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언어 영역 공부와 책읽기


송승훈선생님 (광동고)


   수능 언어 영역에서는 교과서에서 글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정해진 지식을 외우는 정도를 살피는 시험이 아니라,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가늠하는 시험이어서 그렇다. 종종 국어 공부를 한다면서 참고서와 문제집에 나온 단원 요약을 열심히 외우는 학생을 보는데, 잘못하는 것이다. 그런 공부는 한 인간으로 사는 데도 도움이 안 되고, 입시에도 도움이 안 된다. 그보다는 실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공부가 필요하다.

   중학교 때는 국어교과서가 한 종류이지만, 고등학교는 여러 종류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국민공통교육과정이라고 해서 국어를 똑같이 한 교과서로 배우지만 고등학교 2-3학년이 되면 국어생활, 작문, 독서, 문학, 화법, 문법, 이렇게 여섯 가지나 된다. 과목마다 교과서가 한 권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권씩 있어서, 이 가운데서 선택해서 배운다. 문학 과목은 교과서가 열여덟 종류나 되어서, 가까운 진역에 있는 다른 학교에서 같은 교과서를 쓰는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학교마다 쓰는 교과서가 다르기에 교과서에서 수능 문제를 내려고 하도 낼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이기에, 입시에 성공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더구나 수능 언어 영역 문제는 지금 60문제가 나오는데, 보통의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 가운데 20% 정도나 정해진 시간 안에 그 문제를 다 풀까, 대다수는 문제를 다 풀지도 못하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교과서 바깥에서 처음 보는 글이 나오고, 외워서 푸는 문제가 아니라 능력을 측정하는 문제이기에 짧은 시간에 문제집을 여러 권 푼다고 점수가 오르지 않는다. 여기에 대한 준비로는, 일찍부터 책을 많이 읽어두는 수밖에 없기에, 책읽기가 강조된다.

   그러나 아무런 책이나 무조건 읽는다고  해서 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책을 제대로 읽어야 도움이 된다. 이때 제대로 된 책이 무엇이라고 여기는가에 따라 공부는 성취가 크게 달라진다. 대표적인 실패는 중학교 때부터 일제 시대 단편소설을 읽히는 시도이다.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말은 좋지만, 그 책들이 그 나이 때의 학생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서 권해야 한다. 학생들이 무슨 이야기인지를 알아듣지 못하는데, 이름난 책을 읽었으니까 아무래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태도는 무책임하다.

   그런 책읽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어떤 성과를 얻었는지는 몇 마디 물어보면 금방 확인된다. ‘메밀꽃 필 무렵’을 읽은 학생에게 ‘그 소설을 읽고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면 좋겠니?’하고 물어보자. 어떤 대답이든지, 우리가 들어서 말이 되는 말이면 그 책읽기는 온전히 되었다고 할 테다. 그러나 적지 않은 학생들은 ‘메밀꽃 필 무렵’과 같은 작품에 대해 참고서에서 외운 주제를, 그것도 ‘인간 본연의 속성으로서 애정’과 같은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대답한다. 이러면 그 책읽기는 별로 얻는 게 없다고 보면 된다. 어떤 책을 읽고 나서 자기 언어로 그 의미를 정리하지 못하면, 그 책읽기는 수박 껍질만 훑은 것이다.


자기 주변의 삶을 이해하는 책을 읽자


   자신의 책읽기를 돌아보자. 혹시 <중학생이 꼭 읽어야 할―><고등학생이 꼭 읽어야 할->비슷한 이름으로 된 책을 사다놓지 않았는가? 그런 책은 입시에 대한 불안감으로 사지만, 사고 나면 막상 읽는 데 자체에만 의미를 두지, 읽으면서 사색하는 일은 잘 되지가 않는다. 시험에 나올 만한 글을 뽑아두었다는 선전을 보고 그 책을 사서 읽기에, 시험이라는 말에 눌려서, 인생이나 세상에 대해 도무지 생각이 펼쳐지지가 않는다. 게다가 대체로 그 책들은 학생들이 공감하며 생각거리를 얻어 생각을 키울 수 있는 글을 성의껏 뽑아놓았다기보다, 이름난 작품을 대충 모아둔 책들이어서 감동이 있기 어렵다.

   그런 입시용 책을 사서 읽고 자신이 감동을 느꼈다면 그래도 다행이다. 그런 사람은 5% 안쪽의 드문 경우에 속하는데, 자신이 하던 방식대로 계속 해도 좋다. 그러나 그런 책에서 책읽기의 맛을 느끼지 못하고,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고달픈 심정만 느낀 다른 95%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책에서 벗어나자. 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 가면 이때까지 나온 수능 문제를 공짜로 내려 받을 수 있으니까 살펴보라. 그런 책들에서 실제 수능 글이 몇 편이나 나왔는가. 살펴보고 나면 무시해도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떤 글을 읽으며 생각이 흔들리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책은 읽으나마나이다. 줄거리만 기억하는 책읽기, 읽었다는 확인만 남은 책읽기, 단편적 정보만 외운 독서인증제용 책읽기는 아주 작게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나는 여러분들에게 생각이 움직이는 책을 먼저 찾아 읽기를 권한다. 그런 책은 대체로 자기 주변의 삶에 대해 새롭게 느끼게 하는 책인 경우가 많다. 이게 입시에 나오니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맨 처음 시작할 때는 힘을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책읽기를 지속하는 힘이 되기는 어렵다. 자기 삶의 주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들을 찾아 읽으면, 자기 주변과 책 내용을 견주면서 생각을 하게 되고, 그렇게 생각을 해야 머리가 좋아지고 능력이 높아져서 생각이 깊어지고 입시에도 성공한다.

   눈이 뜨이고 깨닫는 느낌이 있는 책읽기라야 재미가 붙는다. 이 때 재미는, 말초신경을 자극한다거나 억지스러운 연출로 황당한 웃음을 자아낸다거나 현실에서 억압된 욕망을 분출하는 데서 얻어지는 매혹이 아니라, 우리네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데서 얻어지는 깨달음의 즐거움이다. 책 대여점에서 주로 학생들이 빌리는 영웅 이야기나 연애 이야기를 담은 오락용 책에서 얻는 즐거움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 주고 달래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책읽기는 우리를 지치게 하는 세상이 왜 그런 모습인지를 알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삶의 문제를 풀어가도록 우리 자신을 튼튼하고 지혜롭게 하지 못한다. 그것은 설탕과 같아서, 적당히 쓰면 삶이 편안해지지만, 지나치면 환상에 취해서 삶이 무기력해진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게 하는, 그래서 우리의 머리를 저절로 쓰게 하는 책을 몇 권 적는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와서 괴롭힘 당하는 이야기를 담은 <말해요, 찬드라>, 동성애자와 성전환자와 같은 소수자의 사연을 담은 <다르게 사는 사람들>, 방황하며 자기 길을 찾는 청소년들이 나오는 <못난 것도 힘이 된다.>, 가난한 처지에서 여러 가지 사고를 치며 고민하는 아이가 나오는 <푸른 사다리>, 차별에 대한 단편만화를 모은 <십시일반>, 지난날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 애쓴 이들의 오늘날 모습을 담은 <내일로 희망을 나르는 사람들>, 사형수의 이야기를 감동 깊게 담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찾아보기 바란다.

   책을 한 번 읽고 다 끝났다며 책을 저편으로 물리는 사람은 어리석다. 다 읽었다면 그 책을 만지작거리며 책 내용과 세상을 연관시켜서 생각해 보아라. 그리고 이 책읽기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사색하라. 글을 읽기만 하는 책읽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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