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요즘들어 책을 더 안 읽고 있다. 뭐, 진도 안나가게시리 영어소설을 읽겠다고 나서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걸 감안하고 봐도 그렇다. 읽는 속도도 느리다. 읽고나서 감상도 안 적는다. ...하는 게 뭐냐-_-
어린 시절, 그러니까 유치원 다닐 때는 정말 책 많이 읽는다고 내 스스로가 내세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냥 서점에서 살았으니까. 유치원과 피아노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엄마가 없었다. 그러면 나는 집에서 혼자 EBS를 보거나, 하나 둘 셋 비디오를 봤다. 하지만 혼자는 역시 쓸쓸하잖아.(유치원 종일반에, 피아노 치고나면 내 친구들이 집에서 나와 놀기에 적당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래서 서점으로 향했다. (참고로 서점은 집에서 백발자국도 안 되는 무척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서점에 들어가면 아줌마와 인사를 하고, 책 하나 뽑아들어 구석에 책 쌓아놓은 곳에 걸터앉아 읽어치웠다. 그렇게 읽고 나면 또 다음, 다음, 다음. 엄마가 오는 시간까지 열심히 책을 읽었다. 아줌마가 혼내진 않았냐고? 전혀. 서점 주인은 엄마 제자의 학부모였다.(그땐 지금보다 선생님 위치가 높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엄마와 아줌마 사이에 어떤 거래가 있었겠지. 어떤 거래가 있었든 절대적으로 우리가 이익임이 틀림없었다. 돈을 드렸다 해도 내가 읽는 그 많은 책들을 다 사는 데 드는 돈만큼 드렸을리는 없고, 책꽂이 살 돈도 절약했으니까. 그럼 아줌마는 날 미워했을까? 그 속은 알 수 없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날 아주 예뻐하셨다. 그렇다, 나는 아기때부터 '아줌마'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것이다. 피아노 학원이 시장을 지나 있었는데, 시장을 지나치며 아줌마들이 바닥에 이렇-게 펴놓고 앉아 있는 곳을 하나씩 지날때마다 어묵 하나, 떡 하나씩 늘어가던 기억이 난다. 이상한 길로 빠졌네. 하여튼, 나는 아줌마의 이쁨을 받으며 그렇게 책을 열심히 읽는 아이였다. 장르를 불문하고 재밌어 보이는 책은 다 꺼내 읽었기 때문에 잡다한 지식도 많았다.(예를 들어, 성교육정도는 이 시기에 책으로 다 끝났다.) 당당하게 말하건데, 정말 책 많이 읽는 똘똘한 아이였다! 이렇게 열심히 책 읽는 시기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서점없는 동네로 이사하면서 파국을 맞았다. 아니다, 3학년때까지는 그래도 여전히 책 많이 읽는 아이였다. 그러나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학원이 늘어가면서 점점 책 읽는 수가 줄어만 갔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어떻게 되었나. 한달에 책 몇 권 읽나 손가락으로 세기도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많이 읽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듣는다. 왜 그럴까? 내 생각에, 앞서말한 저 시기에 읽은 책들로 겨우 연명해온 것 같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흐르고, 나는 나이가 든다. 당연히 지식수준의 향상을 요구받고 있다. 아직까지는 버틸 수 있지만 기억도 어렴풋한, 어린아이의 눈으로 읽은 책들이 과연 언제까지 먹힐지 의문이다.
상황이 대충 이러하니, 책을 열심히 읽겠다! 책, 책, 책을 읽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