 신랄한 비평이나 개인적인 코멘트를 덜 하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
얘네들을 어떻게 보존한다? 다 출력해 두어야 하나...그건 무식한 방법 같고...일일이 갈무리해서 시디에 기록해 두어야 하나...과연 모니터 상에 뜨는 것을 제대로 읽게 될까? 나는 활자세대라 그런지...그래도 다 출력해 두는게 마음 편하고 심심할 때 한 번씩 들여다 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님들은 어떻게들 하시고 계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