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졸업앨범(CD) 만들기 

 

1. 앨범을 만들게 된 계기

  2004년 3월, 입시에 대한 중압감과 긴장감으로 맑은 눈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책 속에만 얼을 파묻고 있는 아이들과 만났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며, 같이 1년을 보내야 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관심의 폭이 좁은 입시생들이라 저와 친밀해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로 점차 서로 마음을 열어놓고 만나는 사이가 되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저는 그들과 행복한 연애를 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학교 곳곳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보게 되는 예쁜 표정을 사진으로 남겨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혼자 보기 아까운, 맑은 모습들이었거든요. 꽃처럼 피어나는 자신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정작 본인들은 잘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입시라는 이름의 비정한 경쟁체제에 내몰려 마음까지 얼어붙은 아이들이지만, 그 나이에 당연하게 꿈틀대고 있는 삶의 생기는 어쩌지 못하는 법이거든요.

  그러다가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컴퓨터에 담은 사진을 그냥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져서 더욱 열심히 찍었습니다. 제가 기분 좋아서 하는 일이라 그런지 신날 때가 많았습니다. 그게 한 장 두 장 모이다 보니,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가진 모든 아이들을 다 찍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그 욕심이 나중에는 더 부풀어서, 내가 연애(戀愛)하고 있는 녀석들이 졸업을 할 때 의미 있는 선물을 해 보자는 생각까지 발전한 것입니다.


2. 시작은 어떻게 했을까?

 2.1 사진 찍기

  아마도 4월초부터 아이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수업 시간에도 사진기는 대체로 챙겨갔습니다. 물론 수업시간에 꺼내는 건 아니었구요. 쉬는 시간에 먼저 다가오는 녀석들부터 한 장 한 장 찍었습니다. 늦은 시간, 언제나 아이들 교실을 둘러볼 때는 손에 사진기를 챙겨갔습니다.

  저는 사진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사진을 찍어 본 적도 별로 없습니다. 잘 찍는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고, 그냥 표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뿐이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 소박한 바람대로 얼굴의 표정이 잘 드러나게 대상에 근접해서 주로 찍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사진 찍는 것에 협조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다 단호하게 거부하는 학생들도 있었는데, 그냥 다음 기회로 넘겼습니다. 시간이 지나서도 그런 학생들은 본인이 싫다는 데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래서 이 앨범은 학년의 모든 학생들이 들어있는 건 아닙니다.) 나중에서 졸업 앨범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도 하니, 마지못해 승낙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중간에 사진 찍은 걸 현상해서 한 장 씩 선물로 주면 받아든 학생은 뿌듯하고, 다른 학생들은 부러워서 사진 찍으려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진은 정말, 아무 때고 아이들이 보일 때마다 취미로 생각하고 찍으려고 들었습니다. 교실, 운동장, 식당, 체육관 학교 안 어디서라도 찍을 상황만 되면 가리지 않았습니다. 처음에야 뭐 하는가 싶어서 의아해하다가도 나중에서 아이들도 ‘그러려니’하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수능도 끝나고 지금까지 찍어 둔 사진을 담아 CD에 담아주려고 하다가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3학년 담임선생님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담으면 좋겠다 싶어서 방송부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녀석들도 기쁘게 받아들여 캠코더를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대로 학교의 모습도 담긴 사진을 구하려고 이리저리 찾았습니다. (사진을 구한 게 너무 늦어서 정작 앨범에는 담을 수 없었습니다.)


2.2 사진 편집과 CD 만들기

  먼저 저와 같이 작업할 친구들을 찾았습니다. 비디오 촬영은 방송부 재학생들에게 부탁했고, 찍어 온 비디오 편집은 졸업하는 방송부 학생이 맡았습니다.(이 학생이 공CD도 300장이나 사 왔고, 졸업앨범의 전체적인 기획을 담당했습니다.) 전체적인 편집 과정에 대한 방향과 조언은 졸업생 두 명이 도와주었습니다.

  우선 컴퓨터에 담긴 사진을 남학생과 여학생으로 분류하여 사진 파일에 이름을 적었고, 동영상 파일은 따로 폴더를 만들어 분류했습니다. 다음은 공CD를 300장을 마련해서, 지금까지 찍은 사진을 활용해서 표지 디자인을 만들었습니다. CD 표지용 라벨은 시중에 팔기 때문에 칼라프린트로 인쇄만 하면 됩니다. 거기에다 CD 라벨을 정확하게 붙일 수 있는 펀칭기가 있어서 작업은 비교적 쉬웠습니다. (막판까지 앨범이 부실하다는 느낌이 들어, CD를 나눠주기 전날까지 학교 근처의 아파트까지 올라가서 학교의 모습을 담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졸업앨범CD를 만들면서 얻은 멋진 추억도 있습니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과 늦게까지 도서실에 앉아 서너 대의 컴퓨터로 CD를 굽고, 구운 CD를 케이스에 담고, 또 반별로 분류하며 두런두런 나눈 이야기는 저에게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아름다운 기억입니다. 졸업앨범을 만들면서, 정(情)은 교사와 학생이 마음을 열고, 서로의 삶에 한 걸음 더 다가설 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 졸업앨범을 받을 학생들을 누구보다도 부러워한 학생들은 사실, 2학년 학생들이었습니다. 자기들 졸업앨범도 만들어 주고, 딴 학교로 가라고 하더군요. ^^;;)

  졸업을 하는 날에는 반장을 통해 졸업앨범을 나눠주도록 부탁했습니다. 이 졸업앨범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부터 했었기 때문에 다른 설명이 없어도 아이들이 이해하리라고 믿었습니다. 한참 후에, 도서실과 교무실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녀석들도 많았고, 그 날 저녁에도 기쁨에 들뜬 메시지를 꽤 받았습니다.


3. CD를 받은 아이들의 반응

  처음에 이것을 만드는 선생님을 봤을 때 ‘3학년 담임선생님도 아니신데 왜 이렇게까지 수고하실까, 학기 중에 애들 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부터 이 생각을 하셨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놀랍기만 했다. 졸업식 전 날까지 몇 아이들과 함께 밤늦게까지 만들면서, 아이들이 받으면 좋아하겠지? 애들이 어떤 반응일까? 하며 기대하시고, 걱정하시고, 설레어 하시던 선생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아이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보면서 그때 애들 사진을 찍으시느라 수고하셨던 선생님 모습과, ‘선생님! 이 아이 사진 꼭 찍어주세요~’ 하며 부탁하던 아이들이 생각이 났고, 행복했던 고3 시절이 떠올랐다.
  사실 앨범을 졸업 후 자주 보게 되진 않았는데, 어느 날 책상 정리하면서 발견한 CD를 보고 웃음이 절로 났다. 비싼 졸업앨범보다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고 우리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이 CD가 더 애착이 간다. 세월이 지나 어떻게든 CD를 발견했을 때 ‘어, 이거~’ 하면서 잊고 지냈던 고등학생 시절의 추억이 떠오를 테고, 앞만 보고 무작정 달려가는 우리에게 잠시나마 뒤를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물건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늘 마음속에 세상을 비추는 빛을 가지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이 말을 되새기면서…….

(화명고 졸업생, 오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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