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는 사람, 매천의 눈으로 본 과거,
그리고 그의 시선으로 현대를 보기.
  • 매천야록황현 지음, 허경진 옮김서해문집 2006-10-20장바구니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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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미래 - 인간은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가
미치오 가쿠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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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물리학자이자 과학엔터테이너인 미치오 카쿠 뉴욕시립대 교수가 인간의 마음을 물리학적으로 분석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의식, 뇌, 심리, 꿈, 기억과 같은 분야의 ‘정복’에 과학이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설명해준다. ‘은하철도999’에서의 로봇에 인간의 정신을 옮기는 것이나 ‘터미네이터’에서의 인류를 멸망케 할 수 있는 인공지능, ‘인셉션’에서의 꿈의 공유와 같은 기술적 설정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우리의 과학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다양한 연구 사례와 과학 이론을 통해 보여준다.

 

책이 512쪽이나 되는 것은 분명히 큰 장벽이다. 더구나 양장본이어서인지 다른 500페이지 책보다 훨씬 두껍게 느껴진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이해하겠다는 욕심을 갖기보다 어려운 개념들은 흘려보내며 저자의 쉬운 설명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이런 세계가 정말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내가 선천적 과학/수학 이해 결핍증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밌게(인터스텔라를 관람한 후 상대성이론을 이해하려고 관련 서적들을 잡았다가 절망한 기억을 고려하면 더욱) 이 책을 읽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얼마간 시간만 낼 수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시작하는 것이 큰 문제는 없으리라 본다.

 

결국 주인공은 뇌다. 뇌를 스캔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해, 뇌를 역설계하는 것으로 책은 문을 닫는다. 인간의 움직임이나 꿈, 생각처럼 외적으로 드러나는(쉽게 드러낼 수 있는) 부분과 그것들과 연계되는 눈에 바로 보이지 않는 뇌의 반응의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면, 전자를 조작해 후자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후자를 조작해 전자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경로를 반복해 걷는다.

 

물론 텔레파시나 염력, 똑똑한 알약의 이야기에 도달하면 이것이 과학인지 공상과학인지 약간 애매한 느낌이 들긴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경우에도 과학적 원리와 가능성의 선에서 설명하며 ‘교양과학책’으로서의 어려운 줄타기에 실패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독자는 과학이 이 정도나 발전했다니!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알파고의 시대에 누구나 갖고 있는 “로봇이 거짓말을 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여전히 답을 구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일종의 ‘안심’도 할 수 있다.

 

SF 분야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 지망생이 있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 공을 들여 한번만 읽어도 작품 설정에 탄탄한 이론적 토대를 더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나는 문득 폰 노이만이 이야기했다는(그는 사실 욕이 나올 정도로 천재다) “수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단지 그것에 익숙해질 수 있을 뿐이다”라는 문장이 자꾸 생각나며 위로와 절망을 동시에 주는 것일까...

    

-2018년 100권 읽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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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단 에쎄이
이상.현진건 외 43인 지음, 방민호 엮음 / 책읽는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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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로 192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사이에 쓰인 45명 문인들의 산문을 방민호 교수가 모았다. 김유정, 박태원, 이상처럼 너무나 유명한 작가들부터 계용묵, 박팔양, 오장환처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들의 글이 담겼다. 누군가 오장환을 누가 모르나?!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적이라는 의미이고, 더 덜 알려진 인물들의 글도 있다.

 

출판 디자인은 실상 굉장히 중요한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책 선택에 있어서 그다지 주목하지 않아왔던 것인데 이 책은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디자인이 주는 감성에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오래된 종이 느낌의 표지에, 휴먼옛체 느낌의 글꼴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디자인이 글이 전하는 시대의 공기와 제법 잘 어울린다.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도 상당히 신경을 쓴 것 같다.(다만 뭔가 표지의 잉크가 손에 묻어날 것만 같은 느낌은 책을 손에 쥘 때마다 나를 조금 불안하게 만든다)

 

