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스포일러로 가득찬 글입니다.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니, 지브리 스튜디오니, 세세한 내용은 잘 모른다. 하지만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분명 재밌게 봤다. 그림으로 표현된 이야기들이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던지... 처음 접한 것은 <이웃집 토토로>였다. 어릴 때, 친구집에서 영어자막이 된 걸로 봤었는데, 말은 일본말, 자막은 영어니 무슨 내용인지 알아들었을리 만무함에도 그림에 정신을 홀딱 뺏겼던 기억이 난다. 그 후 5년 이상 지나 영화관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봤고, 그 때도 정신없이 매료되었다. 그리고 나서 <모노노케 히메>를 봤고, 또 반쯤 넋이 나갔었다. 세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늘 놀랐다. 첫번째로는 마치 진짜 사람인 것 같은 세세한 심리·동작 묘사에 놀랐고, 두번째로는 진짜 사람이 아니기에 표현할 수 있는 동화적인 환상에 놀랐다. 디즈니의 동화와는 다른, 또 다른 느낌의 동화의 세계였다.

  이러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기뻐한 것은 당연했다. 굉장히 기대가 컸던 것이다. 아,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얼마나 멋질까!

  그렇게 기대를 많이 하던 작품을 보았다. 그리고 감히 단정적으로 말하려 한다. 진짜 '동화'의 완결판이었다. 감독이 그리고 싶은 것을 전부 때려부은 듯한 진정한 '동화'의 완결판. 그래서인지 <하울>에서는 기괴한 모양으로 돌아다니는 하울의 성, 공기를 사뿐사뿐 밟으며 즐기는 공중 산책 등, 참 동화 같은 영상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 이런 건 괜찮다. 오히려 좋다. 그러나 이것이 스토리까지 이어진다면 좀 문제가 있다. 동화도 동화 나름이지, 그저 해피 엔딩이라고 헤헤거리고 웃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하울>은 너무 많은 문제를 간단 그 자체로 해결해버렸다.

  우선, 황야의 마녀가 방해가 되자 설리만에게 보내 힘을 잃게 한다. '무대가리'가 처치 곤란하게 되자 소피의 키스로 이웃나라 왕자가 되게 한다. 영화가 끝날 때가 되자 벌여놓은 전쟁을 수습해야 하니 설리만의 멘트를 이용한다. "어서 이 바보같은 전쟁을 끝내야지"라니,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 어차피 만화일 뿐이지만, 그 대사가 나오는 순간 내 눈에 비친 것은 불길에 휩싸인 민가와 고통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간단히 끝낼 수 있다면, 왜 진작 끝내지 않은 거냐. 주인공만 하하호호하고 있으면 다가 아니지 않은가! 전쟁이 싫다고 말하는 하울을 주인공으로 세워놓고, 감독은 자신이 전쟁에 반대함을 말하고 싶었을까. 하지만 그 반대라는 것이 너무도 이기적으로, 주인공만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나 많은 문제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휙휙 해결해 놓고는, 정작 중요한 문제는 풀지 않았다는 것이 또 우습다. 바로, 소피의 저주에 관한 문제이다. 소피의 저주는 풀린 것인가? 저주로 등 굽은 할머니가 된 소피의 모습은, 신기하게도 불규칙적으로 바뀐다. 분명 처음 저주가 걸렸을 때는 꽤 오랜 시간 할머니였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랬다 저랬다 지 맘대로다. 밤에는 원래 모습이 되는 건가, 하고 생각도 해봤지만 아닌 걸로 판명되었다. 황야의 마녀의 힘이 없어졌기 때문에 저주가 풀리는 거라면, 제대로 풀려야지, 할머니의 모습도 심심찮게 나오는 게 이상하다. '약발'이 있는 것처럼 '저주발'도 있다는 건가? 결국 끝날 때는 하울이 '별빛'이라고 표현한(그래봤자 내 눈에는 할머니 때 머리카락 색이랑 똑같드만)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의 모습이 되어있다. 허, 참 이상도 하다.

