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대란 직후, 페이퍼에 노래를 등록하려다가 피를 봤더랬다. 지기님께 지워달라고 징징거리러 갔더니 어째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밝은 알 노래방' 카테고리를 비공개로 해놓고 잠시 잊고 있었는데, 어제 갑자기 생각이 나서 나름대로 혼자 처리하려고 별 쇼를 다 했다. 그 쇼는 '밝은 알 노래감상'이라는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어 노래방에 있는 내용물을 일일이 이동시키면서 절정으로 달렸고, 결국 그 클라이막스를 맞이했을 때 나는 마우스를 집어던졌다. 전 카테고리인 '밝은 알 노래방' 삭제과정에 그 엿같은 오류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나의 계획은 이랬다. 옛 카테고리인 '노래방'의 페이퍼들을 새 카테고리인 '노래감상'으로 옮긴 다음, '노래방'을 지워버리면 속에 있던 내용까지 다 지워질테니 더 이상 지긋지긋한 Ziggy Stardust 트리플 플레이를 안 들어도 되겠지! (애초에 그 페이퍼가 잘못 등록되면서 같은 노래가 세 곡 연속 들어가 앉은 게 문제였던 것이다. 게다가 삭제버튼도 사라지고. 참고로 나는 항상 하던 방식대로 페이퍼를 작성했고, 이건 분명 대란이 낳은 결과물이다.) 그런데 보다시피,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누군가의 눈에는 컴퓨터 관련 자격증 하나 없고, 기계랑 별로 친하지도 않은 미련한 인간이 벌인 웃겨자빠지는 쇼일 수도 있겠지만 이게 내 스타일이다. 나에겐 큰 일이고 누군가 더 기술이 있는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라 그에게 부탁하면 금방 해결될 문제라도, 나는 누구에게 손을 벌리기가 어딘가 찜찜하고 미안스럽다. 그래, 나는 '일하는' 사람을 기피한다. 두려워한다. 그래서 어디든 일하는 사람과 부딪치는 건 질색이다. 매표소, 은행, 우체국, 음식점 같은 곳. (다행히 계산대에서는 '이러이러한 일로 왔다'고 말할 필요없이 그냥 계산만 하면 되니까 참으로 다행스럽다.) 가게로 거는 전화도 싫다. 이런 나의 공포증은 인터넷 상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1:1 고객상담 같은 서비스도 컴퓨터가 대답해주는 게 아닐테니 당연히 '일하는 사람'이 있을테니까. 싫다. 귀찮게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멍청한 짓을 손수 한 것이다. 그런데 오류 메세지 하나가 그 멍청한 짓조차 의미없는 것으로 만들어서 기분이 심히 나빴다. 더 기분 나쁜 것은, 이제 내가 피하고 싶어 미칠지경인 1:1 고객상담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싫어도, 이미 시작한 일이니 뿌리를 뽑자. 이렇게 생각하며 문의했다. 내가 페이퍼를 등록했는데 실수(혹은 오류)가 좀 있었다, 상태 메롱인 마이페이퍼 링크 주소는 이러이러하니, 좀 지워줄 수 있겠느냐, 혹시 여기로 묻는 거 아니면 말해주길 바란다. 다음에는 그쪽을 이용하게. (이런 황당한 문의를 읽어줄 것에) 감사한다. 어젯밤이었다.

  오늘 아침에 답변이 왔다. 정말 기뻤다. 답변이 이렇게나 빨리 오다니, 역시 간단한 일이었구나! 행복에 차서 메일을 열어본 나는 순간 혈압이 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답변은 너무나 간단했다. 단 한 줄이다.

"담당부서에 문의해주신 내용을 전달해드려 확인후 고객님께 직접 답변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벙쪄서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내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인간의 몸에 김치만두가 올려져있는 게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 잠시 어지럼증을 느끼고 정신을 차리니 웃음이 나왔다. 죽여준다. 내가 원하는 건 초 스피드로 날라오는 '담당부서에 문의해보겠네'라는 답변이 아니다. 결과물이다. 담당부서에 전달해서 확인 후에 '직접' 답변드리겠다는 어휘 사용은 대체 뭔가. 이 부사에서는 악의적이 아니라 고질적인 책임회피가 섞여있다. 직접? 누가 직접 답해준다는 걸까. 나에게 이런, 컴퓨터에 입력된 내용을 그냥 날려보낸 듯한 답변을 전달해주신 직원이? 아니면, 이 사람은 그냥 '전달'만 하고 담당부서의 직원이 답변을 해준다는 걸까? 깊은 불쾌감을 느꼈으나, 그러나 기다리기로 했다. 내가 '문의해주신' 내용을 담당부서에 전달드려서 답변을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테니, 나중에 확인해보자.

  그리고 지금 돌아왔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만으로도 결과는 분명하다. 떨리는 손으로 '밝은 알 노래방' 카테고리를 클릭한 순간의 그 배신감. 강렬한 2차 어택이었다. 분명히 오전 9시 반 경에 온 답변이 담당부서에 내가 문의한 내용을 전달해서 나에게 직접 답변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작은 사건이 해결되지 못했단 말인가. 뭔가? 알라딘의 부서들은 세계 각지에 하나씩 흩어져있고, 지금이 한 200년 전이라 그까지 가서 답변을 받아오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 나보고 1년 정도 기다려달라는 말인가? 아니면 용어 이해의 차이였나? 나는 이 '답변'을 당연히 '해결'이라고 해석했건만, 이 사람은 그런 의미로 쓴 게 아니었던 걸까? 그렇다면 '해결'이 아닌 '답변'마저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황당하게도 나는 알라딘의 플래티넘 고객이다. 그런데 이 지랄맞은 1:1 고객상담이 나의 구매액에 대한 회을 느끼게 한다.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없는 1:1 고객상담은 알라딘의 적임이 확실하다. 껍데기는 가라. 나는 진짜 서비스를 원한다.

