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고사가 끝난 학교는 어딘가 어수선한데다가 갑작스러운 체육대회 예선 때문에 시끌벅적하다. 게다가 오늘은 X -RAY 촬영도 한다고 했더니 우리반 한 녀석이 "와~ 오늘은 공부 안 하는 날이네요!" 이랬다. 오늘 어버이날인데도 조례시간에 그 얘긴 한 마디도 못 했다.
오늘은 좀 예민한 날인가 보다. 수업하러 계단을 올라가는데 나를 빤히 보고도 지나치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속이 팍 상한 일도 있었고,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는 녀석을 깨우다가 약간 반항적인 모습을 보인 녀석과도 한 판 했다. 사실, 이런 일이 있으면 마음도 무척 힘든데, 다행스럽게도 마무리가 잘 된 것 같아서(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다행스럽기는 하다.
우리반 녀석들은 체육대회 하는 날 입을 반 티셔츠를 산다며 나갔다고 오겠다고 한다. 뭘 입을 거냐고 물었더니 꽃무니 티셔츠에 통치마를 입기로 했단다. 나야 뭘 입어도 괜찮다만 솔직히 돈이 좀 아깝다는 생각과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부담이 가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된다. 이런 내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들은 오늘 반티셔츠를 기어코 사러나갈 작정을 했나 보다. (얼굴에 모두들 화색이 돌고 있다.)
소풍 장소도 정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선택한 강서체육공원과 해운대-동백섬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떻게든 일찍 마치고 피시방으로, 시내로 나가려는 녀석들과 그런 녀석들을 붙들고 어떻게든 놀아 보려는 내 마음의 대치 상태가 약간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작년에 소풍 가서 4시까지 놀때는 그렇게 싫다더니만, 이번에 다른 반이 된 녀석들이 그 반에서 끝까지 놀아야 한다고 우긴다나 어쨌다나! 하여튼 남들은 우스울지 몰라도 나는 좀 씁쓸하다.)
그러나 저러나 오늘은 야자감독이다. 처음에 봤을 때는 내가 아니어서 당연히 오늘은 아닌 줄 알고 있었는데 혹시나 싶어서 확인해 보니 오늘 자율학습 감독이다. 어제 장모님을 뵙고, 오늘은 우리 집에 가기로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야자를 마치고 잠시 들러야겠다. 그런데 오늘 녀석들이 무지하게 떠들텐데... 에휴! 힘들겠다. 내가 권해준 책이나 열심히 읽는다면 얼마나 이쁠까? 하는 부질 없는 생각을 해 본다.
자율학습 감독이라는 말이 희한하다는 생각도 이젠 들지 않을 정도로, 모든 일에 둔감한 '그저 그런' 선생이 되어 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