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우리 모임에서 학급운영을 고민하고 있는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소박한 연수를 했다. 오신 분은 모두 열 한 분이셨는데,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이 너무 고마웠다. 내가 맡은 부분은 그 연수 중 한 꼭지, 신규 교사의 3,4월 나기였는데, 저번에 써 둔 글을 모아서 발표를 했다. 이 글은, 컴퓨터를 뒤져서 나온 글!!

 

3월, 그 멋진 출발선 앞에서!


느티나무


  고등학교 입학식을 앞둔 녀석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아마도 새 학교에 대한 걱정과 기대로 잠은 제대로 못 잤을지도 모르지요? 자기 전에는 내일 벌어질 모든 일들이 궁금했을 겁니다. ‘나는 어느 반이 될 것이며, 내 짝지는 누구일까’를 생각해 보겠지요? 그 생각의 한 쪽 끝에는 ‘우리 담임은 어떤 선생님일까?’하는 것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는 담임선생님이 ‘내 마음을 잘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우리랑 친했으면 좋겠다.’, ‘내가 공부를 잘 할 수 있게 도와줬으면 좋겠다.’ 하기도 했겠지요.

  새 학교에서 새로 담임을 앞둔 한 달 전, 저는 마치 처음으로 담임을 맡게 된 교사처럼 집에서 이런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이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야지, 친절한 교사가 되어야지, 내 꿈이 아이들보다 더 커지지 않도록 해야지, 우리 반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조금이라도 온기가 있고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어야지……. 한 번 생각을 하자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제일 먼저 아이들의 이름을 빨리 외워야지, 개별 상담도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속내를 들을 수 있도록 해야지, 모둠 활동을 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학급일기장도 써 보고, 생일잔치는? 학급행사는 어떤 게 좋을까? 반응이 좋았던 체육대회와 비빔밥 먹기, 수박 먹기 대회는 꼭 하고…… 그날 어디까지 생각을 하다가 잠을 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설렘과 기대로 시작했던 지난 3월을 지금 되돌아보니,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별다른 일 없이 지난 듯도 하고, ‘야, 이 녀석들 만만치 않구나!’하는 푸념을 늘어놓을 일만 벌어진 것도 같습니다.


  첫날 어설픈 입학식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와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아이들에게 1년 동안 잘 지내자고 당부하고 학교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라고 일렀습니다. 오늘만큼 초롱하고 호기심에 가득 찬 눈망울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첫 일주일은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하고, 출석부에 이름표 붙이고, 학급 청소, 학급 당번과 사물함 배정하고, 건강기록부 챙기는 등 잡무를 하며 아이들의 이름을 빨리 익히려고 애를 썼습니다. 학교가 낯설 것 같아서, 처음으로 돌아온 학급회의 시간에 오리엔테이션을 겸해 모두 데리고 학교 구석구석(여긴 행정실이야, 여긴 매점이지, 이곳은 도서실…)을 돌아다니며 학교 구경을 했습니다.

  둘째 주에는 학교 일정에 따라 학급의 반장을 급하게 뽑아야 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자기 소개서를 나눠주고 자기 사물함에 붙이라고 일렀습니다. 3일 후에 반장 후보자 등록을 받았습니다. 등록기간을 연장해도 후보자는 달랑 한 명. 제대로 선거를 치러보려던 저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다소 김빠진 후보자 찬반 투표를 거쳐 우리 반 반장을 뽑았습니다.

