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로 읽은 세 번째 고전 소설.
뒤에, '홍길동전 삐딱하게 읽기'라고 해서 홍길동전의 한계를 지적해놓은 부분이 있다.
"『홍길동전』은 당대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살아가는 홍길동의 삶을 보여 줌으로써 사회 변화와 개혁을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그러나 소설에서 보여 주는 비판 의식과 저항 정신이 다분히 제한적이고 부분적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홍길동전』이 안고 있는 한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봉건 사회의 특정한 모순을 비판하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모순들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무시한다는 점, 또 봉건 체제와 질서, 당대의 지배적인 이념을 상당히 존중한다는 점, 이것이 『홍길동전』에 대한 의문의 초점입니다." (161쪽)
이어지는 예들은 상당히 그럴싸해 보였다. 그러나, 읽다보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현대적인 시각에서 비판해놓은 말들이 계속 거슬렸다. 결국, 펜 하나를 꺼내 들고 여백에 빽빽히 갈겨써 버렸다.
허허... 실로 신기한 도술을 부리는 길동은 그 자체로 '현실성'과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현실을 봐야 한다. 만약,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바바리 변태'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으로, 그런 행위는 살면서 겪는 한 시기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온다고 생각해 봐라. 그 때의 사람들이, 지금 우리의 문학 작품 속에 묘사된 바바리 변태의 모습을 보며 "역시 구식이군, 사회 비판의 허점이 너무도 명백히 드러나."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바바리 변태는 그저 정신이상자일 뿐이지 않은가. 바바리 변태를 보고 '인생에 한 번 쯤은 거치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겪고 있다는 말을 쓴 소설이 나오면, 지금의 우리로서는 저 소설가가 돌았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더욱이 그런 말을 쓸 소설가도 없을 것이다. 그건 '당연'한 거니까. 바바리 변태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게 너무도 당연하니까. 홍길동전도 같다. 당시에 여성 인권? 없는 게 너무도 당연했다. 왕? 하늘인 것이 당연했다. 그러니, 당연한 것에는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이다. 길동은 제도의 통솔자로, 율도국의 왕으로, 대단히 다채로운 삶을 살지만 저자는 조선 땅에 태어난 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갑자기 써댄 거라 지금 읽으니 좀 황당하지만(하필이면 바바리 변태가 뭐냐고), 읽으면서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서 뭐라도 안 쓰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흥분해서 써놓고, 좀 더 읽어내려가다 보니 이런 말이 나왔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중세적 한계로만 치부해 버리게 되면 문학 작품이 지닌 의의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결과를 낳게 되겠지요." (162쪽)
내가 그토록 거슬렸던 이유는 바로 이거였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즐겁게 잘 읽었건만, 이 소설은 이러이러한 면에서 한계가 있니 없니 하며 작품의 배경 설정까지 꼬집어대고 있으니 상쾌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학 작품이 지닌 의의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안일한 비판에 속이 뒤집힌 거다.
시간이 좀 지나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간단히 뿔따구가 나서 이성적인 상태가 아닌 감정적인 상태에서 날림글을 적어버린 나 자신이 안타깝다. 그런 돌발성이 나쁠 건 없지만, 좀 더 머리를 식히고 적었다면 조목조목 짚어 정리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책의 내용에서보다도, 뒤에 실린 '삐딱하게 읽기'에서 더 큰 것을 얻었다. 이러니 독서가 재밌지 않을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