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10일

07: 20 가뿐한 마음으로 기상하다. 일주일의 첫날. 그래도 어제 푹 자둔 탓인지 몸이 가볍다. 아침을 챙겨먹고, 안해랑 같이 나섰다. 약간 이른 시간이라 한결 여유가 있었다.

08:10 학교에 도착하다. 학교 가는 길에 만나는 아이들이랑 즐겁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런 날은 기분이 참 좋다. 교실에 들어가니 빈자리가 몇 개. 학기 초부터 나의 신경을 계속 거슬리게 한 김OO 학생과 최OO 학생을 비롯한 다섯 명이나 없다. 또 지각인가 보다. 조금 있으니 슬그머니 들어와 앉는다. 순간 화를 삭이지 못하고 복도 밖으로 불러내어 잔소리를 퍼부었다.

08:40 아침 회의시간. 잘 나가다가 막판에 '잡담이나 해 쌓고'에서 울컥했다. 아, 내가 아직 제대로 된 인간이 되려면 멀었는지, 이 학교 선생님들이 너무 착해선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다들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혼자 중얼중얼 - '참, 사는 게 힘들다.' (옆에서 들은 선생님도 공감 표시!)

09:00 한달에 한 번 꼴로 있는 운동장 전체 회의. 참 변하지 않는 게 학교다. 이렇게 줄 세우고 듣지도 않을 이야기를 지겹지도 않은지 해대는 걸 보면. 그런데 교실에서는 아이들에게 내가 저러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참 코미디 같다고 느끼게 된다. 우리반 녀석들도 운동장에선 엉망이다. 참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당연히 시작은 전체 조례가 없어지는 것이어야 하겠지만! 

10:00 2교시는 수업이 없다. 우리반 날적이에 댓글을 달아주었다. 같이 산행을 간 이OO 학생의 재치있는 글. 이런 날적이를 받아보면 기분이 좋다. 이어서 1시간 동안 이번 주에 시작될 수업에 필요한 정보실에서 컴퓨터를 빌렸다. 그리고 인쇄실에 맡긴 학습지를 챙기고 다시 한 번 학습지 점검과 설명을 정리했다.

2교시가 끝난 시간에 7반의 김OO 학생과 권OO 학생이 놀러왔다. 그냥 별다른 이유 없이 내가 잘 있나 싶어서 찾은 것이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이런 학생들이 찾아와 주기 때문에 학년실에 있는 것도 조금은 재미가 있다. 김OO 학생은 감기로 고생한 이야기, 권OO 학생은 눈이 아파서 병원에 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돌아갔다.

11:00 3교시 수업시작. 원래는 힘든 반인데, 출발이 무난했다. 첫 시간이라 개념 설명을 중심으로 한 수업이었는데도, 휴일을 편하게 보냈는지 다들 집중을 잘 하는 편이었다. 생각한 것만큼 진도는 못 나갔지만-중간에 우리반 자랑한다고 잠시 옆으로 빠진 게 화근이었다.- 그래도 다음 시간에 약간 보충하면 될 정도였다.

11:50 수업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있으니, 1학년 10반의 송OO 학생이 찾아왔다. 송OO 학생은 내가 수업에 들어가지도 않는데, 나한테 책을 빌려달라고 찾아왔던 녀석이다.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들었는데, 내가 '시'에 대해서 좀 아는 것 같다나?-순전히 아부겠지) 저번에 '시로 읽는 세상'(김용찬, 이슈투데이)을 빌려 주었더니 잘 읽고 가져왔고, 지난 주 토요일에 다른 책도 빌려달라고 했다.

사실, 어제 저녁에 집에서 책을 몇 권 골랐다. '현대소설, 너를 읽어주마1', '반쪽이의 오지탐험',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내밀었다. 맘에 드는 거 고르라고. 약간 감동한 눈치. 그리고 한 마디. "샘 귀찮지 않으세요?" 나의 대답, "책 빌러러 와준 네가 기특하고 대견해." 그래서 좋아라하면서 두 권을 빌려갔다.

12:00 4교시도 수업이 없다. 오늘까지 보고할 공문이 있어서 정리를 하고 관리자를 찾아 갔으나 자리에 없었다. 항상 이렇다. 우리 학교의 강OO 선생님과의 짧은 대화! B급 좌파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실, 작년에는 학교는 달랐어도 이야기가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은데, 같은 학교를 다녀도 얼굴조차 보기 힘들다. 항상 준비해 주시는 한문 수업  프린트를 챙겨서 내려왔다.

12:50 늘 그렇듯 혼자 점심을 먹었다. 오늘은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어서 컵라면도 곁들였다. 점심시간은 언제나 손에 쥔 모래처럼 스스륵 빠져나가 버린다. 밥 먹고, 양치하고, 그 사이에 관리자를 찾아 결재를 맡아 공문을 보냈다. 그 사이에 틈틈이 인터넷도 하고, 뉴스도 봤다. 그러는 사이에 아까 왔던 김OO 학생이 나 먹으라고 떡을 들고 왔다. -동아리 선배들 수능떡이라면서 1500원씩 내서 한 떡인데 내 몫까지 챙겨온 것이라고 했다. 김OO 학생에게 고맙다고, 잘 먹겠다고 했다. 떡을 입에 넣지 않아도 이미 내 마음은 충분히 불렀다.

