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고 내 자신이 싫다!라고 부르짖을 때가 많다지만 역시 나만한 건 없다. 내가 없으면 그 어떤 것도 나에게는 의미가 없으니까, 사랑해줘야지.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도 내가 필요하다. (물론 이런 깜찍샬랄라스런 이유는 나랑 별 상관없다만 한번 적어봤다.) 사진은 7살 때 모습. 보라색 스타킹이 처음 본 사람으로 하게끔 나를 잊을 수 없게 만든다.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적격인 코디도 코디지만, 이런 패션은 아무나 소화하는 게 아니다. 역시 나는 뛰어난 옷걸이였다.
위의 사진과 일종의 시리즈로 같은 날 찍었으니 두번째 사진 속의 나도 당연히 7살이다. 내가 뛰어난 옷걸이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모델이기도 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저 고난도의 포즈와 앙증맞게 다물어진 입술하며 탁월한 시선처리, 각도의 감각적인 선택을 보라!
아. 그리고, 스캔을 좀 삐꾸로 해서 그렇지 저 옷 상당히 럭셔리하다.

살포시 올린 손과 약간 기울여 준 얼굴에서 어릴 적 보인 모델의 자질을 엿볼 수 있기는 하나,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이젠 코디도 옛날같지 못하고 얼굴은 내놓기가 슬프다. 그런데 저 팔이 왜 저따구가 됐는지는 나 스스로도 모르겠다. 내 팔이 많이 굵긴 한데 저정도는 아니거든. 특히 손목 부분은 우람하신 팔뚝님과 안 어울리게 굉장히 갸냘파서 손목만 내놓으면 팔 두께를 완전 착각하게 할 수 있을 정돈데, 저 시기에 잠시 본분-나를 좀 더 가느다랗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을 잊었던가보다.
최근에 찍은 내 사진들은 디카 속에 잠자고 있는데 연결해서 끄집어내기가 심히 귀찮은 관계로 언젠가 방명록에 올린 적 있었던 사진을 가지고 와 본다. 요즘 내가 예쁘다는 소리를 들은 곳은 오로지 두군데, 눈동자와 입술이다. 눈동자는 한명 뿐이지만 입술은 꽤 많은 이들에게서 들은 것 같다. 우리 반 반장양은 1학년 때도 우리 반이었는데, 매년 내 입술이 마치 만화에나 나오는 것 같다면서 가져가고 싶다고 말한다. (엄한 뜻은 아니다) 사진으로 보면 별로 예쁜 입술같지는 않으나 때때로 스스로가 '입술은 예쁘네.'하고 생각하도록 하는 걸 봐서 원판이 더 나은 모양. 아. 내 외모에 대한 평이 하나 더 있다. 아까 말한 이쁜이 반장양(빈말로 이쁜이가 아니라 얘는 예쁘장하게 생겼다. 반장 뽑혔을 때 선생님이 미모로 우리 반을 평정할 것이랬다.)은 재작년에 나보고 '아저씨같다'는 엄청난 발언을 했다. 충격. 그런데 작년에는 뭐랬는 줄 아는가? '할아버지같애'.............그래, 시간이 흘렀다 이거지. 늙수그리한 게 변삘만 흘러서 미안하게 됐수다ㅜㅜ 이쁜이라 뭐라지도 못하고. 호. 사실 관리를 안 하니 애착도 안 생기고, 이런 말도 신경은 안 쓰는데 이거 쓰다보니 갑자기 생각나서 적어봤다.

언젠가 괜찮다면 빈이를 서재로 초대하려 했건만, 불가능하게 됐다. 내가 빈이의 모습을 올려버리다니! 모자이크처리를 해야 했을까? 호주갔을 때 사진이다. 이때 모습 하나 올리려고 사진 디벼보다가 죽을 뻔 했다. 이놈의 사진들은 기억을 생생하게 부활시키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함부로 보면 안 된다. 이젠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미지수이며, 그리워서 향수병 걸릴 지경인 타국땅에서 찍은 사진은 더더욱. 대체 이 나라의 무엇이 나를 이렇게 끌어들이는가? 고작 한달 있었을 뿐인데? 모르겠다. 저 앞에서 나를 고민하게 만든 장본인인 빈이, 그러니까 서빈이는 홈스테이 파트너였다. 한 살 어린데, 책 많이 읽고 글도 잘 쓰며 여러모로 나랑 닮은 점이 많다. 물론 다른 점도. 얘 이야기를 하려면 끝이 없으니 이쯤에서 접고, 저 시기의 나에 대해 설명하자면 우선 상당히 살이 쪘었다. 살면서 가장 뚱뚱했던 시기에 호주에 갔었다. 호주에서 더 쪘냐고? 아니. 아주 약간 슬림해져서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시 비만 클리닉에 들어가야만 했다.) 사진은 2월 7일에 찍은 거니까, 집에 돌아갈 날이 가까워질 때였구나. 그렇다면 두꺼운 수학 문제집을 들고다니며 도서관에서 풀어제끼고 있었겠다. 한달동안 한권 다 풀겠다고 약속했는데 손도 안 대서 마지막 몇 일간은 무척 고생했었으니. 결과를 밝히자면 다 못 풀었다. 초콜릿 가게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Darrell Lea던가? 아무튼 비슷한 이름의 가게 초콜릿과 밀키 바를 빈이와 즐겨먹었다.
얼라리. 처음에는 사진만 몇 개 올리고 끝낼 생각이었는데 주절주절 많이 적은 것 같구만.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계속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