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은 학생의 날이다.

1. 학교에서 교내 연락용으로 쓰이는 메신저를 이용해서 선생님들께, 학생의 날을 기억하기 위해서 작은 행사를 따로 또 같이 준비하자는 제안을 했다. 나야 다른 선생님들이 어떻게 하시든 별로 상관없이 혼자 할 수 있지만, 학교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는 게 더욱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내가 학교 선생님들께 제안한 내용은 이렇다.

2. 조례나 수업에 학급이나 학년별로 11월 3일이 학생의 날임을 알리자고 했다. 학생의 날의 유래와 학생의 날의 현재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도록 선생님들께서 각자 준비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을 글로 써서 게시판에다 붙이자고 했다. 학생들에게 줄 작은 선물로 사탕을 준비하자고 했다. 그 날 수업이 든 반의 수만큼 장미꽃을 사서 교실의 칠판 옆에서 붙이고 학생의 날의 의미를 전달해 주자고 했다.

3. 11월 2일은 수요일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의 날을 준비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집안에 큰 일이 생겼다. 따라서 준비는 밤 10시부터 시작했다. 일단, 너무 늦은 시간이라 장미꽃에 제일 문제였기 때문에 눈을 크게 뜨고 꽃집을 찾아 다녔다. 할인점 근처에서 겨우 한 군데를 찾아 장미꽃 10송이를 샀다. 다음은 사탕! 학교 매점을 통해 사 준 10봉지의 사탕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부족한 듯 싶어, 50개가 든 큰 사탕을 10봉지 더 사서 안해와 나누었다. (할인점에도 같은 종류의 사탕은 더 없었다.) 다시 집으로 와서 게시판에 붙일 메시지 쓰기! 보잘 것 없는 글이었지만, 정성을 담아 쓰느라 새벽 2시쯤이나 되어 끝났다.(정작 학생의 날 아침엔 힘이 들어서 병가내고 싶었다.)

4. 장미꽃과 사탕 한 아름과 책가방과 도시락까지 챙겨 들고 나서니 엄청난 짐이었다. 더구나 학교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 끙끙대며 학교 입구에 와서 또 예쁜 종이를 사느라 문방구에도 들렀다. 아침부터 프린트 해서 학년실 앞에 붙이는데, 녀석들은 아침부터 교무실을 들락날락! (그 주에 이미 11월 3일에 학년실로 사탕 받으로 오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런 건 안 까먹고 잘 기억하고 있더라!) 사 온 사탕을 예쁜 상자에 담으려고 했으나 그 상자가 안 열려서 포기! 그냥 종이 박스에 담아 두고 몰려드는 아이들을 맞으며 사탕을 하나씩 전했다.

5. 조례시간에 우리 반에 들어가서 학생의 날임을 알리고, 장미꽃을 붙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우리반에서는 담임인 나를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데다(?) 나의 심리적 압박에 쫄아 있는 녀석들이 많아서 내가 잘해주려고 해도 분위기가 잘 안 뜨는 경우가 많아서 나도 좀 쑥스러웠다. 그래도 사탕 받으러 오라니까 바로 몰려드는 녀석들!

6. 수업시간에 장미꽃을 들고 교실로 들어가 역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교과 시간에 만나는 아이들은 훨씬 더 분위기가 자연스럽고 편하다는 것 정도! 수업이 끝나면 사탕 받으러 오라고 이야기해 주고 장미꽃을 붙인 자리 옆에 '학생의 날을 축하합니다'고 써 두었더니 학생들도 온종일 싱글벙글이었다.

7. 소문은 금세 퍼져서 쉬는 시간마다 학년실이 문전성시였다. 내가 수업을 들어가는 것과는 상관없이 1학년 학생들은 거의 모두 몰려들었다. 그 사탕 한 알이 뭐 그리 아쉬워겠냐만, 그래도 학생의 날이라는 기분을 낼 수 있어서 아이들도 좋았고 나도 기분이 좋았다.

8. 학년실 문에 붙은 게시물을 읽고 있는 녀석들을 보고 있으니까 기분이 참 좋다. 준비할 때는 이거 한다고 뭐 이리 요란을 떠나 싶고, 메시지엔 그럴 듯 하게 쓰면서도 평소의 행동엔 아이들에게 다른 내 모습이 떠올라서 민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1년 내내 속을 썩이다가 스승의 날 하루만은 진심으로 선생님을 속 상하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편지를 쓴 말썽꾸러기의 마음이 꼭 내 마음이었다.

9. 이곳저곳에서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듣는다. 그런 공치사 들으려고 이런 일을 하는 건 물론 아니다. 나 혼자만 괜찮은 '선생' 대접 받고 싶다는 생각도 별로 없다. 다만, 학교의 문화가 좀 바뀌었으면 하는 욕심은 있다. 이런 상황이 내 주변의 선생님들에게도 약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를, 그래서 내년엔 좀 더 많은 선생님들이 학생의 날을 학생들과 함께 기념할 수 있는 소중한 날로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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