이미 1930년대 후반이면 중일전쟁에 접어들며 일본이 전쟁국가로 돌진해 나가던 시기다. 그 시기에 정식 발간되던 잡지에 쓰인 글들인 만큼 대부분의 글들에서는 정치색이 강하게 묻어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소소한 생활의 이야기나 일화, 동료 문인이나 글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김남천은 “냉면이라는 말에 평양이 붙어서 평양냉면이라며 비로소 어울리는 격에 맞는 말이 되듯 냉면은 평양에 있어 대표적인 음식이다”라고 말하고, 이태준은 “좋은 벽은 얼마나 생활이, 인생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일까!”라고 외친다. 종이에 손을 베이는 ‘사건’으로 글쓰기의 무거움을 느낀 계용묵의 일화나 억세고 귀찮아서 모아서 일자로 자른다는 박태원의 헤어스타일의 비밀을 알게 되면 가장 감수성이 뛰어났던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그 시대를 어떻게 느끼고 버텨나갔는지 간접적으로 느껴진다. 여기에서 간접적이라 함은, 이 책은 아까 말했듯 ‘비분강개’보다는 ‘조곤조곤’의 감성에 훨씬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은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를 혈서를 썼다’는 김기림의 글이나 ‘조선의 해방은 아무래도 행운이오 감이 저절로 입에 떨어진 격이었다’라는 채만식의 글을 마주하면 마음이 뭉클해지거나 심장이 뜨거워져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보통 이 시기의 재연은 정치적 팸플릿이나 윤색된 시나리오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의 있는 그대로의 기록은 그것 자체로 시대의 공기를 효과적으로 전하는 귀한 매개체다.(그들이 독립투사든 친일파든 그러하다)

 

책을 읽으며 얻은 더 큰 소득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김유정과 김소월 등에 대해 내가 실제로는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다. 물론 감옥에서 병사한 작가들에 대해 존경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나, 가난이나 우울(등의 병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사연도 충분히 중요하다. 그러니까 그들의 죽음. 그들이 죽음으로 이른 과정이 이 책에서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보다보면 당시 우리의 감성 세계의 ‘영웅’들이 어떻게 찬찬히 무너져내려갔는지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된다.(탐정 소설을 번역해 비용을 마련, 닭과 구렁이를 고아먹고 싶었던 유정의 경우처럼) 그리고 이는 분명, 우리의 역사가 내포했던 고통을 중요한 한 단면을 이룬다.(김소월의 후손들의 사례에서 보듯 그것은 현재와도 이어지는 부분이다)

 

-2018년 100권 읽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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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100만부 돌파 기념 양장 특별판)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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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책의 초반 저자가 포착한 몇몇 주변의 풍경은 상당히 인상적이지만, 그것이 전부이며, 그나마 중반 이후에는 '관찰력'도 유지되지 않는다. 아마 글감으로 메모해둔 몇 개의 인상적 에피소드를 초반에 몰아 넣었기 때문이리라. 이 책의 성공적인 부분은 딱 두가지인데, '제목'과 '표지 색'이다. 저자가 출판사를 운영한다는데, 상품을 만드는 능력은 인정할 수 있겠다. 


문장은 줄이기가 더욱 힘든 법이며, 의도적 여백은 문자가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상을 담아야만 한다. 종이 낭비가 심하다. 분노에는 사실 악플보다 무플이 효과적인데, 내가 왜 이런 리뷰를 쓰고 있는지 한심스럽지만, 거금을 들인 정당한 구매자로서 잠깐 시간을 들여 저자 흉내를 내본다.


'xxx'라는 영화를 봤다. 새우가 주인공인 영화다. 과연 넓은 바닷속 새우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고보니 새우깡은 참 맛있다. 문득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새우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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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콜린스
댄 포겔맨 감독, 아네트 베닝 외 출연 / 다모아엔터테인먼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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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예상과 같다. 하지만 예상대로 흘러간다는 것과, 예상되는 재미와 감동을 준다는 것은 다른 얘기다. 알 파치노와 아네트 베닝의 연기는 적절하게 과장되거나 단정하다. 관계를 어그러뜨리거나 또는 담금질하는 몇몇 중요한 순간에 연출은 소란보다 여백을 택한다. 사람들의 행동은 때때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지만, 그것은 개연성의 부족보다 존 레넌의 음악처럼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주인공의 직업이 뮤지션이라는 점과 별개로, 존 레넌의 음악을 제목과 함께 곳곳에 삽입해 언뜻 음악 영화의 느낌을 준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을 채우는 것이 대니의 신곡이 아니라 부자간 대화인 것처럼 음악보다는 삶에 집중하는 영화다. 이것은 관객의 기대와 관점에 따라 강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인생은 때로, 심각한 것을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치환함으로써 비로소 흘러간다. 달을 봐야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면 안 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이미 잘 알고 있는 달이라면 때로 손가락의 아름다움에 빠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게다가 빠져서 바라보다 보면 손가락의 방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리라. 그러고 보니 앞으로 당분간 ‘달’은 의도하지 않은 의미를 담게 되겠구나...

 

(*IPTV로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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