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빛 꽃잎 너머로 태양이 보인다.
갓 돋아난 유록색 이파리가 꽃잎과 썩 잘 어울린다.
봄의 노랫소리를 안은 환한 꽃구름 아래서 나는 울고 말았다.
적당히 높은 담장과
낡아빠진 건물벽과
콘크리트 바닥을 덮은 벚꽃잎과,
저 멀리 지팡이를 짚고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봄이 왔노라고 귀띔해주었다.
왕자 아파트 앞을 걸어가는데 벚꽃이 어찌나 풍성하게 피었던지, 감동받아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내년에도 이 아름다운 봄의 벚꽃을 볼 수 있을까? 여기저기 걸려있는 플랜카드들이 재건축을 외치고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아파트는, 역시 재건축의 대상이겠지. 하지만 여기에 새로 아파트가 들어서면, 가족이 손에 손 잡고 걷는 이 거리는 사라질텐데.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어울리는 이 풍경은 사라져버릴텐데. 내 어린 시절이 담겼던 풍경들이, 재건축 바람에 몰려 사라져간다. 거짓말같이 사라져간다. 새 아파트 단지에는 어떤 꽃이 필까? 지금 우리 아파트처럼 멍청하고 빈약한 벚나무가 자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