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송승훈선생님의 강의록(페이퍼, 배우며 가르치며를 참고하면 된다.)의을 읽고, 나도 그냥 이렇게 지낼 수만은 없겠다 싶어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보통 때는 마음만 먹고 마는 일이 부지기수지만,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당장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했다.

   우선 아이들에게 독서교환일기의 취지를 설명하고, 희망하는 학생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와서 신청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너무 많이 몰려오면 어쩌나 싶어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날 바로 오라고 하면, 즉흥적으로 결정해서 뒷감당을 못할 것 같아서 잘 생각해 보고, 오늘(목요일)까지 신청하라고 했다.

   많이 몰려올 것 같다는 나의 불길한 첫 예감은 점점 아무도 안 오는 거 아냐? 하는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오늘까지 마감하기로 했는데, 지금껏 신청한 학생은 딱 2명! 내가 수업을 들어가는 여덟 개 반 중에서 한 명이 왔고, 보충수업만 들어가는 반에서 얘기했는데, 한 녀석이 더 찾아왔다. 처음 독서교환일기장을 쓰려고 했을 때 한 스무 명 정도만 오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건만, 그 1/10의 학생만 온 셈이다. (적어도 좋지만, 혜택이 소수에게만 돌아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가 처음부터 너무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해서 그렇나? 매달 내가 추천해 주는 세 권 이상의 책을 읽어야 한다. 어쩌면 책값이 좀 들지도 모른다. 독서교환일기장을 쓴다고 해서 주어지는 혜택은 아무 것도 없다. 단, 길게 본다면 이런 것이야 말로 제대로 공부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중간에 그만둘 사람은 아예 하지 마라. 내년 2월까지 쓸 수 있는 사람만 와야 한다고 말했던 게 학교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너무 부담스러웠을까?

   나는 아이들의 자발적인 모습을 볼 때 가장 기분이 좋다. 모두가 망설이고 있을 때, 스스로 나서는 아이들이 예쁘다.(노래도 조례시작,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 다음에 할 사람? 하고 물으면, 손을 번쩍 드는 녀석이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심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어도, '그래도 제 발로 찾아오는 녀석들이 있겠지'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 계획은 처음부터 강제로 쓸 생각도 없었고, 그럴 수도 없는 성격의 '프로젝트'다. 어쩔 수 없지만 이 두 명의 학생들에게 내가 가진 공력을 들여야 할까 보다. 이 두 녀석이라도 끝까지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힘내자, 아자!

  • 독서교환일기장이란

   내가 책을 추천할 때, 그 책을 읽으면서 생각할 거리들을 그 학생의 공책에 적어준다. 그러면, 그 학생은 책을 읽으면서 생각거리를 정리하고 자신의 느낌이나 의견을 덧붙여서 자유롭게 써서 공책을 나에게 주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공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을 보태고, 평가를 써 준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을 정리해 두는 것이다.

    그 다음은 다시 읽을 책을 추천하고 생각거리를 붙여서, 그 공책을 주인에게 건네는 것이다. 이 과정이 열 흘 간격으로 반복되어야 한 달에 세 권의 책을 읽게 된다. 그러면 내년 2월까지는 두 녀석은 서른 권의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공책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독서교환일기장을 쓰려는 이유는, '제대로 된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송승훈선생님의 글 때문이다. 제대로 된 책을 아이들에게 읽히고, 그 책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 일기장을 통해 아이들의 생각을,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을 읽으라고 하면서 사형 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만약에 그 남자 주인공이 사람을 죽였다면 네 생각은 어떻게 달라졌을지?를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책을 읽은 느낌을 물어보는 건 기본이고... 아직 생각이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았으나, 아이들과 같이 시작하면서 차츰 나아지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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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5-11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기고 계시네요. 저도 2~3명 대상으로 해보고 싶어지네요.

느티나무 2006-05-14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다 아주 가끔씩 실천에 옮기지요. 그러면 이런 곳에다 냉큼 '자랑질'을 하구요.ㅎ BRINY님과 같이 하면서 서로 응원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나중에 좀 쓰고 나면 다시 상황을 알려드릴게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