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란시사첩 머리말
- 나 해 철
다산 정약용 선생이
시 짓는 친구들과 함께 만든
죽란시사첩이라는 동인지의 머리말을 보면
"모임이 이루어지자 우리는 이렇게 약속하였다
살구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인다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인다
한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인다
가을이 되어 서늘해지면 서지에서 연꽃을
구경하러 한 번 모인다
국화꽃이 피면 한 번 모인다
겨울에 큰 눈이 내리면 한 번 모인다
한 해가 저물 무렵에 화분에 심은 매화가
꽃을 피우면 한 번 모인다
......." 는 말이 있다.
젠장! 시 쓰는 친구들아
다들 잘 있느냐
가까이 살구꽃도 복숭아꽃도 참외밭도 없어서
이렇게 사느냐
매화 보는 대신에 곗돈을 부어서라도
얼굴 보고 목소리 듣자
죽란시사 혀 차는 듯한 소리
늦가을 비 내리는 창밖에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