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콜린스
댄 포겔맨 감독, 아네트 베닝 외 출연 / 다모아엔터테인먼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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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예상과 같다. 하지만 예상대로 흘러간다는 것과, 예상되는 재미와 감동을 준다는 것은 다른 얘기다. 알 파치노와 아네트 베닝의 연기는 적절하게 과장되거나 단정하다. 관계를 어그러뜨리거나 또는 담금질하는 몇몇 중요한 순간에 연출은 소란보다 여백을 택한다. 사람들의 행동은 때때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지만, 그것은 개연성의 부족보다 존 레넌의 음악처럼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주인공의 직업이 뮤지션이라는 점과 별개로, 존 레넌의 음악을 제목과 함께 곳곳에 삽입해 언뜻 음악 영화의 느낌을 준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을 채우는 것이 대니의 신곡이 아니라 부자간 대화인 것처럼 음악보다는 삶에 집중하는 영화다. 이것은 관객의 기대와 관점에 따라 강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인생은 때로, 심각한 것을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치환함으로써 비로소 흘러간다. 달을 봐야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면 안 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이미 잘 알고 있는 달이라면 때로 손가락의 아름다움에 빠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게다가 빠져서 바라보다 보면 손가락의 방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리라. 그러고 보니 앞으로 당분간 ‘달’은 의도하지 않은 의미를 담게 되겠구나...

 

(*IPTV로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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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순간은 대체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디로 향하든 출발지는 기준이 된다. 앞으로 몇 년, 아니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더욱 기쁠 수도 있을 것이고, 실망할 수도 있을 터다. 나라는 훨씬 나라다워 질 것이고, 정의와 공정을 위한 오랜 숙원들이 해소될 가능성도 높지만, 해법이 나올 수 없는 지정학적 과제들과 세계적인 특히 중국의 경기침체 속에서 우리의 경제적 일상이 얼마나 나아질지는 알 수 없다. 지옥에 비견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양질의 일자리가 늘고 최저임금이 오르는 것은 당위적인 목표에 가깝지만, 그러한 개혁은 그것 자체가 전부가 아닌 올바른 전체의 부분이어야 한다.

 

아마도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청렴과 결백에 대한 완전한 수준의 기대를 받으며 시작하는 대통령을 갖게 되었다. 때로는 우리의 신뢰가 맹신이 아닐까 의심도 들지만, 지나온 삶이 표정을 만들고, 그 표정이 사람을 설명한다는 옛말은 내게는 경험적으로 유효하다. 자신의 청춘을 온전히 약자에 바치고, 자신의 치아 10개를 국가에(혹은 동지에) 바친 사람은 드물다. 부모가 아이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고, 아이는 부모의 가난이 자신의 행복에 결정적인 장애가 아니라고 느끼게 된다면, 어쩌면 새로운 지도자의 책무는 그것으로 다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은 믿고 응원할 필요가 있다. 이미 던져놓은 약속의 절반 정도는 지키거나, 그럭저럭 올바른 방향을 향해서 간다면, 일부 흠이 보이더라도 계속 믿고 응원할 필요가 있다. 비판과 견제는 유익하나 분열과 오해는 소모적이다. 필요한 것은 비판을 통한 덧셈의 정치이지, 증오를 표출하는 뺄셈의 정치가 아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세상에는 어디나 부패와 불행이 있다. 아마도 우리가 그에게 보고 싶은 것은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 대한 극도의 엄정함과, 국민에 대한 진정한 따스함이다. 그것이면 우리는 충분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가 보여주는 이미지가, 영원히 바뀌지 않을 이미지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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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서커스 베루프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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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흔한 사회파 추리소설의 느낌으로 시작해 다소 각도가 밋밋하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엄청난 속도로 한가운데 스트라이크를 당해버렸다. 추리소설의 범주에 포함돼 있지만 실상 특정 장르의 소설로 한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요소가 깊이 있게 담겨져 있다.

 

드문드문 일본의 추리소설을 볼 때마다 AB 가운데 정답을 맞혀보라는 문제를 낸 척 하고는, 막상 끝나보면 라는 조사가 틀렸던 것이라고 털어놓는 수법에 감탄한 적이 많았는데, ‘왕과 서커스는 그런 부분에서 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저널리즘 스쿨에서 신입생 대상 수업의 부교재로 활용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같은 맥락에서 저널리즘의 이슈들에 전혀 관심이 없는 독자들도 재밌게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단편집 야경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나에게는, 요네자와 호노부는 장편의 작가인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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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쇄를 찍자 1
마츠다 나오코 지음, 주원일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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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까지 보고 쓴다. 이런 작품을 볼 때마다 일본의 작가들이 '전문직'을 어느 선까지 소재로 관찰하고 있는지 경탄하게 된다. 우리 웹툰에서 포털의 만화 편집자(정확한 업계 용어는 모르겠다)를 하나의 캐릭터화해서 등장시키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하나의 만화책이 작가의 손에서 시작되어 독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출판사 편집부 직원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이처럼 상세히 다룬 작품은 처음이었다. 물론 이것은 일본의 출판 산업이 우리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규모라는 점도 관계가 있을 터다(물론 작품에서는 버블과 버블 이후 출판산업의 변화 양상도 보여준다) 말하자면 미우라 시온의 '배를 엮다'의 만화 버전이라고 부를 만하다(좋은 의미로)

 

작품을 선택한 이유의 8할은 제목 때문이었다. 중쇄를 찍자!라. 얼마나 솔직하고, 얼마나 원초적인 제목인가. '돈을 벌자!'라든가, '작가를 키우자!'라든가. '잡지를 팔자!'라든가, 결국 이런 표현들과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디테일을 살린 적절한 제목은 나라도 구한다...(?) 그 디테일을 느낀 독자들이라면, 이 만화를 싫어할 리가 없다.

 

다만 - 어차피 평가에는 취향이 반영되지만 이 부분은 더욱 완전한 개인의 취향의 영역인데 - 그림체와 관련해, 구매 당시에는 책 표지에 있는 카툰식의 그림을 예상했는데 페이지를 펼치니 옛 순정만화 느낌의 복잡한 그림체여서 다소 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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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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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작가와 학자의 오래된 과제다. 정유정의 시도는 그것 자체로는 대단하며 뇌과학과 도덕의 상관관계에 대한 학계의 연구를 성실히 공부한 노력도 보인다. '7년의 밤'이나 '28'을 통해서 이미 증명한 가독성과 장르적 이야기에 무게를 더하는 특유의 문체는 여전하다.


하지만 정유정이 죄악을 다루면서 내면에만 침잠할 때, 그것은 현실을 반영하기보다는 현실에서 유리된다. 이야기는 접착력를 잃고 개별적으로 부유하며, 그나마 광장도 아닌 좁은 주택 안에서 방황한다. 뇌의 결함과 가족의 억압이 연쇄살인마를 낳있다는 등식은 아무런 멋도 의미도 담지 못한다.  


정유정은 정말 이런 식으로 범죄가 탄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의 시도는 훌륭했으나 결과물은 정성스럽게 만든 편의점 도시락이 됐다. 결과적으로 이미 도스토예프스키가 200년 전 쯤 '죄와 벌'을 통해 성공한 도전을 신춘문예 스타일로 반복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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