  담임을 할 때마다 겪는 아주 난감한 일 중의 하나-(담임을 난처하게 하는 또 다른 경우는 도난 사고 생겼을 때겠지요? 저는 수첩에 한 달에 한 날을 정해 기록해 도난사고 방지를 위해 주의를 줍니다. 도난 사고 일어나면 찾기 힘드니까, 자기 돈은 잘 간수하라고 하지요. 주번에겐 문단속 꼭 하고, 큰돈은 저에게 맡기라고 합니다.)-가 학비감면 대상자를 정하는 것입니다. 특히, 신입생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대략적인 가정환경 파악도 안 되었는데, 막무가내로 학비감면 대상자를 선정해 달라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첫 주에 써내는 가정환경조사서를 조금 꼼꼼한 서식으로 바꾼 것도 도움이 되지만, 정말 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잘 파악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요즘에는 행정실에서 서류를 꼼꼼하게 챙기기 때문에 정확하게 안내를 해 주고, 서류를 갖출 수 없는 학생들은 개별적으로 찾아오라고 부탁해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셋째 주, 학생부에 올라갈 사진을 걷으면서 이제 대체로 아이들의 이름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학급일기장을 쓰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아이들의 반응은, 크게 ‘그게 뭐야?’, ‘우리가 초등학생이야?’, ‘……’) 저야 이런 반응에 익숙한지라 더 이상의 반발을 허용하지 않고, ‘학급일기장 써 보면 재미있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아직도 마련하지 못한 일기장을 빨리 마련해야겠습니다.

  넷째 주에는 개별 상담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사실 학교 일과 중에 학생들과 상담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실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인 터라, 결국 점심시간을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한 녀석을 지명-우리 반에서 제가 가장 상담하고 싶었던 학생-하고, 다음 상담 학생은 그 학생이 지명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담을 시작할 때 자연스럽게 친구 관계 이야기를 꺼내면서 할 수 있습니다.

  개별 상담을 할 때, 간단한 간식거리를 준비하면 좋습니다. ‘교사가 꼭 그렇게 해야 하나?’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만, 아이들에게 이 상담 시간이 특별한 시간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저의 진심을 전달하고 싶기 때문에 부드러운 분위기가 만들어지도록 노력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먹을거리를 앞에 두고 만나면 편안해지지 않습니까?) 아이들이나 저나 점심을 먹고 만나니, 과일 한 쪽도 먹고 싶을 테고, 이제 날이 더워지면 아이스크림도 사 먹으면 더 좋을 듯합니다.

  새 학교에 학생들을 보내놓고 마음 졸이실, 학교 문턱이 아직도 어렵기만한 대부분의 부모님들을 위해 가정통신문을 써서 아이들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가정통신문에는 저의 학급 운영 방향에 대한 소개, 제 시간표, 전화번호, e-mail 주소를 적어 드렸습니다. 제가 수업이 비는 시간을 알고, 필요하실 때는 언제든 전화해 주십사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대략 이 정도로 저를 그토록 설레게 했던 새 학교의 3월이 끝날 듯 했으나, 사진 내라고 말한 지가 보름이 넘었는데, 아직 사진도 안 찍었다는 녀석이 나오지를 않나-학교에서 단체로 찍는 건 싫다던 녀석이었는데 말이죠.-날마다 지각생은 늘어나고, 수업을 들어가시는 선생님들을 통해 우리 반이 가장 산만하다는 말씀도 들려오고, 야간자율학습에 도망가는 녀석도 생겨났습니다.

  역시 새 학교에 대한 아이들의 기대가 한 달 만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듯이 아이들에 대한 저의 설렘이 한 달 만에 많이 가셔서 어떤 아이들을 만날까를 기대하던 그 때가 까마득한 옛날이었나 싶습니다. 마음으로 그려보는 아이들과 현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차이가 크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지각이야 그렇다고 쳐도 입학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벌써부터 도망가는 녀석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어떻게 적응을 하려는지 걱정이 앞서서 따끔하게 혼을 냈습니다. 어떻게 혼내냐구요? 일상적으로 하듯 위협과 협박, 읍소 작전을 펼치기도 합니다. 그게 며칠 갈 때도 있고, ‘맞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생글거리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까먹은 것 같은 녀석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저와 1년을 함께 살아야 할 녀석들인데…….


  이렇게 저의 봄날은 가는가 봅니다. 그래도 좋은 걸 어쩌겠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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