13:40 5교시 수업시간. 내 자리에 있는 컴퓨터를 가져오는 걸 깜빡했다. 아마 결재를 후다닥 맡느라 놓쳤다. 할 수 없지. 설치하려면 주의가 산만해 지고, 시간을 빼앗기니 다음에 보여주기로 하고, 수업을 했다. 역시나 무난한 수업이었다고 자평한다.(너무 자뻑 증상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특별히 수업에 관심을 보이는 녀석들이 있어서 좋았다. 간혹 조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소수였고, 깨우려고 애썼으니.

14:40 6교시는 다시 비는 시간이다. 원래는 학급자치 시간이었으나 운동장 조례를 하느라 1교시와 6교시를 바꾼다고 했다. 학교에서 학급자치 시간은 천덕꾸러기다. 아무데나 가져다 붙이면 되는 줄 안다. 나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학교 행사가 없으면 '가을의 모습을 스케치'하려고 했었는데, 또 물건너 간 셈이다. 7교시가 한문 수업시간이라 학습지를 다시 검토했다.

15:30 청소시간. 아이들을 다그쳐서 청소를 하자고 졸랐다. 오늘은 그래도 덜 피곤했는지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청소를 한다. 나는 아이들의 청소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청소가 끝난 교실이 잠시나마 반짝거리는 것도 좋다. 빤닥빤닥한 칠판도 좋고, 깔끔하게 뒷정리까지 된 교실 뒷편도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15:50 7교시 수업시간. 한문 시간이다. 2학년 수업인데 평소보다 수업의 분량이 조금 작은 편이라 딴 이야기를 조금 해 주었다. 호기심이 잔뜩 묻은 얼굴로 나를 봤다. (수업시간에 그렇게 좀 봐주지) 역시 평범한 수업이었다. 아이들에게 아주 편안한 수업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16:50 보충수업 시간이다. 내가 무지하게 싫어하는 시간이기에 별로 의욕이 없다. 인간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수 없다는 걸 여기서 느낀다면 너무 무기력한 대응일까? 다행인지는 몰라도 우리반 수업이다. 우리반은 수업이 힘든 반이다. 담임이라 기대가 높아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제대로 수업에 집중하는 녀석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중간 정도의 성적이 나오는 걸 보면 신통하기도 하지만.

17:40 저녁시간. 피곤해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밥도 싫고, 움직이기도 귀찮고, 아이들과 이야기도 해야겠고, 컴퓨터만 쳐다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참 후에 우리반 교실에 들렀더니 몇 녀석만 교실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그 녀석들을 끌어모아 게임을 했다. (전문적으로 놀이만 연구하는 선생님들께 배운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그랬던 녀석들이 점점 재미를 느끼고 빠져들었다.

18:30 야자시간이다. 금요일에 끝난 시험 탓에 온 교실이 전부 시끄럽다. 게다가 우리 반은 거의 다 남아 있다. 오늘 이야기하려고 마음 먹었던 최OO 학생을 불렀다. 같이 커피 한 잔 마셨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았다. 꼬박 한 시간이나 이야기를 했다. 온갖 이야기가 다 나온 것 같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오해한 이야기를 풀었다. 나한테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17:30 쉬는 시간 10분. 다시 교실에 가서 아까 놀던 그 녀석들을 모았다. 그 순간에도 게임을 했다. 아마 이번에 소풍가면 좀 재미있을 것 같다. 이렇게 게임하고 놀 생각이다. 아쉬운 순간을 뒤로 하고 이번 1시간은 교실에 같이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좀이 쑤시는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엉덩이가 들썩거렸으나 내가 앉아 있는 상태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21:00 드디어 마치는 시간. 우리반 모두는 가방을 메고 일어서서 우리반만의 종례를 했다. "목숨을 걸려면, 미래에 걸자" 이어지는 박수. 그리고 "내일 뵙겠습니다"는 인사. "잘 가라"는 나의 인사! 나도 서둘러 가방을 챙겨들고 나왔다. 나오다 집이 같은 방향인 8반의 황OO, 김OO, 김OO 학생과 합류했다. 집으로 오는 길이니 얼마나 신나는 길인지, 게다가 여고생 특유의 생기발랄함이 있어 더욱 유쾌한 귀가였다.  

21:30 집안 청소 시작. 우선 지금껏 미루어둔 분리수거부터 시작. 조금 있다가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핑계로 간식을 먹었다. 조금 전에 분리수거를 끝내고 음식물 쓰레기까지 비웠다. 아침 설거지까지 처리하고 나니 비로소 내 시간이 생겼다. 나머지 소중한 한 시간을 이 알라딘 서재의 일기를 쓰는 것으로 채웠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떠오른 말 한 마디!

- 사는 거 뭐, 별 거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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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5-10-11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살면 되죠~~ ^^

BRINY 2005-10-11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근시간은 저희보다 늦으신데, 퇴근시간은 빠르시군요. 이런 걸 보고 부럽다고 해도...

느티나무 2005-10-11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맞아요. 열심히 살면 되는 거지요.
BRINY님, 오십 보 백 보 아닐까요? ㅋ 둘 다 이상한 거죠 ^^

2005-10-11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라 2005-10-11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가 아니라 꼭 이틀의 이야기 같습니다, 느티나무님. 선생님과 마주 앉아서 커피 한 잔이라... 저 고등학교 때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커피는요.^^;; 아~~~ 보고 싶은 선생님들이 참 많아요.^^

춥다춥스 2005-10-18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혹 조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소수였고, 깨우려고 애썼으니.

이부분 보니깐 되게 찔리네요 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잤으니,,,ㅠㅠㅠㅋㅋㅋㅋ
그땐 왜 그랬을까요;;ㅋㅋㅋㅋ