  일단 실망을 하고 나니, 전에 영화 홍보물을 보면서 느낀 석연찮은 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그놈의 '꽃미남'이라는 단어였다. 꽃미남이라고, 꽃미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하쿠가 인기있었기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드디어 '미소년은 잘 팔린다'는 걸 깨닫고 이용해 먹기 시작한 건가 했다. 그래도, '꽃미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 배급사지 감독이 아니었으므로 생각을 접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 생각이 맞았던 게 아닌가 싶다.

  하울, 하울. 만화 캐릭터인데도 영화 보는 내내 하울만 스크린에 등장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으니 할 말 다 했다. 그 녹아드는 목소리하며, 잘 빠진 다리하며, 베어다 칼로 써도 될 것 같은 콧날하며. 이렇듯 잘 생긴 것은 기본적으로 깔아준다. 거기에 능숙하게 달걀을 깨는 손놀림, 청소는 안 하지만 '이사' 한 방이면 그 정도 문제는 다 해결되는 가정적인 모습도 보인다. 아름답지 않으면 살 이유가 없다는 말은 얼핏 재수없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아이~ 요 귀여운 녀석!'이라는 반응이 튀어나온다. 거기에서 혹, 정말 재수없다는 생각이 팍팍 든다 해도, 바로 뒤에 이어지는 "나는 겁쟁이"라는 고백 신에서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설리만 앞에 나타날 때의 능청스러움이 있는가 하면, 같은 장면에서 "소피가 있어서 올 수 있었다"는 말로 지켜주고 싶은 이미지를 굳힌다. 자신만의 비밀의 화원으로 소피를 초대하는 로맨티스트의 면모를 느끼고 나면, 마지막엔 소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전쟁터로 날아오르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남자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는 없게 되어있다. 이러니 어떻게 하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나 '꽃미남'을 연발하더니 그거 하나엔 확실히 성공한 모양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하울의 얼굴만 봐도 행복해요', '기무라 타쿠야 목소리만 들어도 흐물거려요'라는 생각이 든다면, 혹은 '기대따윈 하지도 않아요'하는 마음으로 본다면 크게 건지고 나오고, '기대 만빵이예요', '또 얼마나 훌륭한 이야기를 풀어놓을까요'하는 기대를 걸고 본다면 좀 잃을 영화였다. 나?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였다.

  (아, 오랜만에 즐거운 마음으로 길게 적었더니 속이 다 시원~하네!^^)


▲첫만남


▲이런 표정으로 무엇을 하고 있겠습니까?

▲계란을 깨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하울의 움직이는 성... 아니, 하울의 움직이는 돼지우리를 청소하는 중인 소피.



▲그렇다. 미남은 괴로워해도 멋있는 것이다.


▲소피를 바라보는 그윽한 눈빛... 안 넘어갈 수가 없다.



▲맘만 먹으면 이사 정도야 애들 장난.


▲하나조노하루타로(꽃밭의 봄돌이)라는 이름은 그대의 것이었소...

▲많이 본 장면.


▲글에는 등장하지 않는데... 마르클과 힌. 정말 귀여웠다! 캐릭터에서만 승리한 듯.


▲지켜야 할 게 생겼어. 소피, 너야.


▲여러모로 소피의 키스는 쓸모가 있다.



▲보라, 저 진정 높아주시는 하울의 콧대를...


▲진짜 황당했던 '이웃나라 왕자' (아, 이 너무 구.체.적.인 설정은 뭐냐고)


▲이것이 바로 '별빛' 머리카락.


▲이렇게 로맨틱한 엔딩이 어디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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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룸 2005-01-0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스,스포일러가 많을것같아요!! '하울~'을 보고난후에 와서 다시 읽겠습니다...^^a

明卵 2005-01-04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맞아요! 스포일러 덩어리네요! 눈을 가리세요~ 음... 경고문이라도 써 놓아야 하나^^;;

明卵 2005-01-06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꽃미남 만세!! 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