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니 사실은 어제지. 정말 무지 피곤했나 보다. 학교에 있을 때부터 다리가 무척 아팠다. 그런데도, 부르는 사람은 왜 그렇게 많은지. 하기야 성격 탓도 좀 있긴 하다. 그냥 새로 오신 선생님들이 어쩔 줄 몰라하시는 건 도와드리고 싶다. 1학년부실에도 두 세 번 요청이 와서 내려갔었고, 3층에 있는 내 교무실과 4층에 있는 우리반을 여러 번 들락거렸더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작년엔 1층에 교무실과 교실이 마주 보고 있었다. 그 땐 그게 좋은 줄 몰랐는데...)

   집에 오자마자 아내가 챙겨주는 밥을 먹고 그대로 쓰러졌다. 방학 때 신나게 논 벌로 새학년 준비가 거의 안 되어서 집에 와서도 바빴어야 했으나 아무 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이 그냥 자버렸다. 문자메시지 덕분에(?) 잠을 깬 게 11시쯤이었다. 일어나서 정신을 좀 차리느라 시간을 좀 보냈고, 당장의 수업 준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을 서가에서 몇 권 골랐다. (낼 챙겨갈 것들이다.)

   올해 내가 맡은 과목은 '문학'이다. 전혀 '문학적'이지 않은 교사와 함께 문학을 배울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고백하건데, 나는 문학을 가르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는 거 같다. 설사 있었다고 하더라도 기억도 가물가물한 상태로 어떻게 문학을 가르치나 싶다. '문학'은 '국어'라는 과목이 주는 중압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아직, 내가 '문학; 수업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더 그런가 보다.) 아무튼 올해는 2학년 문학 수업 때문에 고생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입시 고등학교의 현실에서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문학 시간을 통해서 내가 문학 작품을 많이 소개해 주면, 아이들이 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일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자신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작품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나는 해마다 그렇지만 담임 발표를 앞둔 아이들의 표정을 보는 것이 씁쓸하다.그 알듯 말듯한, 속내를 감춘 표정. 안도와 불안이 교차하는 눈빛. 찡그린 것도 아니고 엷은 웃음을 띈 것도 아닌 애매한 웃음. 그 복잡다단한 감정을 전혀 모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표정을 바라봐야 하는 나도 고역이다.

   올해는 2학년 O반 담임이다. 일부러 담임 발표 전까지 교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돌아와 3교시 담임시간. 교실에 들어서니 이제 익숙한 아이들의 눈빛이 읽힌다.(작년에 모두 수업을 함께 한 학생들이다.) 역시나 준비가 덜 되어 아이들에게 해 줄 말이 부족하다. 그 가운데서도 새롭게 출발하자는 부탁과 두 달 동안의 허니문 기간을 갖자는 약속을 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새로운 마음을 먹어야 한다.

   오늘 집에 올 때 같이 온 녀석이 툭 내뱉었다

   "샘도 이제 2학년인 거 같아요"

   "그래? 그렇지! 하하"

   이제 나도 2학년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새 마음으로 새롭게 출발해 보자. 나는 자리를 옮길 때마다 챙기는 게 몇 개 있는데,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은 '처음처럼'이라는 글이 적힌 다포와 '우리들이 꿈꾸는 행복한 학교'라는 포스터이다. 첫마음을 간직하며 가르친다는 것, 어렵지만 지키면서 가야 할 길이다.

   대강의 얼개나마 수업 준비를 했다. 많이 늦어 버렸다. 내일은 아이들과 토론하는 날이다. '살아 있는 한국사교과서2'를 다 읽어 온 아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쏟아낼 지 몹시 궁금하다. 요즘엔 토론이나 모임을 위해서 읽어야 할 책이 많아서 끌려가는 느낌도 살짝 든다. 그래도 뭐, 어디든 좋아서 하는 일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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