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매일 아침 4시 30분, 우리 집에 신문이 배달된다. 출근하기 위해 문을 열고 나가면 현관문 앞에 지역신문 한 부와 중앙일간지 한 부가 덩그렇게 놓여 있다. 두 신문을 가방에 챙겨들고 직장으로 간다. 직장에도 물론 신문이 있고, 책상 위의 모니터만 켜도 세상의 온갖 정보를 다 알 수 있지만, 직장의 신문은 보기 싫고, 모니터로 읽는 정보는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집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들고 직장에 가는 것이다. 직장에서의 일과는 늘 바빠서 정신이 없지만, 간혹 점심시간에 신문을 펴들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이라도 생길 때면 이 때야 말로 제법 행복하다는 느낌도 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돈을 내고 자신이 보고 싶은 신문을 선택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선택한 신문이  곧 나의 ‘주인’ 행세를 하게 된다. 주인이 된 신문은 ‘당연히’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우리가 ‘세상을 이해해야 하는 방식’을 가르친다.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서 우리가 화를 내야할 때와 박수쳐야 할 때,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할 때와 멈추어야 할 때를 정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신문이라는 ‘괴물’의 지배를 받고 있는 우리는 아직도 자신이 주인인 줄 알고 있다. 그러니까 분노와 박수, 행동과 멈춤이 자신의 주관적 판단의 결과인 줄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신문이 정해준 방식에 따라 사고하고 판단하는 결정하고 행동하는데도 말이다.

  신문이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다 전해 줄 수 없기에 중요한(사실은 ‘중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이 신문이 등장한다. 여기서 결정적인 문제가 생긴다. 바로 ‘누구에게 중요한가?’와 ‘누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가?’의 문제다. 보통 사람의 상식이라면 ‘다수의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모범 답안이 될 테지만,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너무나 모범 답안이기에 신문사의 어느 벽에 아무도 쳐다보지 않은 ‘액자’로 고이 모셔진 글자로 남아 있을 뿐이다. (정파적 입장에 따라 정보를 왜곡하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입장이 수시로 바뀌는 신문사들도 ‘정론직필’이니 ‘불편부당’이라는 액자를 걸어놓고 있다고 들었다.)

  그럼 정답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다. 즉, 우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일은 독자들에게도 중요한 일로 받아들이도록 전달한다. 여기서 ‘우리’는 물론, 신문사의 인칭대명사일 것이다. (아니, 조금 더 노골적-본질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신문사의 사주가 아닐까 싶다.)그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본다면, 2000년대 초반에 언론사 세무조사에서 보인 신문사들의 기형적인 편집 형태를 떠오른다. 세금 탈루의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도 뻔뻔스럽게 지면(紙面)을 도배해 가면서 ‘언론탄압’을 부르대던 생경스러운 모습에 쓴웃음이 났다.

  그러나, 형식적으로는 신문사의 편집국이 기자가 쓴 기사를 선택하고 크기와 배치를 결정하는 곳인데, 신문사의 어느 기자의 기사라도 이 편집국의 ‘심의’와 ‘검열’(?)을 거쳐야 기사가 실리는지의 여부와 기사의 크기와 배치가 결정된다. 당연히 신문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사는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고 신문사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기사는 빠지거나 축소된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건이 신문사의 유/불리를 기준으로만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비슷한 편집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에는 반드시 신문사의 시각에 따라서 기사의 내용과 배치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신문사의 사정을 잘 모르면 모든 신문이 다 비슷하다고 여기게 된다. 자세히 보면 신문의 논리적 어조에 아주 중요한 차이가 나는데도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그게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무서움이 있다. 우리가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우리가 신문을 읽는 행위는 ‘여론’으로 포장되고, 거기에 따라 사회적 의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신문 하나 읽는 것에도 세심한 주의와 선택이 필요하다. 이렇게 신문을 읽을 때 주의를 기울이는 독자를 현명한 독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현명한 독자가 되어 신문의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라고 권유하고 있는데, 독자가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우리가 읽는 신문에 기사가 실리게 되기까지의 기본적인 과정을 이해하고, 신문 기사가 특정한 기준에 의해서 ‘선택’된 정보임을 파악하고, 신문 기사를 읽을 때 자신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비판적인 수용이 능력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우리가 매일 읽는 신문 기사가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상 소식을 신문에서 찾아 볼 수 없을 때나, 갑자기 신문이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이 옳다는 근거를 오직 신문에 나왔다는 걸로만 주장하는 사람을 볼 때나, 청소년들에게 신문이 객관적인 진실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줄 때 꼭 필요하고도 기본적인 설명을 담고 있는 책이다.

 

  아울러 언제나 한결같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해 오고 있는 ‘손석춘’님께 존경하는 마음과 아울러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이 보잘 것 없는 ‘리뷰’를 쓰면서 다시 한 번 현명한 신문구독자가 되리라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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