   알라딘은 오류와 오류가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였다. 그런데 그걸 고친답시고 아주 공장 이전을 했는데, 옮겨가는 과정에서 우습게도 '오류'라는 이름의 티끌을 잔뜩 끼워들여버렸다. 그것을 청소한다고 애를 쓰고는 있으나 티끌도 태산이 된다고, 워낙 자잘한 게 많다보니 아주 깨끗이 치워버리는 게 힘든 모양이다. 공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맞은 오류티끌 세례가 바로 대란(大亂)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여파로 진통을 겪고 있다. 한자를 괜히 大亂이라 쓰는 게 아니다. 알라딘이 겪는 그 진통때문에 나는 아직도 기분이 나쁘다. 이 수습기간이 끝나기는 할까.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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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룸 2004-11-22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자, 일단 진정하시고, 김치만두 식히시어요...^^ (ㅋㅋㅋ저도 알라딘때문에 혼자 괜히 광분했던 주제에 남들보고는 무조건 진정하라고함^^;;;;;;;) 근데 플래티넘고객한테 진짜 너무하네요=_= 심지어 은행같은 서비스 구린 동네에서도 최우수고객은 VIP룸에서 기다리지도않고 일처리 하는데 말입니다...쯧

가을산 2004-11-22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명란님아, 쫌만 참아봐요~~!

매너님도 얼마전에 똑같은 답장 받고 한번 뒤집어지셨죠! ^^

정말 저 멘트는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오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요즘 발밑에 꼬인 실타래들은 잘 헤쳐나아가고 있나요?

明卵 2004-11-23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풀님, ㅎㅎ 누구나 자기가 똑같은 상황이라면 열낼 일일 때도 다른 사람에게는 '진정해'라고 말하는 거 아닐까요. 김치만두는요, 사실 김치호빵이라고 쓰려고 했는데 1. 김치 호빵을 먹어본 적이 없다. 2. 사실 본 적도 없다. 3. 그러고보니 있는지 없는지도 확실치 않다. 그래서 김치만두로 쓴 거랍니다^^;

훗.. 1:1 고객상담을 담당하는 직원은 '컴퓨터'인데요 뭐^^(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저런 조두(鳥頭)같은 날리는 걸 보고 단박에 알아차렸죠.) 고객이고 뭐고 눈에 보이겠어요?



가을산님, 후.. 매너님이 그러셨군요. 누구라도 저따위 답장에는 뒤집어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쵸? ^^ 알라딘의 적이예요.

발밑에 꼬인 실타래(or 빨래더미)는 천천히 풀고 있어요. 요즘 보고있는 외화시리즈, Six Feet Under에 더 이상 깊이 빠지지만 않으면(하루에 한 편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다 헤치우는 것, 성공할 것 같아요^^

mannerist 2004-11-26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저도 그 사태에서 두 번 광분했습니다. 첫번째가 사과 공지랍시고 띄워놓은 데다 '일부 기능'운운했을때랑, 그 한줄짜리 1:1답변 보구 말이죠. 그나저나, 겨울방학이 많이 길죠? 보람있게 보내세요. =)


넋두리_그나저나 플래티넘 회원이신데 헉_그거 유지하자면 매너 한달 생활비 1/2 -1/3을 때려박아야 하는데. 좋으시겠어요. 흑... 불우한 청소년 시절 생활이. ㅜㅡ


2004-11-26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明卵 2004-11-2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님, 제가 문의한 사항, 늦긴 했지만 지금은 처리되었더군요. 하지만 1:1 고객상담의 한 줄 답변은 정말 성의도 영양가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머리꼭지를 돌게 하기에 딱 좋아요. 그렇죠?

그런데 겨울방학이 많이..길..까요?ㅜㅜ 지금도 수업 제대로 하고 있고, 1월이나 돼야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걸요. 게다가 고등학교 공부도 해야 하니까, 그다지 길게 느껴지진 않네요 ^^ 보람있게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훗... 그리고 플래티넘 회원은 말이죠, 학교 교재를 제 아이디로 주문한 게 크게 일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온 가족 책을 전부 제 아이디로 주문하기도 하고요. 또, 최근에 문제집을 좀 많이 샀거든요. 적립금 3% 더 쌓이니 좋더군요ㅎㅎ (누구 책을 사든 적립금은 고스란히 제 몫이니까요!)



귓속말님, 그러셨군요. 중국어라... 저는 중국어에 재미가 정말 안 붙어서, 제2외국어(사실 저한테는 제3외국어지만)는 불어를 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치고사라니, 어떻게 보셨는지요? 저희 학교에서 배치고사를 치긴 하지만 2월에 한 번 있더군요. 그나저나, 저도 그런 등수를 받으면 어쩌죠ㅠㅠ 160명 중 130등 이런 식으로. 누군가는 그런 등수를 받아야 하겠죠. 아, 정말 미친듯이 공부해야겠습니다. 아니, 설렁설렁이죠ㅎㅎ

明卵 2004-12-04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다른 혜택은 어차피 있지도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